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사로]왜 유시진인가?
[진사로]왜 유시진인가?
  • 강민승 PD
  • 승인 2016.05.01
  • 호수 14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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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적’이라는 표현은 많은 경우, ‘권위주의적’이라는 표현과 혼용된다. 전통적 의미의 가부장들은 자신의 통제 하의 존재들에 대한 무한 책임으로부터 권위라는 정당성을 확보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위주의적’이라는 표현이 부정적인 뉘앙스를 덧쓰게 된 것은 기존의 가부장들이 책임은 도외시하면서 권위만 누리려 해왔거나 권위를 책임에 대한 대가로써 지나치게 요구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국제 시장]의 덕수(황정민)는 아버지(정진영)의 유언을 받들어 끝내 가족을 지켜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후손들로부터 환대받지 못한다. 장성한 아들딸들에게 아버지 덕수는 물론 경외(敬畏)의 대상이다. 말 그대로, 존경은 하지만 가까이 하고 싶지는 않은 존재. 덕수라고 가족들의 이러한 데면함이 반갑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방점이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대하는 방식에 찍혀 있음을 그는 알지 못했을 뿐이다.
 KBS 공사창립 특별기획 <태양의 후예>의 유시진(송중기) 대위는 군인으로서 자신이 해야 할 바를 다 하면서도 부하들에게 자신의 권위를 인정해달라거나 자신의 노고를 치하해 달라고 단 한 번 요구한 적이 없다. 또한 자신이 흠모하는 대상, 강모연(송혜교)에게 내가 너에게 이만큼 마음을 보여주었는데, 너는 왜 나에게 조금의 여지도 주지 않느냐고 요구하듯 반문하지 않는다. 즉, 그의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다. 자신의 입장과 역할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그에 대해 주체적으로 책임을 지는 것. 그는, 덕수와는 달리, 타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군인으로서 자국민을 보호하고, 남자로서 당신을 좋아하는 것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머뭇거리는 모연에게 다가서지 않으면서 물러서지도 않는다. 진심의 여부나 농도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마음이 오히려 상대에게는 부담이나 심지어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사랑을 말한다.
 우리나라를 넘어 범 아시아의 여성들이 유시진에게 열광하는 이유를 단지 그의 수려한 외모에서만 찾는 것은 지극한 게으름의 소산이다. 그렇다면 유 대위에 비해 외모가 한참(?) 떨어지는 서대영(진구) 상사에 대한 여성들의 환호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유시진은 이 시대가, 특히 ‘지금 이곳’의 여성들이 판타지로서 강제로 등판시킨, 새로운 형태의 가부장이다. 이런 현상을 단지 여성 시청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장르적 전략의 결과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다.
 우리는 최근, 거세된 욕망으로부터 오는 분노를 참지 못한 나머지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은 여성에게 신체적·심리적 폭력을 가하는 남성들을 심심찮게 목도할 수 있었다. 권위에 대한 굴종을 요구하는 전통적 의미의 가부장들과 이제는 흔적으로만 남아있는 남근적 권위를 물리적인 힘이나 계급의 차이로 대체하거나 보상 받으려 하는 지금 이곳의 남성들 사이에서 여성들은 하릴 없이 그들과 타협하거나 기꺼이 ‘꼴페미’가 되어 맞서 싸우기를 택일해야 한다. 우리는 혹 지금보다 조금 더, 서로에게 ‘개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자신이 벌여놓은 일과 자신의 감정은 자신이 추스릴 줄 아는 개인. 이것은 타인에 대한 존중과 다른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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