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예술 사이
현실과 예술 사이
  • 한민선 기자, 사진 성기훈 기자
  • 승인 2015.05.30
  • 호수 14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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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니 익스프에스 우경민 감독을 만나다

기사에 앞서 동영상을 먼저 보시기를 권장합니다. 당신이 투자한 5분의 시간과 LTE데이터가 절대 아깝지 않을 것을 약속드립니다.
                  ※주의
1. 애니메이션이 너무 재미있어 기사가 다소 지루할 수 있습니다.
2. 기사에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현실 속에서 열정을 불태우다
그림 좀 그린다는 한 청년이 한양대학교 ERICA캠퍼스 시각패키지디자인과를 입학했다. 그는 그 당시 예술가라기보다는 ‘현실’을 아는 학생이었다. 그는 미술을 좋아했지만 순수예술보다는 시각디자인을 택했다. 미디어나 제품에 미술적 재능을 접목시키고 싶다는 다소 현실적인 생각에서였다. 현실적이지만 열정이 있었던 그 청년은 어느새 예술성을 인정받는 ‘감독’이 되었다. 바로 조회 수 1000만을 훌쩍 넘긴 ‘자니 익스프레스(Johnny Express)’를 만든 우경민<알프레드 이미지웍스> 감독(이하 우 감독)이다.
우 감독은 한양대학교 시각패키지디자인과를 다니면서 애니메이션 제작을 위한 초석을 쌓았다. 전공 때 배운 기본적인 디자인에 대한 이론이나 색 감각이 후에 애니메이션 제작에서 도움이 됐다. 우 감독은 “전공 공부가 지금 하는 일에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대학에서 공부했던 디자인 부분이 대중들에게 다가가기 쉬운 시각적 즐거움을 알게 해줬어요”라며 한양대학교에서 공부했던 것들을 떠올렸다.
우 감독은 대학시절 열정적인 학생이었다. 애프터 이펙트(After Effect), 마야(Maya) 같은 디지털 작업 툴도 독학으로 익혔다. 우 감독은 “독학하기 어려운 프로그램은 아니에요. 인터넷에 있는 무료 동영상 강의가 많은 도움이 됐죠”라며 모든 대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또한 “사실 독학이라는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배우고 나서 그 기술로 혼자 무언가를 만들어 보는 것이 중요해요”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우 감독은 대학시절동안 쌓은 실력으로 ‘종이인간과 벽’이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연습 삼아 만든 이 단편 애니메이션은 훗날 알프레드 이미지웍스 입사의 결정적 한방이 됐다. 회사에서 지원자들의 개인 창작물을 평가하는 중 스스로 기술을 익혀 한 애니메이션을 완성해내는 그 끈기를 높이 산 것이다.

회사에서 살아남기
알프레드 이미지웍스에 입사한 우 감독은 열정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는 회사에서 꾸준히 모션 그래픽 기술을 갈고 닦았고 동시에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그러나 우 감독은 회사에서 주어진 일을 하면서도 애니메이션에 대한 꿈을 잊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그에게 기회가 왔다. 회사에서 자체 콘텐츠에 대한 열망이 높아지고 있었지만 실현할 적절한 인재가 부족하고 시간 배분이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그가 창작에 대한 욕심을 회사에 밝힌 것이다. 회사는 3년간 성실하게 일하고 성과를 보여준 우 감독을 적극적으로 밀어줬다.
회사에 다니면서 의견이 부딪칠 때도 많았다. 많은 상황에서 선임과의 의견 충돌은 항상 일어났다. 그때마다 우 감독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보여주는 것’이었다. “말로써는 설득이 안 돼요. 문서화된 것이 필요하죠.” 우 감독은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자료나 PPT를 준비했다. 특히 업무 시간 외에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고 잠을 아껴가며 작업물을 만들어냈다. 직접 보여줄 때만 “괜찮다”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우 감독은 깨달았다. “부지런해지면 생각의 갭을 줄일 수 있어요. 또 그 과정에서 자기가 잘못 생각한 부분도 알 수 있죠.”
우 감독을 믿어준 회사, 회사에서 배운 경험들을 활용해 작품을 만든 우 감독. 우 감독과 회사는 시너지 효과를 냈다. 회사의 일개 사원이 아닌 그에게 회사란 동료이자 선생님인 것이다. 그는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답했다. “스스로 하는 것이 중요해요. 회사는 회사 입장에서 사원에게 필요한 일을 시킬 뿐이죠. 특히 어느 회사도 임원 이하 직원들에게 비전이 있는 질문을 먼저 하지 않아요. 스스로가 비전이 있고 인재라고 생각이 되면 먼저 직접 가서 얘기를 하는 것이 중요하죠. 저 또한 함께 일을 하면서 좋은 창작물에 대한 의지나 결과물들을 3년 동안 꾸준히 보여줬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백지에서 자니 익스프레스까지
2014년 5월 한 동영상 사이트에 게시된 자니 익스프레스는 눈 깜짝할 사이에 1,000만 재생을 넘겼다. 이 애니메이션은 자니라는 우주 택배 기사가 한 외계인에게 택배를 전달하는 단순한 내용이다. 그러나 단순한 내용 속 ‘재미’는 사람들의 5분을 빼앗았다. 이 단편 애니메이션은 최근 진행된 제19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시상식에서 시카프 초이스를 수상했고, 슈퍼배드의 제작자인 크리스토퍼 멜리단드리 회장이 자니 익스프레스의 장편애니메이션 제작 스토리 개발단계에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의 5분을 빼앗은 이 유쾌한 애니메이션에 대해 들어보았다.
