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사설]현실의 깊이
[교수사설]현실의 깊이
  • 한대신문
  • 승인 2015.06.07
  • 호수 14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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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유명 대학이 대학원 입시에서의 ‘명백한’ 성차별로 소송을 당했다. 총 12,700여명의 대학원 지원자 중에서 남자의 합격률이 44%였던 반면, 여자의 합격률은 35%에 불과했던 것이다. 남성 지원자들이 여성 지원자들보다 전체적으로 더 우수했다는 근거가 과연 있었을까? 공립 교육기관에서조차 성별을 차별한다면 양성평등의 실현은 요원한 일이 되지 않겠는가. 당황한 대학 관계자들은 해당 자료를 자세히 들여다 보았는데, 결국 더 큰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전체 대학원 비율과 달리 학과별 자료에서는 여성의 합격률이 높은 경우가 더 많았던 것이다.
전체 통계자료에서 보이는 하나의 추세가 세부 집단에서는 사라지거나 뒤집혀 나타나는 위와 같은 현상을 흔히 ‘심슨의 역설’(Simpson’s Paradox)이라 부른다. 심슨의 역설은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이 평면적이기보다 입체적임을, 일차원적이기보다 다차원적임을 시사한다. 숲을 바라보면 나무의 결을 놓치게 되고, 개별 나무만을 보다보면 그들이 만들어내는 전체의 모습을 간과하기 쉽다. 정육면체를 구성하는 여섯면을 한꺼번에 보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현실에는 언제나 숨겨지거나 가려진 부분들이 존재하므로 눈에 보이는 것에만 의존해서 결론을 내린다면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매우 클 수 있다.
탁자 위에 물이 반쯤 들어있는 투명한 유리컵이 누군가에게는 ‘반 밖에’ 없는 것으로 보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물이 ‘반이나’ 차있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물반 공기반’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단순한 물컵이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눈으로 보는 단순한 사실조차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미디어는 현실을 압축하고 단순화해 평면적으로 만들고, 사람들은 결국 피상적 현실의 표면을 떠다니며 빈약한 근거로 서로를 헐뜯는 일을 반복한다. 이러한 ‘현실왜곡장’에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언제나 새로운 문제에 의해 대체될 뿐이다.
대학은 미디어나 바깥 세상이 만들어내는 유행에 휩쓸리기 보다 현실의 깊이와 숨은 측면을 드러내는 역할을 해야한다. 우리 대학의 학생들은 겉으로 보이는 것이나 주어진 정보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기보다 차분하게 성찰하고 이면을 탐구하는 자세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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