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우리는 아직 '미생'
그래, 우리는 아직 '미생'
  • 장예림 기자
  • 승인 2014.11.29
  • 호수 14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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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미생」의 인기비결


“길이란 걷는 것이 아니라 걸으면서 나아가기 위한 것이다. 나아가지 못하는 길은 길이 아니다. 길은 모두에게 열려있지만, 모두가 그 길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위 말은 사람마다 다른 시선으로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다. 고등학생에게는 대학을 떠올리게 하고, 대학생에게는 취직을 떠올리게 할 수 있다. 위 대사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tvN 금토 드라마 「미생」에 등장하는 대사다. 드라마 「미생」은 직장인의 팍팍한 현실을 무대로 해 직장인의 애환이라는 보편적인 정서를 담았다. 「미생」은 웹툰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드라마화되기 전 「미생 프리퀄」이라는 웹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다. 박기수<국문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미생」이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로 △많은 공감의 여지 △머천다이징의 훌륭함 △원작의 훌륭함 △통신환경의 발전 등을 지목했다.
먼저 「미생」이 인기를 얻고 있는 가장 큰 이유로 공감의 이유가 있다. 「미생」은 임원직이나 경영자들의 입장이 아닌 신입사원의 입장에서 내용이 전개된다. 즉 취업준비생, 인턴과 같은 ‘갑’이 아닌 ‘을’의 사람들의 이야기로 공감을 자아낸다. 또한 주인공 장그래는 검정고시 출신에 다른 일을 하다 좌절돼서 ‘낙하산’으로 회사에 들어가게 된 ‘비주류’ 캐릭터이다. 잘난 캐릭터가 아닌 못난 캐릭터라는 설정에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박 교수는 “존박이 슈퍼스타 k에서 우승하는 것보다 허각이 우승하는 것이 더 감정을 울리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또한 직장 내에서 발견할 수 있는 대표적인 캐릭터들을 설정함으로써 대중들이 몰입하고 공감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했다. 박 교수는 “비주류의 장그래?성차별을 받고 있는 안영이?선배와 부딪치는 장백기?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석율 등은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공통적으로 느끼는 아쉬움들이다”고 말했다. 덧붙여서 “이런 캐릭터 간의 관계를 통한 사건을 이야기로 구성하기 때문에 훨씬 공감력이 크다”고 설명했다. 또한 박 교수는 “원작인 웹툰은 사건의 흐름에 포인트를 맞춘 서사성이 강했다. 하지만 드라마화가 되면서 공감의 여지를 더 키운 캐릭터로 포인트를 바꿨다”며 “드라마라는 미디어 포지션에 따라 대중을 전제로 하는 대중의 입장에서 울림을 잘 전달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다음으로 머천다이징이 훌륭했다는 면이 「미생」의 인기에 한몫을 했다. 머천다이징은 상품화계획이라고도 하며, 마케팅 활동의 하나이다. 「미생」은 일주일에 2회씩 연재를 했던 웹툰이 원작이다. 웹툰의 연재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웹 드라마로 제작이 되었다. 박 교수는 “대다수의 콘텐츠들은 수명주기에서 벗어나면 다시 돌아오기 힘들다. 그러나 「미생」은 웹툰-웹 드라마-드라마까지 꾸준히 수명을 이어나갔다”며 “원작자가 배려를 많이 한 결과”라고 말했다.
또한 「미생」은 원작 자체가 훌륭했다. 원작자가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대우 종합 상사 직원들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오랜 기간 취재한 결과 탄생했다. 철저한 준비와 함께 생산된 콘텐츠였다. 또한 직장을 배경으로 하는 다른 작품들과 다르게 완전한 직장 생활 이야기를 다뤘다.
통신환경의 발전 또한 「미생」의 인기에 빼놓을 수 없다. 통신환경이 LTE로 바뀌면서 빠른 시간 안에 다운을 받아서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모바일을 통해 출퇴근 시간에 어디서나 「미생」을 볼 수 있게 됐다. 모바일을 통해 볼 수 있다는 것도 「미생」의 성공 가능성을 높였다.


