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원 감독과의 만남
박종원 감독과의 만남
  • 한소연 기자, 김승선 수습기자
  • 승인 2016.05.21
  • 호수 14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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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읽는 눈, 감독이라는 소명을 다하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한 박종원 감독은 2013년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총장 임기를 마치고 현재 한예종 영화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89년, 그가 처음 연출한 장편영화 「구로 아리랑」에서는 노동자들이 겪는 비참함을 소재로 사회적 문제에 정면 도전해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3년 뒤인 92년,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작품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만들어 낸다. 이문열의 원작과는 별개로 영화 자체가 갖는 뛰어난 완성도 덕분에 오늘날에도 ‘한국인이 가장 사랑한 한국영화’로 회자되고 있다. 「영원한 제국」과 개인의 감정을 세밀하게 묘사한 「송어」 등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었던 그가 감독으로서 다시 메가폰을 잡는다고 한다.

1년 여 전, 기자는 영화 제작 동아리를 만든 적이 있었다. 물론 그 동아리는 현재 부재하지만 잔재하는 것은 있다. 그것은 영화를 보는 것과 만드는 것은 다른 일이라는 것, 그리고 후자를 잘하는 사람에게 동경의 마음을 갖게 된 것 그뿐이다. 그런 마음을 가진 기자에게 특별한 만남이 찾아왔다. 바로 박 감독을 인터뷰하게 된 것이다. 그를 만나기 위해 그가 몸담고 있는 한예종을 찾았다. 약속 시간에 맞춰 들어선 그의 연구실은 적잖이 자유로워 보였다. 그런 연구실 못지않게 그 역시 유쾌하게 웃으며 기자를 맞아 주었다.



영화, 너는 내 운명
그가 건넨 시원한 음료수를 한 모금 마시며 첫 질문을 했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출신인 그는 어떻게 영화인을 꿈꾸게 됐을까. 남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는 걸 좋아하는 성향이었다는 그는 어린 시절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 자신의 성향과 좋아하는 영화, 드라마 쪽을 연결시키니 막연히 영화감독이나 드라마 PD 등의 직업을 꿈꿨다. 하지만 그 당시 영화감독과 관련된 과는 생소했기에 문과대에 속한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해 연출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다 우연히 진학을 돕는 교학과 선생님과 상담을 하게 됐고, 신문방송학과 진학을 염두에 뒀던 그에게 선생님은 연극영화학과에 진학하길 권했다. 생소했던 과를 강력히 권해주던 선생님과의 일화를 생각하면 할수록 아주 신기하다고 했다. “옛날에 원서를 쓸 때는 한 번 쓰면 원서를 봉해서 도장을 찍기 때문에 다시는 바꿀 수 없었어요. 그래서 마감 직전까지 선택을 망설였는데 선생님의 권유를 듣고 직전에 연극영화학과를 쓴 거죠. 아주 운명 같지 않나요?”

‘사회’에서 ‘개인’으로 변하다
박 감독의 대학시절은 영화 인생에 꽤 큰 영향을 미쳤다. 민주화 시대의 격변기에 대학시절을 보낸 탓에 그 주변 환경의 영향은 초기 작품에도 고스란히 녹아있다. 대학시절 자체가 영화인으로서의 ‘터닝 포인트’였다고 하는 그는 당시 작품에 사회적 의미를 많이 담으려는 노력을 했다. “첫 작품 「구로 아리랑」부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송어」 등 세상의 움직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라는 그는 영화 소재로 사회적 억압을 받는 노동자들의 인권 이야기 혹은 사회를 억압하는 권력, 독재에 대해 주로 다루며 사회적 문제를 시사하는 데에 주력했다.
특히 그의 작품 중 이문열의 소설을 영화화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초창기 영화감독으로서 그의 작품관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예다. 원작에서는 일종의 ‘권선징악’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지만 그의 손을 거치며 다르게 해석됐다. “저는 원작의 결말에 대해 다르게 생각했어요. 악의 상징인 엄석대는 결국 사회의 응징을 받고 그 대가를 치르지만 현실 속 보이지 않는 검은 권력은 계속 잔재해 있다는 거죠”라며 “반듯하지 못한 권력의 실체는 사회의 응징을 받고 제거된 상태가 아니에요. 우리는 그런 것들을 계속해서 의식하고 깨달아야 함을 말하고 싶었어요”라는 그의 말에서 과거 그의 작품관을 엿볼 수 있었다.
그랬던 그가 98년 연출한 「송어」에서는 조금 다른 태도를 보였다. 그간은 사회 속 인간의 사투를 다뤘다면 「송어」는 인간 내면에 초점을 맞춘 듯했다. 그는 “초기 사회와 인간이 대립하는 모습을 담은 영화에서 개인의 내면에 대한 이야기로 변했어요”라며 인간의 내면이 얼마나 치밀한지 그것을 파헤쳐보는 것에 집중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는 세기 말이었던 당시, 예술의 분위기가 개인의 사소한 행동과 치밀한 내면에 주목했던 이유도 있다고 덧붙였다. 앞으로도 개인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는 그의 말에 다음 작품이 기대됐다.


