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칼럼]목련꽃 요정
[교수칼럼]목련꽃 요정
  • 안동근<서울 사회과학대 교수>
  • 승인 2015.02.27
  • 호수 14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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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목동이 살고 있는 행당동산 작은 오두막에 노오란 요정이 살고 있습니다. 아주 작은 오두막을 지키는 사랑의 요정은 바로 영원히 잠든, 못다 핀 하얀 목련꽃봉오리입니다. 몇 해 전 큰 길을 내기 위해 삽과 괭이를 든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아름다운 목련꽃나무를 어떻게 할까 생각조차 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아름다운 목련꽃나뭇가지를 무참히 찢어 동산 비탈에 그냥 내동댕이친 것을 보니 말입니다. 길가다 우연히 이 목련꽃나무를 발견한 목동은 겨울아이처럼 온몸이 얼어붙어 꼼짝달싹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그만 아기 눈사람이 되었습니다. 멈춰 섰던 심장 박동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왕십리 기적소리처럼 들리기 시작했을 때, 주르륵 흘러내린 눈물이 아이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얼마나 아팠니? 미안해, 작은 나무야. 내가 대신 사과할게”
“이제 몇일만 지나면 네가 그토록 기다리던 봄이 오는데...”
하얀 목련꽃나무는 아이의 품에 안겨 파르르 떨뿐 아무런 말이 없었습니다. 아이는 하얀 목련나무를 안고 오두막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두막 한켠에 빈 과자 통에 샘물을 담고 찢어진 목련꽃나무가지를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작은 나무야, 추운 겨울 견디며 그토록 기다려온 네 봄을 여기 내 곁에서 꽃피우렴. 네 가슴 속 아름다운 향기를 흩날려보렴.”
아이는 매일 아침 저녁 기도했습니다. 아이의 기도를 먹고 자란 초생달이 환한 보름달이 되었을 때 하얀 목련꽃나무는 가슴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보송보송한 솜털이 봄 햇살을 머금고 사알랑 살랑 춤추기 시작했습니다. 그 춤 물결을 타고 하얀 목련꽃봉오리가 수줍디 수줍은 새악시 미소를 띠며, 엄마 품에 안긴 햇병아리처럼 뾰족한 입술을 내밀기 시작했습니다. 이른 아침 하얀 목련꽃을 발견한 아이의 눈에는 아침 이슬이 영롱하게 대롱대롱 매달렸습니다.
“고마워, 작은 나무야~!”
아이는 하얀 목련꽃봉오리에 입맞춤을 했습니다. 눈물 흘리는 아이의 코끝에 하얀 목련꽃봉오리는 사알짝 입김을 불어넣었습니다. 비발디의 <봄> 노래가 아이의 온 몸을 짜릿하게 감싸 안아 올려 은하수 은은히 흐르는 밤 하늘가에 걸린 노란 달님의 품에 안겨주었습니다.
 노란 달님의 은빛마차가 그믐밤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자 하얀 목련꽃은 이별의 슬픔에 잠겨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슬픔을 이기지 못한 목련꽃은 물빛 블러쉬 향기만을 남긴 채 온몸을 노오랗게 불태웠습니다. 사랑의 슬픈 밤이 이지러지고 눈물 머금은 새벽별이 아침을 연 그 날 이후 오두막 작은 창호지에 노을이 깃들 때마다 하얀 목련꽃은 노란 요정이 되어 물빛 향기를 물레 잣듯 자아올려 오두막 한켠을 가득 채우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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