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되고 억압 받은 아픔에 대해 말하다
소외되고 억압 받은 아픔에 대해 말하다
  • 한소연 기자, 이영재 기자
  • 승인 2016.02.29
  • 호수 14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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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의 그늘 속 빛줄기, 정병호 교수

지난해 9월 유골 봉환식이 열렸다. 유골 봉환식이란 일제강점기에 희생당한 강제노동자들의 유골을 한국으로 봉환하는 식이다. 이를 주최한 ‘평화디딤돌’은 정병호<국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이하 정 교수)의 주도로 운영되고 있는 시민단체이다. 정 교수는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외에도 ‘평화 디딤돌’을 비롯해 ‘한양대 글로벌 다문화 연구원’, 탈북청소년을 위한 ‘하나둘학교’, 이주청소년을 위한 ‘무지개청소년센터’ 등 여러 단체를 설립하여 소외된 문화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 왔다. 다문화 차별 문제뿐만 아니라 최근 진행된 유골 봉환식, 그리고 여전히 치료되지 않은 상처인 위안부 문제 등 아픔의 역사에 불을 밝히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억압과 역사를 치유하는 情(정), 공감능력
‘문화인류학과 정병호 교수 연구실’이라고 쓰인 문 앞에 멈춰 섰다. 약속 시각에 맞춰 연구실의 문을 열자 분주해 보이는 정 교수를 만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한대신문 한소연 기자입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인사를 하자 정 교수는 밝은 미소로 어서 오라며 반겨주었다. 기자가 자리에 앉자 차를 따라주는 그의 모습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사실 정 교수를 그날 처음 만난 건 아니었다. 2년 전, 기자는 정 교수의 수업을 들었던 수강생이었다. 그 당시 소외된 문화에 대한 강의도 좋았지만, 세월호 합동 분양소를 직접 방문해 보는 과제를 주기도 하고 날씨가 화창할 땐 야외 수업을 하던 그의 강의는 인간미 넘치는 수업으로 기억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온정이 넘치는 그의 이야기를 들을 생각에 조금 떨리기 시작했다.
인터뷰 당일, 오전에 수요 집회에 참여하고 오느라 바빴다고 전하는 정 교수에게서 위안부 문제와 유골 봉환식에 대해 자세히 듣고 싶어졌다. “우리 민족의 수난기에 희생된 사람들에게 우리가 정말 적절한 추모를 했는지 의문이 들었어요. 우리는 그분들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요즘 추세를 보면 제대로 기억하기는커녕 그저 필요할 때 이용만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정 교수는 일제 강점기에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도구로써 이용되고, 억압받았던 역사의 피해자들이 하나의 인격체로서 추모받고 기억되길 소망했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권력 엘리트들은 감수성이 모자란 것 같아요. 그래서 아픔과 상처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공감능력도 없어요”라며 인류를 인간화하는 감수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 속에 내재된 감수성이 희생자들의 역사, 억압받은 사람들의 기억을 다시금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불러들일 수 있게 하거든요. 제가 하는 일들도 그것을 깨우기 위한 활동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것은 소외 집단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시작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유골 봉환식, 그 뒷이야기
유골 봉환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정 교수는 유골을 발굴하면서 한 구덩이에 세 명의 백골이 발견되는 등 일제 군국주의의 폭력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기자는 일본이 저지른 참혹한 역사를 직접 경험한 정 교수가 일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는 이런 참혹함은 분단과 전쟁의 역사 속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인데, 이것을 일본 사람 개개인의 잘못으로 몰고 가기보다는 어떤 조건이 인간을 악마로 만드는가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오히려 개개인의 잘못을 운운하는 것보다 국가의 구조적 강압이 도덕적인 인간을 비인간화시킬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저 역시 집단적 이익을 위해 인간을 도구로 만드는 체제에 대한 비판과 경계를 더 하게 됐어요. 동시에 그런 것을 권력의 도구로 이용하는 자기중심적인 권력들에 대한 경계도 늘 하고 있습니다.”

