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미처 전하지 못했던 그들의 이야기
[취재일기] 미처 전하지 못했던 그들의 이야기
  • 오현지 기자
  • 승인 2016.04.09
  • 호수 14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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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잠이 쏟아지던 날이었다는 것 외에는 별다를 것이 없는 하루였다. 낮잠을 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평소와 다름없이 기숙사로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문 앞에서 들리는 “단결 투쟁!”이라는 소리는 급한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 소리를 따라간 곳엔 머리에 빨간 띠를 두른 노동자분들이 가득 앉아있었다. 집회의 이유는 행복기숙사 노동자 해고 및 임금 체불. 기자로서의 사명감 반, 난생 처음 보는 상황에 대한 호기심 반으로 취재를 시작했다. 그리고 기자로서 기사는 중립적이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쓰는 이 글은 기자이기 이전에 그들의 목소리를 가까이에서 듣게 된 한 사람으로서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노동조합이라는 이익집단과 건설사라는 기업 간의 이해관계를 떠나 ‘노동자’라 불리는 사람들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었다.
집회 현장에서 취재 중인 나에게 노동자 한 분이 다가오셨고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눴다. 술에 조금 취해계셨기에 하시는 말 전부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가 원하는 건 ‘인간다운 삶’, 단 하나라는 것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건설 노동자는 일이 있으면 현장에 나가 돈을 벌고, 일이 없으면 하루를 공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인간다운 삶이란 그런 불안정한 생활이라도 걱정 없이 영위할 수 있는 삶일 것이다.
학교의 누군가는 “원래 노동자들이 정기적으로 집회를 하는 날이었는데 운이 없게 우리 학교에서 진행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운이 없었다’라는 말로 무시해버리기엔 내가 만난 그와 그들은 절박했다. 그 날, 일기에 이런 말을 썼다. ‘누가 더 억울하고, 누가 억지를 부리고 있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그냥 그 분들이 행복했으면 한다. 밀렸던 임금을 받아 맛있는 밥을 사먹고, 내일 또 일하러 나가야 한대도 아무 걱정 없이 편안히 주무셨으면 좋겠다.’
오늘 아침, 잠을 깨운 시끄러운 공사 소리가 반가웠다. 그들이 그 곳에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었다. 앞으로도 그 소리가 끊기지 않기를, 그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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