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테스크 원더랜드
그로테스크 원더랜드
  • 이영재 기자, 맹은수 수습기자
  • 승인 2016.04.30
  • 호수 14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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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작가는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 석사과정을 졸업했으며 2014년 문학사상이 주관하는 제38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수상작은 2013년 단편소설 『몬순』으로, 아이의 사고사를 겪은 후 서로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은 채 팽팽한 거리감을 보이는 부부의 답답한 현실을 그린 작품이다. 이외에도 『밤이 지나간다』, 『저녁의 구애』 등 다양한 작품을 발표해왔다. 그녀의 작품은 대부분 ‘공포’나 ‘미스테리’한 감정을 다루고 있다. 하드코어하거나 그로테스크한 소재와 서술기법은 기존 한국 문학에서는 하위문화로 취급받기도 한다. 그러나 편혜영 작가의 작품은 괴담 같은 이야기들을 문단이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인간 본연의 문제로 탈바꿈시켜버리는 특징을 가졌다. 겉을 둘러싼 이야기와 분위기는 무섭고 섬뜩하고 비현실적으로 보여 순간순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지만, 그 껍질을 뚫고 머리를 내미는 주제는 읽는 이라면 누구라도 동요되고 공감하는 원초적인 내용이다. 자신만의 색으로 세상의 보편적 공감과 감동을 이끌어 낼 줄 아는 뛰어난 역량을 가진 편혜영 작가를 연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로테스크[grotesque]
‘한국 문단의 대표 미녀작가’라는 칭호가 있는 그녀는 외모와는 다르게 잔혹한 소설을 쓴다. “피를 묻힌 맨살의 죽은 쥐들이 방 안을 솜처럼 떠다녔다”, “피로 물든 누이의 가랑이에서 나온 것은 다리가 가늘고 몸통이 큰 개구리였다…” 그녀의 초기작품인 『아오이 가든』의 문장이다. 그녀의 작품엔 특히 날 것의 묘사가 많다. 그녀의 소설 속 날 것의 이미지들은 자연스럽게 글의 정황상 만들어질 때가 많다고 밝혔다. 그 이유는 피가 손에서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글로 표현하는 것이 재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00년 한양대학교 대학원을 다니면서 서울신문 신춘문예 대회 때 첫 등단했던 『이슬 털기』라는 작품 이후로 그녀의 초창기 작품은 잔혹하고 괴기스러운 그로테스크한 소재와 서술기법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제38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 『몬순』은 편혜영 작가의 그로테스크 기법이 잘 보이지 않는 작품이라는 평도 있었다. 이 점에 대해 그녀는 “‘요즘엔 글을 쓰던 초기와 조금 달라진 것 같아요. 어떤 작품은 내용이나 주제에 따라 초창기에 썼던 것과 비슷하게 그로테스크한 상황이 돌출되거나하는 장면도 있지만 요즘엔 좀더 밀착된 관계나 사람이 살아가는 힘 같은 걸 궁리하는 것 같아요.『몬순』이라는 작품도 이런 변화의 과정 중에 나온 작품이에요.”라며 그로테스크 기법이 잘 보이지 않은 이유를 밝혔다.
그녀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편혜영 소설에 붙은 가장 마음에 드는 수식어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광호 선생님의 ‘하드코어 원더랜드’, 신형철 평론가의 ‘내장을 만드는 글쓰기’라고 답했는데, 지금은 변화가 있는지 물었다. “작품에 대해서 좋아서든 인상적이어서든 읽고 말씀을 해주시는 거라 어떤 수식어든 다 괜찮아요. 간혹은 재미없다고 하는 반응도 읽고 나서 하시는 말씀이니까 괜찮아요. 제 작품이 재미없다고 생각되면 다른 작가의 작품을 찾아서 읽게 되실 거잖아요. 그런 식으로 독서를 계속 연결하는 계기가 된다면 재미없다는 반응도 안 읽어본 것보다는 훨씬 나은 반응인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라며 사람들의 모든 평가를 포용했다.

