힙합, SHOW ME THE MONEY를 넘어라
힙합, SHOW ME THE MONEY를 넘어라
  • 이승진 기자
  • 승인 2016.09.03
  • 호수 14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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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힙합의 열기가 뜨겁다. 지난여름 Mnet에서 방영된 ‘쇼미더머니 시즌5’는 케이블 방송임에도 불구하고 최고 시청률 3.6%를 기록하며 이 기간 동안 각종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음원차트 등을 ‘올킬’했고 지금 그 열기는 ‘언프리티랩스타’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길거리에선 스냅백 등의 힙합 패션이 유행하고 노래방에선 심심찮게 랩을 들을 수 있게 됐다. 혹시 여러분도 지금 힙합의 매력에 빠져있진 않은가. 그렇다면 힙합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우리나라에 도래된 것인지, 앞으로의 전망은 어떤지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자.

빈민들의 사고와 정서를 담아낸 정통힙합
힙합은 1970년대 후반 뉴욕 할렘가에 거주하는 흑인과 스페인계 청년들에 의해 형성된 문화운동 전반을 가리키는 말이다. 당시 그들은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빈민층이었다. 그런 사고나 정서를 즉흥적인 음악이나 춤, 그림 등으로 표현했는데, 이들의 춤 중 엉덩이를 흔드는 모습에서 힙합(hiphop)이라는 말이 유래됐다.
힙합하면 대부분 랩을 떠올리나, 랩은 힙합에 포함될 뿐 힙합 그 자체는 아니다. 힙합을 구성하는 요소는 크게 음악을 켜는 디제잉, 리듬에 맞춰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랩, 춤을 추는 비보잉, 그리고 그들의 공간을 꾸며주는 그래피티의 네 가지로 구분된다. 70년대 후반 자메이카 출신의 디제이 쿨 헉은 개인이 소장하던 R&B나 펑크음악을 자주 틀었는데, 때때로 간주부분만을 반복해서 틀어줬다고 한다. 그때마다 가사가 없이 비트만이 흘러나왔고 헉은 그에 맞춰 춤을 추는 이들을 B-BOY라고 불렀다. 또한 간주부분에 흥을 돋구기 위해 지른 소리나 내뱉은 말들이 바로 랩의 시작이었다. 이렇게 서서히 퍼진 힙합문화는 각자의 요소에서 음악적으로, 예술적으로 발전했으며, 결국 1978년 첫 힙합 앨범인 슈거힐 갱의 ‘Rapper’s Delight’가 발매됨을 계기로 힙합은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정통힙합의 한국화
우리나라에 가장 먼저 들어온 힙합 요소는 비보잉이었다. 그 이유로 먼저 랩은 당시에 의상이나 제스처 등에서도 규제가 심했던 우리나라에서는 받아들여지기 힘들었으며 대중이 랩의 가사를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또 디제잉 역시 장비를 구하기 쉽지 않았고, 그래피티는 함부로 해선 안 될 불법 행위였다. 반면 비보잉은 여타 장비가 필요 없는 춤 동작이었기 때문에 눈으로 보고 바로 따라할 수 있어서 보다 빨리 보편화됐다. 또한 대중은 당시 파격적이었던 춤 동작의 화려함에 매료돼 비보잉이 큰 인기를 얻은 것이었다.
90년대에 이르러서야 힙합 음악 또한 국내에 본격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한국 힙합 음악의 시초라 불리는 듀스는 한국어로 라임을 처음 만들어내 영어권 랩의 느낌을 살려 대중들에게 선보였다. 그들이 선보인 ‘랩 음악’은 당시 발라드와 록 음악이 주류를 이루던 우리나라 가요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며 대중들에게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게다가 듀스는 힙합이라는 단어조차 모르는 생소한 시절, 음악만이 아니라 춤과 패션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에 힙합이라는 문화를 대중적으로 널리 알리는데 큰 기여를 했다.
그러다 2000년대 초반에 이르러 우리나라 힙합은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색을 띠게 된다. 먼저, 보이는 동작만을 모방해온 비보잉은 해당 동작들의 의미나 절차를 그들만의 정서로 유추하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본래의 의미나 절차를 무시한 ‘이상한 춤’을 추게 된 것이다. 또한 랩은 인터넷의 발달과 미국 본토에서 정통 힙합을 배워온 이들의 유입으로 인해 진짜냐 가짜냐를 두고 논쟁에 휩싸이게 됐다. 당시 우리나라 힙합은 이런 유추와 논쟁으로 인해 과도기에 있었고 이는 당시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힙합 문화를 형성하게 했다.
