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종의 꽃이라도 그 모양이 제각각인데 하물며 사람의 ‘내면’은 어떨까. 바늘구멍으로나마 꽃의 내면을 들여다봤다. 김하은<경금대 경제금융학부 12> 양의 자존감과 그것이 그녀의 삶에 미쳐온 영향에 대해 들어보자.
평범한 인생이 어디 있겠냐만은 김 양이 선택한 학창시절은 평범한 또래 학생들과는 아주 달랐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2학년 때 자퇴했다. 공부에 뜻이 없어서가 아니라 뜻이 있기 때문이었다. 꿈꿔왔던 외고에 진학했지만 학교생활은 실망스러웠다.
아침 7시부터 저녁 10시까지 학생들을 강압적으로 묶어 놓는 학교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을 요구하는 수업방식이 그랬다. 또 인간관계가 좋아 친구도 많았던 그녀는, 남에게 퍼주기만 하는 관계에서 문득 ‘남의 식물엔 물을 주면서 정작 내 식물은 왜 돌보지 않는가’하고 짙은 회의가 들었다. 자신에 집중하고 삶을 주체적으로 계획해 나가기 위해 그녀는 자퇴를 결심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 시작되자마자였다.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삶의 주체로서 자신의 판단을 밀고 나간 덕분이었다. 김 양은 ‘밀고 나갈 수 있는’ 그 힘을 자존감이라고 봤다. 그녀에게 자존감이란 어떤 것에서든지 자신의 기준이 명확하며 그런 확신 하에 행동하는, 적극적인 삶의 주체가 될 수 있는 힘이었다.
이런 힘이 어디서 비롯됐을지를 묻자 그녀는 망설임 없이 부모님의 영향이 절대적으로 컸다고 대답했다. 부모님은 선택의 기로에 선 그녀가 방향을 찾을 수 있게끔 지원해준 숨은 조력자였다. “주변 친구들의 부모님은 변호사가 돼라, 대학원을 가라, 하고 구체적 진로까지 정해주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그러나 그녀의 부모님은 오직 신뢰로써 그녀가 방향을 찾을 수 있게끔 했다. 강요를 하지 않고 세상의 여러 가능성을 그녀에게 제시해줬다. 자퇴할 때도 그랬다. 자퇴가 하고 싶다는 말을 처음 꺼냈을 때 부모님은 김 양의 생각을 묻고선 그러라고 하셨다. ‘넌 뭐든지 열심히 해서 늘 이뤄내는 아이다.’ 부모님이 김 양에게 늘 해준 칭찬은 그녀에게 큰 힘이 되었다.
그럼에도 그런 외부적인 요인만이 자존감에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었다. 김 양은 무엇보다 자아 성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녀는 특히 “현대 사회는 쏟아지는 정보와 언제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스마트폰 때문에 우리의 시선이 너무 분산돼있다”며 “우리는 고독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그녀는 스마트폰으로 하는 일회성 게임이 큰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을 삶에서 주도권을 쥘 수 없는 이들이 잠시나마 자신의 통제 아래 둘 수 있는 가상의 현실로 도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봤다. 그녀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서 삶과 자신에 대한 화두를 끊임없이 던지는 것이 자존감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최근 그녀가 읽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삶에 새로운 화두를 던져주었다. 책에 나오는 글귀인 ‘Einmal ist keinmal(한 번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다)’과 ‘Es muss sein(그래야만 한다)’ 사이에서, 그녀는 균형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