현실 속 ‘미생’ vs 「미생」 속 현실
「미생」의 힘은 현실감 있는 캐릭터들을 통해 극대화된다. 평생을 바친 분야에서 실패했지만 ‘열심히 하지 않아서 세상에 나온 거다’라며 가혹한 현실을 견디는 장그래에게서, 무한 경쟁할 수밖 없는 수많은 인턴들에게서, 완벽한 스펙으로 입사했음에도 회사에 적응하지 못하는 장백기에게서, 여자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선차장과 안영이에게서, 우리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현실의 ‘미생’들은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우리학교 출신 취업준비생, 인턴, 직장인들에게 물었다. (인터뷰이의 신분 보호를 위해 모두 익명처리했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미생」의 힘은 현실감 있는 캐릭터들을 통해 극대화된다. 평생을 바친 분야에서 실패했지만 ‘열심히 하지 않아서 세상에 나온 거다’라며 가혹한 현실을 견디는 장그래에게서, 무한 경쟁할 수밖 없는 수많은 인턴들에게서, 완벽한 스펙으로 입사했음에도 회사에 적응하지 못하는 장백기에게서, 여자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선차장과 안영이에게서, 우리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현실의 ‘미생’들은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우리학교 출신 취업준비생, 인턴, 직장인들에게 물었다. (인터뷰이의 신분 보호를 위해 모두 익명처리했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① 취업준비생, 스펙
장그래의 ‘스펙’이라고는 알바 경력과 컴활 자격증이 전부다. 현실에서 장그래의 스펙으로 대기업 종합상사의 문을 두드린다면 ‘보기 드문 청년’이라는 말보다 심한 비아냥을 들을 수도 있다. 현실의 취업준비생들은 안영이와 장백기, 한석율처럼 각종 경력과 스펙을 쌓아야 한다. 대기업 근무 경력이 있는데다 각종 어학에 능통한 안영이, 완벽한 학벌에 PPT 마스터인 장백기, 각종 공모전 수상 경력과 현장 경험이 풍부한 한석율을 보면 이들의 취업 준비는 얼마나 치열했을지 그려진다.

사실 졸업을 목전에 둔 4, 5학년 대학생이나 취업을 준비하는 졸업생들은 꿈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잘 버는 곳을 가기 위해 돈을 벌어요. 그것이 바로 현시대의 ‘취준생’이죠. 적어도 그런 면에서는 장그래와 우리는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해요. 저 또한 대학에 입학하고 지금이 되기까지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을 해왔어요. 오토바이 배달?가게보기?서빙 등 단순한 일부터 국제학교 코디네이터?유학컨설턴트?스노우보드 강사까지 가릴 것 없이 현업으로 필드에서 뛰어 봤어요. 그래서 제대하고서 아무런 목표의식도 갖지 못한 채 시간 되는대로 아무 일이나 했던 장그래의 모습에 공감이 갔어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진짜 취준생의 모습은 안영이나 장백기처럼 스펙을 쌓아두고 엘리트 코스를 밟는 거죠

② 인턴
인턴 초기, 장그래는 팀으로 걸려오는 전화 한 통에도 안절부절못한다. 인턴에서 정사원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우수한 무리 중에서 두각을 나타내야 한다. 안영이처럼 유창한 외국어로 바이어를 설득하거나, 장백기처럼 ‘PT의 정석’을 보여주거나, 한석율처럼 “역시 현장이지 말입니다”를 외치며 본인의 경험을 어필하거나, 그래도 안 되면 상사의 실내화라도 훔쳐(?) 자신을 PR해야 한다. 물론, 술에 취해 자신을 ‘우리 애’라고 불러주는 상사가 있는 팀에 배정을 받는 ‘운빨’도 중요하다.
장그래가 처음 출근하던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저도 인턴을 하게 될 줄은 예상도 못 하고 있을 때 운 좋게 일을 시작하게 됐거든요. 첫 출근 하던 날 ‘가만히 앉아 있어도 되나… 뭐부터 해야 하나… 시킨 일은 이렇게 하면 되나…’ 이런 생각에 장그래 마냥 안절부절못했었던 것 같아요. 아직 한 달 밖에 안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중요하거나 큰일도 아니었는데 그 당시엔 상당한 의미부여를 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좋은 팀을 만나야 한다는 점에서 큰 공감을 했어요. 개인 능력이 뛰어나든 안 뛰어나든 맞지 않는 팀과 일을 하면 정말 괴롭거든요. 또 인턴 기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회사에 나의 가치를 증명해 보여야 한다는 사실도 공감했죠. 미생에서 나오는 조별 피티와 개별 피티 발표 준비하는 장면처럼요.

