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오기에 중독되는 일
[취재일기]오기에 중독되는 일
  • 윤가은 기자
  • 승인 2016.04.03
  • 호수 14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열댓 줄 넘어가는 기사의 한 줄을 위해 홀로 이십 분을 기다렸다. 마지막 전시관 앞 한산한 복도에서 관람을 마친 사람이 나오길 기다리며 한참을 서성였다. 몇 명이 지나갔지만 용기를 내지 못하고 순식간에 놓쳐 버렸다. 쫓아가 인터뷰를 부탁하기엔 이미 거리가 상당히 벌어진 뒤였다. 겨우 다가가 인터뷰를 부탁했던 사람은 조용히 고개를 가로젓고선 지나쳐 갔다. 그때 난 지독한 씁쓸함과 비참함, 회의를 느꼈다. 내가 왜 아쉬운 입장이어야 할까. 나도 당당하게 전시를 보고 당당하게 집에 갈 수 있는데.
그 전시관에 정말 인터뷰하고 싶었던 사람이 있었다. 미술 전시라서 현장 인터뷰라도 전문지식을 갖춘 인터뷰이가 꼭 있었으면 했다. 마침 전시를 둘러보는 사람 중 한 작품 한 작품을 심각한 얼굴로 들여다보던, 교수님 같아 보이는 관람객이 있었다. 그분을 인터뷰하고 싶어 멀리서 오랫동안 주시했다.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 언제쯤 다가가면 좋을까, 작품에 몰입해 있는 도중 다가가면 불쾌해 하진 않을까, 질문지가 너무 초라하다 생각하진 않을까, 괜히 학교 이름에 먹칠을 하진 않을까, 망설이다 결국은 용기 내지 못하고 물러서 버렸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가 과연 이 일을 해나갈 수 있을까, 처음으로 내게 진지하게 물었던 것 같다.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이 이 일인데 나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도 용기를 끌어모아야만 겨우 해낼 수 있었다. 매번 나를 시험하는, 내 한계를 강제로 마주하게 하는 일과 크게 부딪쳤다. 그러나 그런 장벽을 누구의 도움 없이 내 힘으로 넘을 때마다 개운함과 벅참은 두 배, 아니 그 몇 배였다. 많이 걱정했던 전시 감독님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막 나왔을 때 그렇게 생동감 넘쳐 보일 수 없던 서울역. 그 개운함과 벅참에 중독되어 여기까지 왔다. 쉴 새 없이 맞닥뜨리는 난관에 괜한 오기가 생기는 걸까? 내 몸이 이곳을 떠나려 하지 않는 것이 이 질문에 매우 적극적으로 답하고 있는 것이라 믿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