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조상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 전예목 기자
  • 승인 2015.09.12
  • 호수 14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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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에는 문화 유적지 답사를 여러 군데 다녀왔다. 이런 유적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비석이나 현판이다. 비석과 현판에는 으레 한자로 이곳은 언제, 어떤 경위에 건축물이 만들어졌는지 말해주고 있다. 또 유적지 근처에 자리잡은 박물관에 가면 우리 조상들이 한자로 쓴 문헌들이 있기도 하다. 옛 선인들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겪은 삶의 소소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어떨 때는 심각한 정치적 논쟁이 오가는 글도 있었다. 하지만 안타까웠던 점은 그런 것들이 우리말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영어보다 어려운 ‘외국어’로 다가온다는 점이었다. 우리 조상들이 삶의 터전에서 쓴 글이나 후세 자손들에게 남기고자 한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이 답답했다.
왜 선조와 후손 간의 단절이 발생하게 됐을까 고민하던 중 그 원인은 학교 교육에 있다고 보았다. 한글세대에 자라난 나는 한자 교육을 밀도 있게 받아본 적이 없다. 한자는 항상 비주류 과목이었고 내신을 위해 잠깐 스쳐 지나가는 과목이었다. 이 지나감이 조상과의 소통까지 비껴나게 할 것이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최근 교육부가 교과 과정을 개편하면서 다가오는 2018년부터 초등학교 3~6학년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자는 정책을 추진해 찬반 갈등이 불거졌다.
반대 의견의 뿌리 중 하나가 한자는 우리말이 아니니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대주의를 거부하고 자주성을 긍정적인 가치로 보는 우리나라의 상황에 비춰본다면 한자는 사대주의를 대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한자 자체는 중국에서 건너온 문자일지 모르나, 조상들이 누대에 걸쳐 한자로 지었던 수많은 글들은 모두 ‘우리말’이다. 한자를 공부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우리말을 죽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자 사용이 우리말을 죽이는 것이라고 하는 주장도 있다. 그렇지만 동시에 한자 사용으로 우리말 활용이 풍성해지는 측면도 많다. 한글로 읽힌다고 해서 내가 의미를 알고 있다고 착각했던 글자가 상당히 많았던 경험 때문이다.
그 중 하나가 ‘여인숙(旅人宿)’이라는 단어다. 이번에 여행을 하면서 터미널 근처에 ‘여인숙’이라는 글자를 보고 문득, ‘아, 여인숙의 ‘여인’은 여인(女人)이 아니라 ‘나그네 려(旅)’이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즉 한자를 모르면 의미 파악 능력이 떨어진다. 이렇게 말하면 한글만 쓰면 되지 않겠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이미 우리말 단어의 70%가량은 한자이다.
특히 근대화 과정에서 새로운 한자가 상당히 많이 만들어졌고 지금도 많이 쓰이고 있기에 한자 없는 언어생활은 사실상 불가능하거나 번거롭다. 그뿐만 아니라 교과서를 한자 전용 표기도 아닌 ‘병기(倂記)’ 표기로 인해 발생하는 학습 부담감 증대는 기우다. 병기 표기를 통해 한자를 더 알고자 하는 학생이 한자에 노출될 최소한의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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