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의 조상:조선시대 18세기 지식인들의 '벽'과 '치'
'덕후'의 조상:조선시대 18세기 지식인들의 '벽'과 '치'
  • 오현아 기자
  • 승인 2016.05.21
  • 호수 14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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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덕후’를 생각하면 최근에서야 일본에서 건너온 개념, 우리나라의 과거에는 없던 개념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지만 기록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도 덕후는 존재했다. 기자는 이를 더 알아보기 위해 정민<인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찾아가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18세기 조선 지식인들의 ‘덕질’을 이르는 말은 ‘벽(癖)’이었다. 벽의 개념은 행위 그 자체가 좋아서 몰두하는 것으로 지금의 ‘덕질’과 매우 흡사하다. 이런 행위는 당시를 대표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빈번하게 일어났다. 심지어 박제가는 ‘벽이 없는 인간은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기도 했다.

또한 그들을 부르는 용어에는 ‘치(癡)’라는 단어가 있다. 이는 바보, 멍청이를 뜻하는 것으로 관습적으로 미쳤다는 의미를 지닌 ‘벽’이 사회·통념적으로는 ‘치’로 인식됐다. 하지만 18세기의 지식인들은 이런 용어가 자신에게 붙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들은 미쳤다거나 바보 같다는 말을 오히려 명예롭게 여겼으며 미치지 못 하는 삶은 죽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들이 등장하게 된 이유는 당대 급변하던 사회에서 찾을 수 있다. 정 교수의 저서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이라는 책을 보면, 18세기에 급격히 문화가 개방되면서 중국에서 들어오는 지식의 양이 방대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는 “지식의 유입뿐만 아니라 18세기 조선은 상업 경제활동이 발달하면서 이전의 가치관이 와해됐고, 또한 ‘생존’의 문제에서 ‘잘 사는 것’의 문제로 넘어갔다. 이에 지식인들은 취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사물에 미치는 자세, 즉 ‘벽’으로 나타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들이 의도하진 않았지만 ‘벽’의 행위에서 만들어진 책들은 사회적인 수요가 있었다. 비둘기를 사육하는 방법을 담은 유득공의 『발합경』이라는 책이 나왔을 당시, 민간에서는 비둘기 사육 시장이 커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는 아래의 「태평성시도」라는 그림에 등장한 많은 종류의 비둘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이 책은 당시 비둘기를 키우던 사육사 사이에서 꼭 읽어 봐야 할 책으로 통했다고 한다. 또, 이옥의 『연경』이라는 책은 담배를 키우는 방법부터 맛있게 피우는 방법까지 담배에 관한 모든 정보를 담고 있다. 담배는 상업경제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많이 키웠던 부가가치가 대단한 특용작물이었다. 그의 책 또한 사회적인 수요가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정 교수는 “당시 조선에 출판시장이 크지 않아 이 책들이 정식으로 출간되지는 못했지만 만약 그랬다면 상당한 부가가치를 낳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벽’을 바라보던 당시의 시선은 대체적으로 좋지 않았다. 이 시기에는 ‘완물상지(玩物喪志): 물건을 아끼면 본심을 잃는다’라고 해서 사물에 몰두하는 것을 금기시해서 이런 문집을 출판하는 것은 국가의 처벌을 야기할 수도 있었다. 그로 인해 작가들의 이런 생각은 사회적으로 표출되지 못하고 각자의 정식 문집에는 빠트리는 등, 자신의 책을 그저 친구들과 돌려보는 심심풀이 도서 정도로 생각했다.

정 교수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예전에는 이런 태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경직된 사회였다면 현재의 사람들은 남들이 다 하는 것 말고 오랫동안 몰두해야만 할 수 있는 것에 감동하고 존경할 준비가 돼 있다”라고 말했다. 지금 시대가 개성과 창의성을 강조하는 만큼 학생들이 이전 지식인들의 태도를 보고 배울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옛 말 중에 ‘미로득한 방시한(未老得閑方是閑)’이라는 말이 있다. 젊을 때 얻는 한가로움이라야 진정한 한가로움이라는 것이다. 바쁘더라도 나를 위해 갖는 취미활동이 개인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도움: 박다함 수습기자 
정민<인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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