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평가 거부 이후 한 달, 논의 어디까지 진행됐나
대학평가 거부 이후 한 달, 논의 어디까지 진행됐나
  • 심건후 기자
  • 승인 2014.10.26
  • 호수 1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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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관심 커졌지만 참여는 정체돼

서울 소재 대학가에서 일고 있던 ‘중앙일보 대학평가 거부’ 움직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달 25일, KBS1 「뉴스라인」에서 대학평가 거부 운동을 주도한 고려대 총학생회장과 인터뷰를 진행한 데 이어, 지난 23일 MBC에서는 대학평가의 실태와 대학평가 거부 운동에 대한 내용을 저녁 시간대 뉴스 프로그램에서 보도했다. 지상파 방송에서 대학평가의 문제점을 취재해 보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로써 중앙일보 대학평가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우리 학교와 중앙일보 대학평가
논란이 되고 있는 중앙일보는 지난 1994년에 국내 언론 중 처음으로 대학평가를 실시했다. 그 후 매년 중앙일보의 창간 기념일인 9월 22일을 전후해 대학종합 순위와 학교별 순위 등을 매겨왔다. 작년부터 캠퍼스별 분리 평가를 시행한 우리 학교는 올해 서울캠퍼스는 7위, ERICA캠퍼스는 17위를 차지했다. ERICA캠퍼스는 작년보다 다섯 계단 떨어진 순위다.

현재 양 캠퍼스 총학생회(이하 총학)는 중앙일보 대학평가에 대해 상반된 견해를 밝히고 있다. ERICA캠퍼스 총학 측은 중앙일보 대학평가가 ERICA캠퍼스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해 대학평가를 거부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ERICA캠퍼스 총학생회장 나현덕<경상대 경영학과 08> 군은 “중앙운영위원회 회의 결과 대학평가가 우리 캠퍼스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의견으로 합치됐다”며 “인지도 측면이 부족해 올해 순위가 떨어졌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고, 순위 변동은 내년까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서울캠퍼스 총학 측은 중앙일보 대학평가를 거부하는 운동에 직접 참여한 상태다. 서울캠퍼스 총학은 고려대 총학이 중앙일보 대학평가를 거부한 지 나흘 만에 이를 지지하는 성명을 공식 페이스 북 페이지에 게시했으며 학내에서는 ‘대학평가와 대학 서열화’를 주제로 교육 포럼을 개최하기도 했다. 오는 30일에는 중앙일보 관계자와 대학평가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를 가진다.


대학평가를 무시할 수 없는 현실
하지만 대학으로서는 이 같은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일간지 대학평가 순위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형국이라고 말한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소재 대학의 교직원 A는 “중앙일보 대학평가가 문제가 되고 있지만, 중앙일보 대학평가 이외에도 신경을 써야 할 대학평가가 한둘이 아니다”라며 “사실 대학교 입장에서도 대학평가는 달가운 존재가 아니다. 순위가 떨어지면 동문이나 학부모들의 항의가 끊이지 않아 대학평가에 신경 쓸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어 A는 “대학평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해당 대학의 재정상태가 좋아야 한다”며 “결국은 ‘쩐’의 전쟁”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삼성이 재단 운영에 참여하고 있는 성균관대의 경우 지난 2005년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 6위를 기록해 순위를 유지하다가 2011년에는 5위로, 2013년에는 3위를 차지했다. 또 2008년 이전,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 10위권 밖에 머물었던 중앙대의 경우 2008년 두산그룹의 인수 이후 3년 만에 10위권 안으로 진입한 데 이어 작년과 올해에는 8위를 차지했다. 20위권 안의 다른 대학의 경우, 비슷한 순위 내에서 매년 상승하기도, 하락하기도 하지만 이 두 대학의 경우에는 지속적인 상승세만을 보였다.


대학평가 거부 운동, 문제의 본질에 접근해야
대학평가 거부 운동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커지고 있음에도 이에 참여하는 대학의 수는 8개 대학에서 늘어나지 않고 있다. 대학가에서 일어나는 사회 운동이 큰 흐름으로 자리잡기 위해선 많은 학교가 참여해야 하는 것을 고려하면 대학평가 거부 운동이 실질적으로 변화를 일으킬 확률은 낮다.

실제로 대학평가 거부 선언에 참여하지 않는 일부 대학 총학에서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소재 사립대학 총학생회장 B는 “우리 학교는 고려대학교 정도의 상위권이 아니기 때문에 어차피 큰 호응을 불러일으키기 힘들다”며 “공식적으로 의견을 모아보진 않았지만 일반 학생들도 대체로 회의적인 반응이라 총학 차원에서는 나서기 힘든 측면이 있다”고 했다(10월 24일자 프레시안 「SKY 출신 아니면 학벌주의 비판도 못한다?」발췌).

중앙일보 대학평가 거부 운동이 대학의 서열화라는 고질적인 병폐를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언론사의 대학평가 시스템만을 문제점으로 지적할 뿐이라는 의견도 있다. 따라서 중앙일보 대학평가를 거부할 명분이 약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일부 학생들은 중앙일보 대학평가가 소위 ‘서연고 서성한’으로 시작하는 서열을 없애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C는 “대학 서열화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지 않고, 중앙일보 대학평가만을 문제 삼는다면 학생들의 호응을 얻을 수 없을 것”이라며 “오히려 일반적인 인식에서 벗어난 대학 평가 결과가 대학 서열화를 타파하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대학평가의 순기능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상위권 대학에서는 대학평가를 ‘계륵’ 정도로 치부하지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대학에서는 대학평가를 기회로 본다는 것이다. 김용근<김용근 입시전략연구소> 소장은 “중앙일보 대학평가 거부 선언에 참여한 학생들의 취지에는 동감한다”면서 “하지만 대학평가에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대학이 재조명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등 순기능도 작용하는데 몇 개의 역기능 때문에 대학평가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은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서울캠퍼스 총학 측은 이런 의견을 일부 수용하면서 대학평가 거부 운동이 많은 대학생들의 호응을 얻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캠퍼스 부총학생회장 신하섭<인문대 국어국문학과 10> 군은 “대학평가 거부 운동에 제기되는 문제의 내용에 공감한다”며 “하지만 중앙일보 대학평가가 시작된지 20년이 된 지금도 대학의 서열은 공고하며 대학평가가 학교의 교육철학을 흔드는 등의 부작용이 커 이를 간과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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