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사과와 토마토주스
[취재일기]사과와 토마토주스
  • 이재하 기자
  • 승인 2016.03.20
  • 호수 1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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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1면의 탑 기사로 나간 프라임 사업 취재 과정 중에 있었던 일이다. 프라임 사업 공청회가 끝난 뒤, 차장 기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프라임 사업 기사에 대해 학교 측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주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 이후 부총장 및 각 부서 처장과의 면담이 있었다. 그때 교직원이 필자에게 사과와 토마토 주스를 내줬다.
필자는 부끄럽게도?이런?제안을 듣고 난 뒤에 기사 쓰기가 편해지겠다는 생각을 했다. 학교가 제시한?가이드라인을?따르면 방대한 자료들을 직접 분석해야 하는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결국, 학교?측이 원하는 방향대로 기사를 작성했고 처장님의 ‘검열’까지 받은 뒤 신문의 1면에 보도됐다.?
다음날, 조판 작업 중이었다. 주간 교수님께서는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들으시고는 “언론인의 자존심을?지켜야 한다. 지성인이자 전통있는 대학 정론지의 기자로서 취재원이나 이해관계자들의 검열을 받을 필요가 없다”라는 조언을 하셨다.
그 순간, 아차 싶었다. 학보사?기자로서 일할?때는 학생이 아닌 진짜 ‘기자’가?돼야했다. ‘기자 일을 진지하게 해보자’라고 마음을 먹었지만,?깊이 있게?분석하는 것이 귀찮기도 했고 그저 말?잘 듣는?학생이기도 했던 필자는 상황에 타협하고 말았다.
기자라는 직업은 모두가 한 방향만을 바라볼 때 과감히?뒤돌아볼?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프라임?사업 기사는 군더더기 없이 쓰이긴?했지만, 과정이?부끄러운 기사다. 깊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기자로서 기계처럼 취재하고?기사를 만들어내는 것은 지양해야 겠다. ‘사과와 토마토주스’는 타협에 대한 비유적인 표현이다. 그 날 난 사과와 토마토주스를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지난날의 내 모습을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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