③ 낙하산 인사
바둑을 두던 시절 후원자를 통해 입사한 장그래는 ‘낙하산’이라는 낙인을 벗지 못한다. 그래서 드라마 초반, 장그래는 사원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견뎌내야 했다. 오 과장은 운이 좋았을 뿐이라며 장그래의 기를 죽인다. 기회라도 줄 수 있지 않냐는 장그래가 실수를 하자 “나가라”고 소리치며 “분명히 알겠지? 기회도 안주는 이유. 자격이 없는 이유”라고 소리친다. 장그래와 같은 ‘낙하산’ 인사들은 어떤 시선으로 비춰질까.

솔직히 말하자면 저도 나름대로 이쪽 업계에서 알아주는 중견기업에 팀장급 낙하산으로 떨어져서 일하게 되었지만 장그래처럼 사전기초지식도 아무것도 없이 무책임하게 오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혈연은 말할 것도 없고, 이런 학연 및 지연에 기반을 둔 채용문화는 아직도 우리 사회 깊숙이 남아있는 고질병입니다.  제가 겪어본 바로는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은 것 같아요. 특히 장그래가 다니는 무역상사나 제가 일하고 있는 대행사 같은 곳은 사무실 내의 문서 및 기획업무와 현장과의 조율 둘 다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한 일이에요. 임직원 개개인의 능력이 반드시 필요한 직종이기에 장그래가 실존인물이었다면 절대 회사에 오래 다닐 수 없다고 단언하겠습니다. 물론 회장님 아들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요.

일단 줄이 없는 평범한 지원자들이 기회도 얻지 못한다는 점에서 절대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직까지도 만연하고 있긴 하죠. 인턴이 끝나고 다른 회사에 취직할 때 저를 비롯한 저같이 평범한 취준생들이 피해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④ 여성차별
능력있는 여사원 안영이에게 자원팀 정 과장은 “이래서 내가 여자를 안 믿는다고 그런 거야. 너 회의 낄 필요도 없어. 자리로 돌아가”라고 소리친다. 영이의 사수 하 대리는 욕설을 퍼붓거나 “본처가 남의 집에 가서 첩질하고 오면 이런 기분일 거라셔”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능력 있는 워킹맘 선 차장의 애환을 다룬 5회에서는 마 부장이 여사원의 옷차림을 보고 “내 놓고 다녀도 볼만한 것도 없네”라며 성희롱을 해 징계를 받았던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래서 여자가 팀장인 팀은 안 돼”라던지 “내가 회의실에서도 분 냄새 맡아야겠니” 등의 발언을 하는 등 마 부장의 캐릭터는 극단적인 면이 있지만 직장 내 여사원의 고충은 존재한다.

딱히 차별하려고 한다기보다는 많은 경우 기본적으로 회사 문화가 남성적이고 남자들의 집단에 가까우니까 여자들이 맞추기 힘든 부분도 있고 기존 구성원이 여자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면도 있는 것 같아요. 정과장이나 하대리의 발언 정도면 징계감인데요. 문제는 피해자가 상사를 신고하는 게 심적 부담감이 커서 쉽지 않을 거란 거지만 어지간히 막무가내인 분 아니며 성희롱성 발언은 서로 피합니다. 오히려 대놓고 무시하기보단 피하고 뒤에서 ‘여자들이라 안 돼’ 이러기가 쉽죠. 또한 선차장과 같은 워킹맘처럼 바쁜 부서에서 임신 출산으로 자리 비우는 인원이 생기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 게 사실이죠. 비운 자리에 대체 인원이 들어오진 않으니까요.

제가 외국계에다가 광고회사다보니 오히려 역차별이 존재해요. 광고회사는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잖아요. 여자 직원을 선호하기도 하죠.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남자 상사들은 남자 직원을 더 선호하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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