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류의 반란, 독립출판
비주류의 반란, 독립출판
  • 이혜지 기자
  • 승인 2015.04.04
  • 호수 14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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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 깎기의 정석」이란 책에 대해 들어본 적 있는가? 200여 페이지 내내 전동 연필깎이 사용법, 주머니칼로 깎기, 진기한 연필 깎기 기술 등 다양한 연필 깎는 방법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기성 출판사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던 이 책은 독립출판사 ‘프로파간다’에서 2013년에 출판한 독립출판물이다. 이 책은 발간 후 ‘2013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는 등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독립출판, 내가 왔다
독립출판은 독립문화 속에서 만들어진 출판물을 가리킨다. 독립음악이 독립문화에서 음악이라는 미디어를 통해 파생된 것처럼 독립출판은 출판물이라는 미디어를 통해 파생된 것이다. 이때 ‘독립’이라는 단어는 기성 출판사가 다뤄왔던 콘텐츠, 혹은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한다. 독립출판과 함께 언급되는 단어는 바로 1인 출판과 자가 출판이다. 이 세 가지 출판은 공통분모가 존재하지만 위치적인 관계에서 차이가 있다. 1인 출판은 말 그대로 한 사람이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형태다. 1인 출판은 기성 출판과 독립출판에서 존재할 수 있다. 자가 출판은 숫자의 관점이 아닌 ‘내가 한다’는 행위적 관점에서의 출판으로 ‘셀프 퍼블리싱’이라고 불린다.
독립출판물은 △기술의 발전 △기록에 대한 욕구 △유통 구조의 발전으로 등장했다. 우선 기술의 발전이 독립출판문화의 출현에 기여했다. 그 중 개인용 컴퓨터와 프린터기의 보급이 밀접한 연관이 있다. 과거에는 출판하기 위해서 기술과 돈이 있어야 했지만 요즘은 출판용 소프트웨어만 있다면 누구라도 인쇄와 편집이 가능하다.
다음으로 자기 생각을 기록하고 싶어 하는 욕구 또한 독립출판문화에 영향을 미쳤다. 인간은 기억을 기록·공유하고 싶은 욕구를 다양한 매체를 통해 표출해왔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하여 도구의 접근성이 높아졌고 사람들의 욕구를 표출하는 방법이 출판물이라는 매체로 확장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유통 구조의 발전이 독립출판문화 를 확산시켰다. 독립출판물이 한국에서 모습을 드러낸 시점은 2000년대 중반이다. 2009년 독립출판물 페스티벌인 ‘언리미티드 에디션’이 처음 열렸고, 뒤이어 2010년에 독립출판서점 ‘유어마인드’, ‘더북소사이어티’가 문을 열면서 독립출판 유통이 본격화됐다. 2015년 3월 전국의 독립출판서점은 37곳에 이른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린 독립출판 특별전을 공동 기획한 김명수<PAGES PRESS> 북아티스트는 “독립출판은 종이책의 위기와 거의 무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기성출판 대항마될까?
독립출판물은 △소비 형태 △출판 절차의 유동성 △형태의 다양성 측면에서 기성출판물과 차이를 보인다. 우선 독립출판물의 소비 형태는 기성 출판물과 다른 형태를 띤다. 기성 출판물의 소비 형태는 독자에서 그친다. 그러나 독립출판시장은 담이 낮기 때문에 누구나 독자 혹은 저자가 되거나 전시의 관람객으로 독립출판물 소비에 참여할 수 있다.
또한 독립출판물은 기성 출판물보다 출판 절차의 생략이 유동적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기성 출판은 기획 단계에서 편집자와 저자 간의 기획회의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독립출판은 이 단계를 생략하기도 한다. 또한 일부 독립출판물은 교정 및 검열과정을 생략한다. 이는 콘텐츠의 전문성 결여로 이어진다. 이런 전문성 결여의 문제는 전부터 독립출판 내부에서도 문제점으로 인식돼왔다. 출판물의 인쇄가 완료되면 기획자는 독립출판물을 유통하는 독립출판 서점과 컨택을 한다. 컨택이 이루어진 출판물들은 서점을 통해 직접 유통되거나 서점이 운영하는 온라인 홈페이지를 통해 유통된다.
다음으로 독립출판물은 대량으로 출판되는 기성 출판사의 출판물에 비해 다양한 형태를 보인다. 기성 출판물은 대량 생산을 해야하기에 출판물의 판형에 제약이 존재한다. 그러나 독립출판물은 소규모로 출판이 진행되기 때문에 출판물의 콘텐츠에 따라 형태나 판형의 변화가 가능하다. 독립출판문화의 주 소비층인 2030세대는 인터넷 읽기 방식에서 비롯된 파편적이고 가벼운 독서문화를 선호한다. 따라서 독립출판물은 기성 출판물에 비해 비교적 가벼운 형태를 띠고 있다. 그러나 독립출판물이 저렴하거나 가볍기만 한 것은 아니다. 기성 출판사에서 다루지 않는 논문이 독립출판의 형식으로 나오기도 한다.
독립출판문화는 출판 실험의 장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면에서 기성 출판문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 씨는 “독립출판물들의 끊임없는 실험 덕분에 탐독의 대상이었던 책이 마침내 예술적 가치를 함유한 탐미의 대상으로 변모됐다”라며 “기성 출판사들의 안전성을 추구하는 분위기는 오히려 독립출판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라고 덧붙였다.


이혜지 기자 hyeji19@hanyang.ac.kr
도움: 김명수<PAGES PRESS> 북아티스트
사진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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