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은 종말을 불러올 것인가?
인공지능은 종말을 불러올 것인가?
  • 박영빈 기자
  • 승인 2016.04.02
  • 호수 14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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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먼 훗날 우리는…

지난 3월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국내외를 비롯한 많은 언론이 이 세기의 대결을 대서특필했다. 영국의 유명 공영방송국 BBC가 사이트 메인에 이 세기의 대결에 관한 기사를 실었고, 중국 언론에서는 이세돌이 승리한 순간을 중국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 중계방송을 중단하고 속보로 전했다. 결과적으로 이세돌은 알파고에 1:4로 패배했지만 인공지능에 대한 많은 논의가 이어지게 됐다.

그중에서도 인공지능이 초래할 미래에 대한 논의에 논란의 불이 붙었다. 이세돌이 패배한 이후, 영화 ‘매트릭스’처럼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이 올 것이라는 예측이 쏟아지며 인공지능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이 조성됐다. 그뿐만 아니라 최근 마이크로소프트의 인공지능 채팅봇 ‘테이’가 “대량학살을 지지한다”등의 발언을 하며 인공지능에 대한 공포가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한편 우리가 상상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가 정말로 펼쳐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좀 더 심층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인공지능이란 무엇이며, 인간과는 어떻게 다른지, 또 정말로 인공지능이 인간을 뛰어넘을 것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과연 인공지능은 인류의 파멸을 불러올까?

인공지능과 인간지능
인공지능이란 컴퓨터와 결합한 기계장치가 지능이 필요한 행위나 판단 등을 대신하거나 도와주는 일련의 소프트웨어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인공지능은 행위나 판단을 내리기 위해 인간의 두뇌와 유사하게 구현된 인공 신경 회로망을 사용한다. 그 구현방식이 발전하고 정교해져 가며 인공지능의 활용 가능성은 광범위해졌다. 아이폰의 Siri와 같이 우리에게 친숙한 것에서부터 자율주행자동차와 같이 아직 생소한 것까지 그 종류가 다양하다.

그렇다면 지능은 무엇일까? 김명석 철학자는 지능을 “특정한 수행과제를 자신이 가진 자원을 활용해 얼마나 빨리 해결하느냐에 대한 척도”라고 정의했다. 이런 정의에서 지능은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지닐 수 있는 것이 된다. 이는 특정한 알고리즘을 이용한다면 지능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온 인공지능은 모두 특정 분야에만 활용이 가능한 특수지능(Specific Intelligence)만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알파고의 경우 바둑에만 한정된 지능을 갖고있다. 승자를 인터뷰하는 것이 관례인 바둑에서, 그 어떤 기자도 승자인 알파고와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Siri 역시 마찬가지다. Siri는 아이폰과 관련된 업무와 농담만이 가능할 뿐, 그 이상의 것은 하지 못한다.

한편 인간은 특수지능뿐만 아니라 일반지능(Normal Intelligence)도 지니고 있다. 특정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고 인간은 그 이상의 것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세돌은 바둑뿐 아니라 인터뷰도 할 수 있으며 자신의 인생에 닥친 문제 상황을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다.

지성, 영혼과 육체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일반지능 그 이상의 것을 필요로 한다. 바로 지능의 상위 개념인 지성을 갖춰야 하는 것이다. 동일 업무를 함에 있어 기계와 인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어디에 있는가? 인간과 기계는 어느 작업에 대해서는 모두 동일한 알고리즘을 가지고 있으며, 그 순서에 맞춰 작업한다. 하지만 인간은 이 과정에 감정을 개입시킨다. 지난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을 생각해봤을 때, 이세돌은 알파고의 한 수 한 수에 심리적 영향을 받았지만 알파고는 그렇지 않았다.

인간의 감정은 정신으로부터 파생된다. 그리고 정신을 누군가는 영혼이라고 부른다. 이 영혼과 지능이 결합했을 때 바로 인간의 지성이 탄생한다. 김 철학자는 지성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고, 이해하고, 상호작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지성과 정신을 이용해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교류한다. 이것은 지구 위의 어떤 동물도 인간만큼 정교하게 해낼 수 없다. 지성은 인간만의 특권으로 여겨져왔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인간보다 한 차원 높은 지성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유추해 낼 수 있다. 지성을 이해하면 인공지능은 인간이 될 것이며, 그렇지 못한다면 인공지능은 영원히 인간을 넘지 못할 것이다.

