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무상급식 중단 유감
[장산곶매]무상급식 중단 유감
  • 전예목 기자
  • 승인 2015.03.28
  • 호수 14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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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급식은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이기 때문에
훗날 국가 유지에도
크게 기여할 것

최근 홍준표 경상남도 도지사의 도내 무상급식 중단 발언으로 무상급식과 관련된 논의가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 무상급식을 필두로 복지 논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만큼 무상급식은 단순히 무상급식 실행 유무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중요한 사안이 되어버렸다.
시장경제가 아닌 도덕경제 관점에 입각해 무상급식을 바라보면 무상급식은 단순히 학생들에게 무료로 밥을 먹이는 행위를 넘어서게 된다. 도덕경제에서 무상급식이란 일단 정부가 먼저 호의를 베풀고 학생들을 정부의 호의에 빚진자가 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학생들이 나중에 자라서도 자신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정부에게 갚을 빚이 있다’ 혹은 ‘나는 사회에 받은 만큼 공헌해야 한다’와 같은 부채의식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사회 내부 구성원의 유대감을 증대시켜줄 것이다.
홍준표 의원이 말했듯이 부자 아이들을 제외한 아이들에게만 급식을 주는 선별적 복지를 하게 되면 가까운 시일로 봤을 때는 당장의 이익일 수 있다. 하지만 멀리 내다봤을 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혜택을 받지 못한 기억 탓에 자수성가한 사람이 기부하거나 세금을 내려는 의지가 부족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회가 나한테 해준 게 무엇이 있습니까? 저는 제가 잘나서 잘 된 것입니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한편 보편적 복지가 더 경제적으로 이득일 수도 있다. 부자인 사람들은 인원은 소수인데 반해 세금 내는 양이 가난한 사람보다 훨씬 많으므로 부자에게 복지혜택을 주는 것을 반드시 낭비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부자에게 복지 혜택을 주는 것은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려면 부자가 세금을 많이 내는 납세구조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무상급식을 비롯한 무상보육은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더욱 크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말도 있듯이 어릴 때 익힌 행동이나 기억은 보통 성인이 되어서도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지속된다.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을 어린 시절부터 겪어온 세대들이 그들이 받아온 온갖 혜택이 국가에 의해 행사됐다는 사실을 어릴 때부터 꾸준히 알아 왔다고 하자. 이후 성인이 됐을 때 그들은 어릴 때 받은 은혜를 국가에 보답하려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오드리 헵번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그녀의 가정은 극심한 궁핍에 시달렸다. 이때 그녀를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준 것이 유니세프의 전신인 국제 구호 기금이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성년이 된 그녀에게 유니세프 활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도록 한 것이다. 그만큼 유년 시절의 기억이 성인이 된 후에 큰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무상급식의 비용이 크다고 해서, 즉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것은 지나치게 시장주의적 관점으로만 무상급식을 바라보는 것이다. 시장경제의 관점만으로 현상을 바라볼 때 잃게되는 가치와 사회적 손실은 상당히 크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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