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이름을 건 기사의 무게
[취재일기]이름을 건 기사의 무게
  • 한소연 기자
  • 승인 2016.05.30
  • 호수 14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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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처음 한대신문에 들어와 수습기자로서 활동할 때의 이야기다. 기자가 직접 영화 평론을 해보자는 취지의 기사가 기획됐고 불행하게도 당시 수습기자였던 내가 그 기사를 맡게 됐다. 평론이라니. 적어도 나의 기준에서 평론은 얕은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은 절대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수습기자가 무슨 힘이 있을까. 선택권은 나에게 없었고, 그 글을 써야했다. 너무나 쓰기 싫었던 나머지 마감회의까지 글을 안 쓰다가 된통 혼이 나서야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그 당시 듣던 교양수업에서 배운 프로이트의 이론을 얕게라도 끌어 들여 간신히 글을 썼다. 그렇게 나온 허술한 글이 나의 이름 아래 나간다니 끔찍하기까지 했다.
현재 편집국장이지만 당시 문화부 차장이었던 정진영 기자에게 그때 울먹이며 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제 바이라인 떼고 나가면 안 돼요?”

평소 남 앞에 나서는 걸 싫어했다. 나의 한 마디가 다른 이에게 일말의 영향도 미치지 않길 바랐고 그 자체를 두려워했다. 바이라인을 떼고 나가게 해달라며 농담반 진담반 말했던 당시의 나는 좋게 말해 이름을 걸고 나가는 기사의 무거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기자였다고 포장하고 싶다.

한대신문에 들어와 줄곧 하는 일은 나의 이름을 걸고 글을 쓰는 일이었다. 그렇게 이름을 걸고 나가는 기사의 두려움은 익숙함이 됐다.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대충 기사를 마무리하고 일찍 집에 가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 늘었다. 현재는 바이라인을 떼고 나가면 안 되냐고 애걸복걸하던 기자도, 이름을 건 기사의 무거움을 알던 기자도 부재하다. 잔재하는 것은 그저 집에 일찍 가기 위한 애씀뿐이다.
바이라인을 떼고 나가면 안 되냐며 징징대던 그때의 내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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