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물대포와 악마
[장산곶매] 물대포와 악마
  • 전예목 기자
  • 승인 2015.11.28
  • 호수 14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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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대포가 한 농민 운동가를 사경을 헤매게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해하기 어려웠다. 물을 물로 본 것이다. 물대포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기 위해 실제 영상을 보니 물‘대포’라는 말을 실감했다. 경찰이 시위 참가자에게 쏜 물은 단순히 물을 뿌리는 정도를 넘어 어느 정도 살상력까지 갖춘 물줄기였다.
물대포 영상을 보는 중 이해하기 어려운 경찰의 행동이 있었다. 물대포에 맞아 쓰러져 있는 사람한테까지도 지속해서 물대포를 쏘는 것, 그리고 쓰러진 사람을 쫓아가며 쏘고 구급차에까지 물대포를 쏜 것이었다. 그 장면은 여러 사람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쓰러져 있는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쏜 것은 조그만 모니터로만 바깥 상황을 확인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 불가피했다고 하더라도 응급조치를 취하는 사람을 방해하고 구급차에까지 물대포를 쏜 것은 왜일까? 그들이 원래부터 악한 본성을 가졌기에 그런 것인가?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이 진행한 ‘복종 실험’은 누구나 권력과 권위 앞에서는 악마가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실험은 간단했다. 처벌과 학습의 연관성을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라고 피실험자에게 말한 다음, 이들을 학생과 교사로 나눈다. 이후 각자를 독립된 방에 각각 배치하고 이때 학생이 문제를 틀리면 교사 역할을 하는 피험자가 점차 수위를 높이는 전기 충격을 주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전기 충격을 가할 때마다 교사 역할의 피험자는 학생의 반응을 들을 수 있게 했다. 물론 학생은 실제 피험자가 아니라 실제로 훈련된 연기자로서 목소리만 연기한다. 밀그램은 실험 전에 마흔 명의 심리학자에게 몇 퍼센트의 사람이 학생에게 위험이 될 만한 전기 충격을 가하겠느냐는 질문을 했는데 그들은 1%보다 적은 사람이 그렇게 할 것이라 했다. 하지만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최종 단계인 400V까지 간 사람은 피험자의 62.5%나 됐다. 이 비율은 권위 있는 인물이 전기 충격을 요청하거나 실험이 명성 있는 기관에서 이뤄진다고 했을 때 더 높아졌다고 한다.
한편 권위에 대해 복종하는 경향은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라는 명제에서도 잘 드러난다. 아렌트는 일반 사람들의 상식을 아돌프 아이히만의 사례로 부숴버린다. 많은 사람들은 나치 정권 하에서 유태인의 체포와 강제이주를 진두지휘한 아이히만의 성격이 유별나게 포악하거나 극단적인 반유대주의자일 것이라 기대했다. 그렇지만 기대에 어긋나게 그는 단순히 관료제의 톱니바퀴에 잘 적응하고 주어진 명령을 충실히 수행한 ‘평범한’ 공무원에 지나지 않았다.
밀그램의 실험과 아렌트의 주장이 의미하는 바는 권위적인 집단의 요구 앞에서는 개인의 행위가 도덕성에 크게 상관없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경찰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행위를 어떤 경위에서 한 것인지 설명해줄 수 있다. 물론 이들의 실험과 주장이 경찰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알아볼 일은 어떻게 하면 경찰이 국민의 생명에 위협을 가하지 않으면서도 질서를 지키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이다.
먼저 흉기가 될 수 있는 도구를 애초부터 경찰의 손에 주지 않는 것이다. 즉 물대포 자체를 사용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미 독일과 영국에서는 물대포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고 한다. 만약 우리나라의 상황상 제한하는 것이 힘들다면 지금보다 더 엄격한 사용 규정 마련이 시급하다. 우선 물대포의 살상력에 대한 정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다시 물대포 규정에 대한 조정이 필요하다.
정부는 시위대의 요청을 묵살한 채 불법 시위자 처벌에만 혈안이 되고 있다. 그러나 시위 과정에서 일어난 경찰의 폭력성에 대해 분명히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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