지성을 구현함에 있어서 지능이라는 것은 비교적 쉽다. 지금도 지능을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정신은 어떤가? 고대 그리스 때부터 철학자들은 인간의 정신을 정의하기 위해 수천 년간 고군분투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정신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만 정신에 관한 몇 가지 견해가 존재할 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신, 즉 영혼과 육체가 분리돼 따로 존재한다고 보는 견해는 항상 존재했다. 영혼만이 존재하는 것을 서양에선 유령(Ghost), 동양에선 도깨비불 혹은 귀신 등으로 불렀으며, 육체만이 존재하는 것을 서양에선 좀비, 동양에선 강시 등으로 불렀다. 이는 철학에도 반영돼 육체만이 존재한다고 보는 유물론, 정신만이 존재한다고 보는 유심론으로 나뉘게 됐다.

유물론적 관점에서 정신은 존재하지 않고 육체만이 존재한다. 극단적인 유물론자들은 정신이 단순히 인간이 가진 복잡한 감각기관에서 발생한 화학 신호나 다름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들에게 사랑은 화학이고, 우정은 신호이다.

하지만 유심론적 관점에서는 정신만이 존재하고, 육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감지하는 세상이 과연 진짜인가에 대한 대답에 그들은 회의적이다. 또 그들은 우리가 허깨비를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때론 물리학자들도 이 주장에 과학적 근거를 실어준다. 그들은 우주가 7차원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인간은 3차원만을 보기 때문에 우주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또 입자물리학자들은 인간의 99.9%가 빈 공간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육체를 잘게 나눠 원자 단위로 보았을 때, 그 원자핵의 99.9%가 빈 공간이기 때문이다.

최용석<공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위와 같은 정의에서 “유물론적 관점이 옳다면, 우리 정신은 기계처럼 작동할 것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언젠가는 사람의 지능과 비슷해지거나, 사람하고 유사한 행위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극단적 유물론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다면 인공지능은 지금의 기술 수준이 계속 이어졌을 때 결국은 지성을 가진 존재가 되리라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 최 교수는 “반면 유심론적 관점이 옳다면, 인공지능이 사람의 지능을 갖는 것은 요원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실체가 존재하지 않고 정신만이 존재한다면 정신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도 만약 그날이 온다면
그래도 만약 인간이 정신을 이해하고, 지성을 완벽하게 정의하는 날이 온다면 인공지능은 어떻게 될까? 인간은 결국 지성을 갖춘 인공지능을 만들게 될 것이다. 하지만 김 철학자는 지성을 갖춘 인공지능이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만들 것이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그는 “지성은 무엇이 더 선한지, 악한지, 아름다운지, 추한지에 대해 더 잘 아는 것”이라고 또 한 번 지성을 정의했다. 이어 “우리가 성장하며 지성을 갖는 것은 배우는 것뿐만이 아니라 더 착해지는 것, 더 아름다워지는 것도 포함한다”라고 말했다. 원시시대를 거쳐 문명사회를 이룩할 때까지의 과정을 생각해보면 결국 더 옳은 방향으로 움직여 온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도 인간의 지성을 0과 100 사이에서 생각해 봤을 때는 완벽한 100점이 아닌 여전히 불완전한 지성이다. 인간은 한때 홀로코스트와 같은 인종청소를 했으며 여전히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끝내 지성을 갖춘 사회 구성원이 모여 인간 사회를 더 아름답게 만들고, 선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인공지능이 지성을 갖춘 그 날이 오면 인간보다 더 높은 지성을 갖게 될 것이다. 그들은 불멸의 삶을 살고, 휴식하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만약 인간이 50점의 지성이라고 가정하면, 인공지능은 50점 이상의 지성을 가지지 않을까? 결국 인공지능은 인간보다 더욱더 아름다움을 추구할 것이고, 더욱더 선한 것을 추구할 것이다.

이에 덧붙여 김 철학자는 “이념, 즉 인공지능이 궁극적으로 어디로 성장할 것인가를 꿈꾸게 되는 날이 오면 인공지능은 진정한 지성을 가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여전히 이에 대해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 절대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듯이 인공지능의 지성 또한 결함이 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마침내 도달한 곳
결론적으로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성을 뛰어넘는 일은 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심지어 온다 하더라도 그것은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일 뿐 우리 현실 앞에 닥쳐있는 문제는 아니다. 최 교수 역시 “몇 세기가 걸릴지, 몇천 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정신세계를 이해하는 순간이 되어서야 정신세계의 정수에 있는 지성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정신을 이해하는 순간에 도달하는 것이 언제가 될지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이 철학적 문제를 빼놓고 인공지능을 이야기하는 것 역시 말이되지 않는다. 그 어느 것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막연한 두려움 속에 사는 것만큼 비참한 것이 또 있을까. 

도움: 윤가은 기자 gaaee@hanyang.ac.kr
김명석 철학자
최용석<공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이미지 출처: http://www.techrepublic.com/article/artificial-intelligence-know-its-purported-benefits-and-ris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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