사람에 대한 소설, 인간과 관계
편혜영 작가의 작품에 대한 영감은 어디로부터 나오는 것일까? 그녀는 사람을 볼 때의 기준이나 세계관 등 개인적인 가치들이 작가에게 폭넓게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인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재미있고 우스꽝스러운 사건을 에피소드 식으로 먼저 떠올리는 작가도 있는 반면, 어떤 작가는 현실에 있을 법한 아주 참혹한 일을 먼저 떠올리기도 하고, 또 어떤 작가는 아주 밀착된 관계에 대해서 집중하기도 하는 등 작가마다 색이 좀 다르잖아요. 근데 그게 작가들이 ‘누구도 이걸 쓰지 않으니까 난 이걸 써야 되겠다’고 마치 채굴되지 않은 탄광을 캐는 것처럼 어떤 지역을 선점하는 식으로 글을 쓰는게 아니라 작가의 성향과 관심사 같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소재들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아요.” 편혜영 작가는 사람에 대한 소설을 쓰고 인간의 관계와 상처에 대해 소설로써 그들을 바라본다. 사람이 사람에게 상처받는 것, 살면서 잃어가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갖고 들여다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설을 써나가다 보면 상처받은 사람들이 먼저 떠오르고, 그래서 계속 비슷한 소재들이 반복되는 것 같다고 전했다. “한 사람이 겪는 인생의 경험이 비슷하니까 작가들이 창착하고 있는 얘기가 사실 많이 다르지 않거든요. 어떤 장면은 매번 비슷하게 상상하고 궁리하는 것 같은데도 막상 쓰고 나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냥 모든 장면이 쓰고 나면 원래 처음에 쓰려고 했던 건 이게 아닌 것 같은데하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 언어로 구현된 건 내가 머릿속으로 막연히 생각했던 이미지에 닿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되요”라며 수월하게 소설의 장면이 넘어가는 것이 드물다고 말했다.
'비슷함' 하면 ‘표절’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편혜영 작가에게 ‘표절’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영향을 받는 건 너무나 당연한 거고, 그걸 두려워해선 안 돼요. 작가들은 동시대 작가들한테도 영향을 받고 선후배작가들한테도 영향을 받아요. 영향을 주고 받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 것으로 어떻게 만들 것인지 그걸 궁리하는 게 중요하지, 영향 받기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요. 모든 작품은 영향 관계 아래에서 발생하고 발전한다고 생각해요.”

후천적인 욕망이 만드는 재능
그녀에게 인상 깊고 재밌었던 수업은 한양대에서 했던 소설 창작 강의라고 한다. 학생들이 자기 생각이나 하고 싶은 말을 ‘이야기’라는 형태로 발산하고자하는 욕망이 크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가 발산하고 싶은 욕망은 있는 반면, 그걸 더 잘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것을 읽어보는 경험은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기 얘기를 잘 하려면 일단 남들이 어떻게 얘기하는지 많이 봐야해요. 여러 가지 이야기를 서술하는 방식이라든가, 이야기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다양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천천히 다른 사람의 책도 보고 남의 얘기에 귀기울이면서 써나가면 좋겠어요.”
그녀는 창작에 있어서의 재능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자라면서 계발되는 것이라고 했다. 일단 자기가 하고 싶고 계속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커다란 재능이라는 것이다. “뭔가 쓰게 되면 반드시 더 잘쓰고 싶은 욕망이 생겨요. 욕망을 만드는 건 선천적인 게 아니라 후천적인 것이죠. 자라면서의 독서환경이라든가 영향을 받은 책들이 한 사람을 작가로 만드는지, 그저 독자로 두는지 결정하죠. 타고 나는 건 별로 없어요.”라며 사람들이 제각기 발산하는 욕구는 다양하고 이는 자아를 찾아서 발산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편혜영 작가가 하고 싶은 건 글로 쓰는 것이다. 그녀의 욕망이라는 건 글을 써서 뭐가 하고 싶다가 아니라 욕망 자체를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이다.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냐는 마지막 물음에 그녀는 깊게 고민했다. 그 후 대답은 그녀가 왜 독보적일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었던 충분한 것이었다. “앞으로 더 소설을 쓸 시간이 많을 것 같아요. 계속해서 자기 소설을 쓰려고 했던 작가라는 소리를 듣는다면 좋겠어요.”

사진제공: 편혜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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