우 감독은 어렸을 때부터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있었다. 공각기동대, 에반게리온 같은 일본 작품을 보며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적인 그에게 이야기만큼 중요한 것은 대중성이었다.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 이제 막 발을 내딛는 그에게 중요한 것은 대중들에게 인기를 끄는 것이었다. 그는 적절한 기술을 쓰면서 지루하지 않은 영화 한 편을 만들어 내면서도 이야기에 관해 고민한 흔적을 엿볼 수 있는 토이스토리 같은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자니 익스프레스를 구상했다. 완전한 백지 상태에서 예술성과 대중성을 고민했다. 우 감독은 대중성을 위해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볼 수 있는 소재를 생각했고, 사람들이 모두 가지고 있는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을 넘어서는 상상력을 담으며 예술성을 살렸다. 
“번뜩 떠오른 아이디어는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과 같은 존재라 전혀 쓸 수가 없어요. 다듬어 가면서 고쳐야 보석이 되는 것이죠”라고 말하는 우 감독은 자니 익스프레스 역시 오랜 기획 단계와 수없이 많은 수정 단계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이런 아이디어를 위한 우 감독의 특별한 방법은 ‘멍 때리기’이다. “보통은 한 시간 정도는 잡생각을 하지만 3~4시간 정도 생각을 하다보면 잡생각은 사라지고 진지하게 작품을 생각할 수 있게 되요. 저는 주기적으로 낮에는 앉아서 멍을 때렸죠.” 멍을 때리면서 자니 익스프레스를 구상했던 그는 지금도 멍을 때리며 자니 익스프레스 장편을 준비하고 있다.
우 감독은 자니 익스프레스 장편화에도 입을 열었다. 지난 17일 내한한 크리스토퍼 회장은 자니익스프레스의 장편화 계획을 발표하는 기자간담회를 했다.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와 1차 계약은 한 상태에요. 1차 계약은 영화 개발을 같이 하자는 것을 뜻해요. 무조건 제작이 된다고 확답드릴 수는 없지만 장편을 구상 중에 있어요.”
자니 익스프레스가 영화화될 최고의 기회에 놓여있는 그에게 또 다른 꿈이 있을까. 그는 만들고 싶은 애니메이션이 있다고 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그 상황을 이겨내고 결국에는 승리를 하는 열정 넘치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이 역시도 상업성과 대중성을 염두에 두고 제작할 거예요”라며 현실적인 생각을 밝혔다. 상업성과 대중성을 염두에 두는 그가 매우 현실적인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는 철저히 ‘예술가’이다. 그는 자신을 ‘종합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고 지칭했다. “최근에 깨달은 것은 예술가가 되지 않으면 돈도 벌 수 없다는 거예요. 예술을 사랑하는 진정한 예술가가 돼야지 나머지 모든 것이 가능해져요”라며 예술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는 최근 순수 창작 활동을 하면서 마음속에 있는 예술가 성향을 차차 발견해가고 있다.
예술가 우 감독에게 ‘스무살로 돌아가면 무엇을 하겠습니까’라는 질문을 건냈다. “영어를 배울 것 같다”는 그의 말에 기자는 눈으로 되물었다. 우 감독은 “영어를 배운다는 뜻은 새로운 언어를 배운 다는 의미에요.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고요. 다른 나라 사람들은 다른 언어로, 다른 생각을 하고 살아요. 다른 언어를 배운다는 것 자체가 고정관념을 깨줄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 같아요”라며 새로운 경험을 하라 조언했다. 우 감독은 20살 때는 언어를 배우는 것처럼 새롭고 다양한 경험을 할 것을 강조하며 그 경험 속에서 자신이 정말 재밌어 하는 것이 무언인지를 찾으라 했다. 그렇게 고민하다가 하고 싶은 분야를 찾으면 적극적으로 해보기를 권장했다. “영화가 하고 싶으면 단편영화를 찍고,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으면 한 편 만들어 보는 거죠. 기술이 없어도 하고 싶다면 과정을 점프해서라도 한번 해보는 게 중요해요. 과감하게 뛰어 드세요!” 이렇게 말하는 순간, 평범한 청년처럼 보이는 우 감독의 눈에서 ‘자니 익스프레스’를 만들어 낸 열정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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