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사설]익명에 기대어 전해준다는 것
[기자사설]익명에 기대어 전해준다는 것
  • 한대신문
  • 승인 2016.05.24
  • 호수 14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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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페이지 ‘한양대학교 대나무숲’은 지난 5일부터 8일까지 자체적으로 휴식기를 갖고 재정비에 나섰다. 또한 페이스북 페이지 ‘한양대 에리카 대신 전해드립니다’는 지난 9일부터 잠정적인 휴식기에 접어들었다.
양 캠퍼스 모두 활성화된 커뮤니티가 없던 상황에서 등장한 두 페이지는 2014년부터 지금까지 교내에서 학우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일종의 커뮤니티 역할을 수행해왔다. 다른 커뮤니티와의 큰 차이점은 익명의 페이지 관리자가 제보받은 이야기를 페이지에 익명으로 대신 게시한다는 점이다. 학생들의 분실물 찾기부터 연애?진로 등의 고민 상담 그리고 내부 고발까지. 페이지는 학우들의 다양한 익명 제보에 힘입어 교내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커뮤니티로 성장했다.
최근 학우들 간 소통의 다리가 되어준 페이지에서 ‘생활스포츠학부 군기’, ‘학생회관 음식물 쓰레기’ 등의 문제가 대두됐다. 전자는 예체능대 내의 군기 문화에 대한 개선을, 후자는 공사 추진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렇듯 익명의 페이지는 교내의 문제들을 공론화해 해결될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순기능을 갖는다. 하지만 제보들이 사실관계가 파악되지 않은 채 관리자들에 의해 게시되어 또 다른 피해자를 낳고 또 다른 논란을 키우기도 했다.
페이지에서는 관리자의 주관적인 판단 하에 제보의 선별과 언어 필터링이 이뤄진다. 하지만 현재 관리자는 제보된 이야기를 대신 게시할 뿐, 따로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데에 힘쓰지 않는다. 이러한 체계에서 어떤 대상을 비방하려는 악의를 가진 제보가 학우들 사이에서 공론화된 이후 해당 문제가 사실무근인 일이였음이 밝혀진다면, 그 과정에서 비난받은 대상은 피해에 대한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가?
일반적인 커뮤니티는 개인이 직접 글을 작성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진다. 하지만 해당 페이지의 경우 관리자가 글을 대신 게시해주기 때문에 그에 대한 책임이 관리자에게 있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페이지는 언론 기관이 아니므로 사실관계를 파악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그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사실관계를 어느 정도 파악하려는 노력은 필요하지 않을까.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기 위해, 페이지 내에서 사실관계 파악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전해준다는 것’의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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