후에 2000년대 중반부터 힙합은 YG와 같은 대형기획사, 그리고 다양한 미디어의 영향으로 대중화의 길을 걸었다. 톱스타 이효리는 힙합을 표방한 음반을 내기 시작했고, 힙합 그룹 빅뱅이 큰 인기를 얻으며 힙합은 주류문화로 떠올랐다.
또한 최근에는 이런 열풍에 힘입어 힙합을 소재로 하는 TV프로그램도 늘어났다. ‘쇼미더머니’와 ‘언프리티랩스타’는 래퍼들의 경쟁 프로그램으로, 시즌별로 수많은 히트곡과 스타 래퍼들을 발굴해 내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댄싱9’은 세계 스트릿댄스계에서 한류 바람을 일으켰던 댄서들이 수없이 등장해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였으며, 이는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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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힙합, 자생력을 갖춰라
대중에게서 힙합이 이렇게까지 유행하는 것은 문화 진입장벽이 낮기 때문이다. 전통예술처럼 특수한 교육이 필요 없으며, 특별한 장비 등 금전적으로 많은 비용 역시 필요하지 않다. 한마디로 누구나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관해 이진섭 팝 칼럼니스트는 “사회적으로 억압된 시대에 표현과 욕구 충족의 돌파구가 있다면, 대중들은 당연히 그 곳으로 촉을 세운다. 그 문화 중 하나가 힙합인 것 같다”며 힙합의 인기요인에 대해 사회적인 측면에서 분석했다.
힙합은 현재 겉보기에는 마냥 인기 있고 화려해 보인다. 그러나 힙합은 위험하다. 과거 본인들의 이야기를 담백하게 풀어내던 시절과는 달리, 최근의 힙합은 보다 자극적인 가사를 요구하는 미디어에 매달려 그 인기와 경제적 지원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는 철저히 상업적인 성격을 띠고 있어 때론 잔인하다 싶을만큼 변덕스럽다. 언프리티랩스타 시즌3는 벌써부터 시즌1, 2에 비해 실력이나 재미 등에서 대중에게 혹평을 받고 있다. 이처럼 대중은 그런 실망감을 미디어에 풀어낼 것이고 미디어는 이에 더욱 자극적인 랩으로 대응하다 결국엔 힙합이 퇴색될 위험이 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이에 박재민<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무용예술학부> 교수는 “힙합의 역사를 통한 본연의 정신을 이해하고 자신들의 힙합에 철학을 담아내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현재 힙합은 미디어의 요구에 맞춰 랩, 그것도 디스를 중심으로한 플로우, 가사, 비트에만 집중을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역사는 당시 사람들의 문화와 철학을 담고 있다. 힙합 또한 역사의 흐름을 앎으로써 대중의 눈과 귀를 자극하는 힙합이 아닌, 힙합 본연의 철학과 정신을 이은 ‘진정한 힙합’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젠가 대중들은 더욱 더 높은 수준의 힙합을 원할 것이다. 지금처럼 욕과 비난 일색인 랩 이상의 자극을 원한다면 힙합계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힙합시장이 미디어와 상관없이 꾸준한 대중성을 띠기 위해선 그들 스스로 자생력을 갖춰야 한다.
힙합은 과거 조직폭력단의 두목이었던 아프리카 밤바타가 조직 폭력단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단원들을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폭력과 살인, 마약, 방화에서 노래와 춤, 회화를 통해 평화와 존중이 만연하는 새로운 세상을 꿈 꾼 것이다. 당시 빈민들은 고단한 삶 속에서도 ‘놀자’, ‘즐기자’ 등의 희망적인 의지를 표출했다. 그들이 만들어낸 힙합은 비록 가난했지만 사랑이며 평화이며 존중이었다. 한국 힙합의 자생력에 대한 답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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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 박재민<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무용예술학부> 교수
이진섭 팝 칼럽니스트
참고 자료: 박재민 교수 칼럼 <우리나라 힙합에 대하여>사진 출처: 
사진 1: http://www.bklynlibrary.org/events/exhibitions/martha-cooper-hip-hop-files-photographs-1979-1984
사진 2: http://www.playdb.co.kr/magazine/scrap/scrap_iframe.asp?kindno=3&no=393
사진 3: http://voda.donga.com/home/top/3/all/39/7185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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