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학벌주의 보고서
대한민국 학벌주의 보고서
  • 이재하 기자
  • 승인 2016.05.21
  • 호수 144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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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사회로 비춰 본 학벌주의

지난 2014년 대학교육연구소에서 발표한 ‘통계로 본 학벌사회’에 따르면 국내 박사학위 소지자 신규임용 교수 중 39%가 SKY출신이다. 39%라는 비율이 크게 와 닿지 않을 수도 있지만 신규임용 교수의 다수가 유학파라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 교수사회의 주류로 대표되는 서울대 출신 미국 유학파를 비롯한 명문대(절대적으로 서울대) 출신의 장악력이 상당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런 학벌 중심의 교수사회에 대한민국의 학벌주의를 투영해 다뤄보고자 한다.

서울대 ‘독점 현상’, 모교 ‘순혈주의’
현재 대한민국 교수사회에서 ‘학벌주의’를 말할 때, 두 가지의 쟁점이 존재한다. 서울대와 특정 명문대 출신들이 교수사회의 주류 세력을 이루고 있다는 점과 국내 학계에서 자생한 지식인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서울 상위권 대학의 경우 서울대 출신과 모교 출신의 비율이 균형을 이루며 주류를 차지하는 경향을 보인다. 실제로 기자가 서울캠퍼스 공대 교수들의 학력 사항을 조사하였을 때, 학력 사항을 확인할 수 있는 266명의 교수 중 105명(약 39.4%)은 한양대학교 학부 출신이다. 그리고 86명(약 32.3%)은 서울대 학부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김성해<대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미국 대학의 경우 교수 임용 시 같은 대학 출신을 최대한 배제한다”고 강조한다. 동일 학파의 선후배, 사제 관계에서는 다양한 논쟁이 어려워 학문 발전이 저해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김상봉<전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는 권력의 중심에 갈수록 서울대의 영향력이 커진다”고 주장했다. 대학의 입장에서는 예산 확보를 위해 국책사업 선정이 중요한데, 서울대 출신이 장악하고 있는 정·경·학의 유착 관계로 인해 서울대 출신을 임용하는 것에 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한편, 서울대와 한양대 출신이 아닌 교수는 18명(약 6.76%)이며 지방대 출신은 11명(약 4.13%)으로 나타났는데, 서울대와 한양대 출신 교수에 비해 턱없이 적은 숫자임을 알 수 있다. 특정 학부 출신만을 임용하는 폐쇄적인 구조에서는 모교 교수의 추천을 받기 위해 실질적인 실력보다는 학내 정치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그렇다보니 국내 박사들의 실력 함양에 큰 지장이 생기는 것이다. 이에 이수연<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교수사회의 폐쇄성 구조를 고려하지 않은 채, 국내 박사의 실력을 탓하는 건 결국 교수 자신의 얼굴에 침 뱉는 격”이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명문대 출신을 뽑는 것이 아니라, 뽑아놓고 보니 명문대 출신’이라는 말에는 논리적인 허점이 존재한다. 우선 교수 임용 과정은 전문성을 평가하기 위한 단계로 이뤄져 있다. 이는 전공 적합성을 기준으로 각 학부의 교수들이 지원자의 논문과 경력을 심사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교수 임용 시 지원자의 출신 대학을 모른다는 가정은 애초에 성립되지 않는다.
2004년에 발간된 도서 『학벌사회』에는 박사 학위자를 대상으로 한 통계 자료가 제시된다. 이에 따르면 신임교수 임용에 있어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치는 요소에 대해 교수들과의 친분이 21.4%, 학부 출신 대학이 20.9 %, 인사권자와의 친분이 18.6% 그리고 박사학위 취득 대학이 10.7%로 나타났으며 연구업적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답한 경우는 10.4%에 지나지 않았다. 10여 년이 지난 자료이긴 하지만, 임순광<비정규교수노동조합> 위원장은 “여전히 교수 임용에 있어 학벌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라며 “교수사회에서는 실력보다 운과 인맥관리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그는 “특정 인물을 염두에 두고 교수 채용공고를 낼 수도 있는 환경”이라고 언급했다. 즉 친분과 처세의 어려움은 학벌이 낮을수록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유학파 선호현상
유독 미국 유학파 출신이 주류를 차지하는 것도 한국 교수사회의 특징이다. 실제로 서울캠퍼스 공대 교수 중 미국 학위자는 158명으로 전체 교수 수의 절반 이상이다. 특히 서울대 출신 86명 중 61명은 미국 학위자로서 한양대 역시 미국 유학파 출신이 학계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연구원은 “대학뿐만 아니라 국책 연구원 대부분이 미국 유학파”라며 국내 박사가 우대받지 못하는 환경을 토로했다.
학문적 기반이 마련되지 않았던 해방 전후에는 미국 대학 시스템이라는 선진 문물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었고 그로 인해 미국 유학파가 현재 한국의 대학 체제를 정착시켰다. 하지만 경제·문화적으로 눈부시게 발전한 현재, 한국 사회가 스스로 지식인을 양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 연구원의 입장이다. 이 연구원은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들을 예시로 들었다. “일본 노벨상 수상자 19명 중 단 3명만이 미국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다”며 미국 학문이 선진 학문이라고 생각할 시대는 지났다고 강조했다.
한편, 김상봉 교수는 한국 유학생들의 풍토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많은 유학생들이 학벌 자체만를 획득하는 것이 목적이 돼, 정작 유학 기간 동안 학문적 역량을 갈고 닦는 데에는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외국에서 주류 학문을 배우지 못하고 기술적 방법만을 습득해 오는 이유는 시스템보다도 학생들의 주체적인 태도의 부족”이라는 분석도 내놓았다.