과거, 그리고 현재의 국가
기자는 정 교수에게 유골 봉환식을 하며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이에 정 교수는 한숨을 깊게 쉬며 생각에 잠겼다. 한참 후에 힘겹게 운을 뗀 그는 “힘들었던 점은 많았죠. 국가 권력은 그때도 반인도적인 범죄를 저질렀고, 국권을 상실한 국가는 그때의 우리 백성들을 보호하지 못했어요. 지금도 여전히 그래요”라고 말할 뿐이었다. 국가 권력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도움이 안 되며 오히려 방해가 됐다는 그의 말에서 달라진 게 없는 국가의 모습에 대한 씁쓸함이 묻어났다.
정 교수는 국내의 상황뿐만 아니라 일본의 상황 역시 다를 게 없다고 했다. 실제로 일본에서 아베 정권을 비판하는 언론인에 대한 탄압이 자행되고 있으며 언론의 의제 설정 기능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모습도 식을 진행하면서 큰 걸림돌이 됐다고 말했다. “다행인 건 일본 내에서 과거의 실수를 낱낱이 밝히고 반성하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어요. 자위대를 만들어 전쟁이 가능한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아베 정권에 대해 일본의 양심적인 종교인, 학자들은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일본의 젊은이들은 총을 드는 것이 아니라 삽을 쥐고 우리가 저지른 역사의 만행들을 파헤쳐야 하며 그 현실을 느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라며 “과연 우리 사회에도 그들과 같은 양심인이 있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인권 유린은 지금도 우리 근처에서 비슷한 형태로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에요. 이런 문제는 인간이기에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연대의식 없이는 해결될 수 없어요”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점점 늘어나는 유골 봉환식 지원자들을 보며 조금씩 변화돼 가는 상황에 대한 고마움을 내비치기도 했다. “내일(2월 18일) 연대의식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 정부에 희생의 역사를 새긴 동판을 세우고 올 예정입니다”라며 결의를 다진 정 교수는 지난 18일, 강제 노동의 역사 현장인 홋카이도로 출국했다고 한다.

차별, 소외된 우리
정 교수는 일본과의 문제 말고도 한국 다문화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노력해왔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에 대한 차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원인을 물었다. “개개인의 인성적인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가 개인을 변하게 만드는 겁니다. 흔히 증오의 정치라고도 하는 나쁜 정치가 지향하는 게 바로 편 가르기에요. 더 많은 권력과 돈을 가진 쪽이 ‘우리’를 만들고, 더 적은 쪽을 ‘남’으로 만듭니다. 모든 잘못의 근원이 남에게 있다고 탓을 돌리는 건 쉬운 일이 되거든요. 편가르기로 차별을 조장하는 것은 주류집단의 권력을 더 견고하게 만드는 겁니다”라며 제도적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차별적인 인식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의 문제점도 역설했다. 차별을 쉽게 하는 사람은 자신 역시 어느 분야에선 열등한 처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고 했다. 또한, 편 가르기 정치가 개인으로 하여금 열등감에 사로잡혀 내국의 근본적인 문제를 간과하게 만들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에 이용하려고 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문제의식부터 시작해서 자기 부정도 해보고, 자기를 상대적인 위치에 놓기도 하면서 ‘나도 열등한 위치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세상의 서열의식, 우월감과 열등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게 정당한 자연의 법칙이라고 인식하는 순간부터 자기도 그것의 노예가 되는 거예요. 타인을 업신여긴 만큼 본인도 열등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거든요. 그렇게 사는 삶이 과연 좋은 삶일까요?”라며 이러한 현실 속에서 학생들이 가져야할 생각에 대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호기심 많은 열정의 사나이
문화인류학을 공부하면서 수많은 나라를 여행했다고 하는 정 교수가 말하는 ‘여행이 갖는 의미’가 궁금하다는 기자의 질문에 “그동안 좁게 규정된 삶의 방식에 내가 얼마나 길들어 있고, 낯선 환경에서 내가 얼마나 무력한가를 반복적으로 느끼다 보면 개인의 적응 역량이 넓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런 훈련을 하는 것은 이런 급변하는 조건과 상황 속에서 적응하고 변화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입니다”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정 교수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했다. 그 질문에 그는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세상에 호기심을 갖고 탐색하는 사람 있잖아요? 세상과 함께 노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한번 사는데 정말 어린이처럼 호기심을 가지고 ‘이거 재밌겠다, 해봐야지’라면서 몸을 던져 자신이 설정한 일에 파고드는 인생이 좋아요”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호기심 많은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여러 가지 일에 도전하는 것은 힘이 들지만, 산 정상에 올라가야만 재밌는 것이 아니라 등산하는 과정에서 물놀이도 하고 같이 온 사람들과 시원한 물을 나눠 마시는 것도 재밌는 일이라며 “저는 뭘 정복하고자 하는 욕심은 없어요. 그 과정이 그저 즐거우면 됐죠”라고 말하는 정 교수의 답변을 듣던 기자의 가슴은 뜨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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