자신의 눈으로 본 세상을 녹여내라
좋은 영화의 힘은 실로 대단하다. 좋은 영화의 명대사는 한 개인에게 살아갈 힘을 주기도 한다. 또 사회적 문제를 소재로 한 영화는 그 어떤 것보다 다수의 의식을 깨울 수 있는 힘을 갖는다. 어쩌면 영화의 사회적 역할이 그런 것일 수 있다. 그의 말을 빌리면, 예술은 인간이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해 추구해야할 좋은 가치들을 인간에게 제시함에 그 의의를 둔다. 하지만 좋은 가치를 그대로 제시하지 않고 악한 소재를 통해, 혹은 그에 견주어서 흥미롭게 제시하는 것은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특색이자 장점이다. 즉, 우리 사회에서 영화는 예술이 갖고 있는 기능을 가장 극대화해서 이뤄낼 수 있는 매체라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박 감독이 생각하는 좋은 영화는 사회적 기능을 영화만의 장점을 통해 충실히 수행해낸 영화일 것이다. 그런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세상을 잘 관찰해 좋은 가치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더불어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고 시각화 할 수 있는 기능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상을 잘 읽어내고 그것을 트렌디한 맥락에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그는 감독의 생각이 관객에게 잘 전해져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까지의 과정을 바람직하게 수행하는 것을 역설하기도 했다.

교육자 박 감독, 학생에게 배우다
박 감독은 2013년 한예종 총장직을 퇴임한 후 다시 교육자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그는 어떻게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지 궁금했다. 박 감독은 교육자로서 학생을 가르칠 때, 이야기를 어떻게 영상물로 잘 표현해 내는지를 기본으로 가르친다고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학생 개개인이 자신만의 세상을 보는 관점을 갖고 해석해 내는 것을 강조한다고 했다. 더불어 그는 자신이 가르치는 것 이상으로 학생들에게 배우는 것이 많다며 말을 이어갔다. “제가 학생에게 51%를 가르치고 학생에게 49%를 배우고 있는 것 같아요”라며 “가령, 연출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하나의 전제 조건을 제시하고 그것에 대해 찍어오라는 과제를 시킨 적이 있어요. 그 과제의 결과물들을 보고 학생이 왜 이렇게 구성했는지 그들의 생각을 듣다보면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발견하고 깨닫게 돼요. 그로인해 제가 세상을 보는 안목이 넓어지고 있어요. 그런 점은 학생들에게 고마운 일이죠”라고 말했다.
그가 세상을 보는 관점 이상으로 중시하는 것은 학형(學兄)이다. 학교 특성상 한 학년 안의 연령대의 폭이 넓은데, 이것이 같은 학문을 배우는 사람들끼리 좋은 효과를 낸다고 말했다. “클래스메이트(classmate), 즉 학형이라고 하는 것은 나이랑은 상관없이 같은 학문을 배우는 사이에 있어서 서로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거예요. 이런 것은 특히 공동 작업이 많은 영화 분야에서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감독이란 소명 의식
교수로서 강단에 서면서 다시 메가폰을 잡겠다고 한 그는 감독으로서도 노력하는 중이다. 자신에게 영화란 맘 놓고 휴가도 못 가게 만드는, 늘 뒤통수에 있는 부담 같다며 앞으로도 영화감독으로서의 소명을 다하고 싶다는 말로 그 열의를 대신했다. 특히 소명이라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역할을 통해 세상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 주어진 역할이 영화감독이라는 점에서 늘 감사함을 느낀다고 전한다. 
마지막으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냐는 기자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 질문에 자신이 태어난 이유, 세상에 내어진 이유는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이 있기 때문임을 믿는다는 그는 그 소명을 알고 그것을 다 하려고 노력했던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영화감독은 치밀하고 깐깐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그와의 만남은 인간미가 넘쳤던 것으로 기억된다. 교육자로서, 무엇보다 영화감독으로서의 그의 앞날을 응원한다.


도움 김승선 수습기자 sunsune2@hanyang.ac.kr 

사진 제공: 박종원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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