우리는 학벌 속에 살아간다
“서울대 아니면 의미 없습니다. 삼수, 사수를 해서라도 서울대 가세요.” 모 사교육 업체 대표가 홍보영상에서 한 발언이다. 우리 사회에서 ‘학벌주의’에 대한 담론이 제기되고 약 20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그렇다면 지난 세월 동안 학벌 담론의 지형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정답은 어떤 변화도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학벌에 대한 문제제기는 사라졌고 우리의 삶에 철저히 내면화됐다고 볼 수 있다.
도서 『학벌사회』는 △서울대 출신의 권력독점 △학벌주의로 인해 소모되는 사회적 비용 △학벌에 따른 계층화 및 대물림 현상 등을 꼬집은 바 있다. 2016년 현재 사교육 시장의 규모는 약 33조 원으로 추정된다. 이것만으로도 국가예산의 약 10% 정도의 비용인데, 편입·반수 등 추가적인 요소들을 고려하면 학벌주의로 인해 드는 사회적 비용은 상당한 규모로, 환율상승을 고려해도 엄청나게 증가한 금액이다. (2004년 당시 『학벌사회』에서는 10조 원 규모로 추정했다.)
학벌 계층화 및 대물림 현상 역시 강남 신문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2002년 서울대 입학생의 56.2%가 특목고·강남3구 출신인 반면, 2011년 65.7%로 오히려 이런 현상이 심화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회적 인식 역시 별다른 변화가 없다. 이른바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그리고 ‘지잡대’로 일컬어지는 대학 서열에 대한 인식은 오히려 고착화됐다.
학벌은 차별과 불평등의 기제다. 즉 학벌 체제의 병폐는 차별하는 정당성의 근거와 차별의 정도가 합당치 않음에 있다. 사회적 기여를 한 사람들에 대한 보상은 정당할 수 있다. 하지만 좋은 학벌을 얻는 것은 개인적 차원에서의 이득일 뿐 사회 구성원 모두를 위한 기여라고는 볼 수 없다. 학벌사회에 대한 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참고 도서: 『학벌사회』, 김상봉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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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예도 2023-07-30 18:54:13
이 글은 학벌주의에 대한 문제를 현실적으로 보여주는데 좋았습니다. 교수 임용과정에서의 학벌 영향력과 미국 유학파의 우세에 대한 분석이 신선하며, 사회적 비용과 계층화 문제를 다룬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학벌 체제에 대한 부정적 영향과 재고 필요성을 강조해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데 효과적인 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