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디서나 당신을 옥죄는
언제 어디서나 당신을 옥죄는
  • 금혜지 기자
  • 승인 2014.10.04
  • 호수 14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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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사회가 만든 공포

당신을 공포에 떨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한대신문에서는 한 달 앞으로 다가온 할로윈을 맞아 공포특집 섹션을 기획했습니다. ‘공포’를 주제로 놓고 세 부서에서 다른 해석을 해봤는데요. 문화부에서는 지그문트 바우만의 「유동하는 공포」에 등장하는 사회적인 공포와, 여러 콘텐츠로 활용되는 ‘좀비’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사진·미디어부에서는 대학생이라면 간담이 서늘해 질만한 상황들을 소재로 사진 기획을 준비했고, 대학보도부에서는 ‘가위눌림’이라는 현상에 관한 학술적인 해석과 학우들의 사연을 모아봤습니다. 공포의 중간고사 기간, 공포 특집과 함께해요!

우리 주변에서 ‘공포’라는 단어가 쓰이는 맥락을 생각해보자. 공포영화에서 괴기스러운 인형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장면, 공포게임에서 들리는 꺼림칙한 소리, 피와 살점이 난무하는 슬래셔 무비…. 미디어를 통해 표현되는 공포는 우리를 긴장하게 하거나 놀라게 하고 비명 지르게 한다. 하지만 이런 1차원적인 감각을 넘어선 공포의 개념을 제시한 학자가 있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저서 「유동하는 공포」에서 우리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파생적 공포’, 즉 사회화된 불안과 염려를 이야기하고 있다.

바우만은 현대인의 삶을 ‘쓰레기가 되는 삶들’이라고 표현했다. 물건을 빨리 쓰고 버려야 새로운 것을 팔 수 있는 자본주의의 효율성이 사람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생산성을 잃은 사람을 가차 없이 구조조정하는 사회는 불안과 두려움을 낳는다. 바우만은 이런 파생적 공포, 즉 2차적인 공포를 설명하기 위해 공포를 네 가지로 유형화했다.

무엇이 우리를 두렵게 하는가
우리가 두려워하는 위협과 그것에서 파생되는 공포 중 첫 번째는 ‘우리의 신체와 재산을 위협하는 위험’이다. 지난 2013년 개봉한 영화 「숨바꼭질」에는 고급 아파트에서 완벽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성공한 사업가 ‘성수’(손현주)가 등장한다. 하지만 그는 지나친 결벽 증세를 보이며, 더러운 행색의 노숙인이 집에 침입하는 악몽에 시달린다. 내가 누리고 있는 생활의 반경에 누군가가 침범하는 두려움, 나의 경제적인 성취가 망가질지 모른다는 악몽이 계속해서 재현된다.

현실에서도 이러한 사례가 나타난다. 본인이 거주하는 아파트 주변에 혐오시설이 만들어져서 아파트값이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위하는 사람들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내 재산에 직접 가해지는 위협에 의한 공포이다.

두 번째로 우리가 기대어 살고 있는 사회질서의 지속가능과 안정성, 나아가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위험이 있다. 실직에 대한 공포나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사회의 질서 밖으로 팽개쳐질지도 모르는 두려움, 즉 생산성의 상실에 대한 공포다.

얼마 전 종영된 KBS 드라마 「직장의 신」에서 직원들이 느끼는 공포도 마찬가지다. 언제 비정규직으로 전환될지 모르는 두려움에 떨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공포는 최규석의 웹툰 「송곳」이나 곧 개봉할 영화 「카트」에 등장하는 마트 노동자들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무한상사」 특집에서 정 대리가 실직당하는 에피소드가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던 것처럼 실직의 공포는 현대인에게 일상적이다.

‘실직이 곧 죽음’이라는 비유처럼, 이와 같은 사회성 상실은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1차적 공포이다. 취업에 실패하는 것, 직장을 잃는 것, 대입에 실패하는 경험 자체는 피투성이의 이미지나 칼 든 범죄자만 없을 뿐, 현대 사회에서는 직접적인 공포다. 하지만 이런 것들 때문에 항상 불안과 염려 속에 살아가는 것, 혹시 그런 일이 벌어질까봐 전전긍긍하는 것이 2차적 공포에 해당한다.

세 번째로, 우리가 이 세상 속에서 갖는 위치를 위협하는 위험도 있다. 정체성이 의도치 않게 드러나 사회적으로 매도당하거나 부당하게 취급되는 사례를 생각해 보면 된다. 악의 없이 퍼진 누군가의 비밀이 그 사람에게 치명적인 위해를 끼치는 것이다. 나는 세계 앞에서 발가벗겨진 존재고 누구도 나를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상황 인식에 의해 느껴지는 공포다.

채동욱 전 검찰청장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 신문과 방송에서 대서특필 되었고 결국 사회적 지위까지 박탈당했다. 방송인 홍석천은 커밍아웃 이후 3년 동안 방송에 출연하지 못했고, 심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외에 알몸 사진이나 성 추문이 담긴 동영상이 유출되어 여성과 스타로서의 지위를 매장당한 사례도 있다. 우리는 이런 사례들을 보며 ‘언젠가 나에게도 있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두려움에 빠진다.

무한히 확장되는 공포, 해결책은 있을까
네 번째 공포의 영역은 앞서 언급된 세 가지 유형의 공포가 다른 차원으로 확대된 것이다. 바우만은 ‘대재앙과 파멸적인 묵시록의 공포’를 제시한다. 이는 범세계적인 집단이 절멸한다는 공포이다. 이런 공포는 디스토피아 장르에서 재현되는데, 현실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사건과 맞닿아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사스나 에볼라 같은 바이러스를 목격하면서 우리는 인류라는 문명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체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가 일거에 침몰할 수 있다는 이런 공포의 상상력들은 영화에 자주 나타난다. 영화 「투모로우」에 나타나는 파멸의 서사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것이다. 「월드워Z」에서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퍼지는 것은 현대문명의 운송이나 이동수단의 발전 때문이다.

자동차로 인해 교통이 편리해졌지만 교통사고의 위험을 부담해야 하듯, 문명을 통해 누리는 행복도 있지만 지불해야 할 대가도 있다. 문명 자체의 지향점이 공포와 맞닿아 있는 것이다.

바우만에 따르면 이렇게 현대사회에 만연한 공포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시스템 개선이다. 지난 3월 24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문제는 사회적으로 생산된 건데 책임은 개인에게 주어진다”라며 “하지만 개인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문제의 심각성을 조절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공포를 개인에게 떠맡기고 각개격파나 자력구제를 종용하는 사회가 아닌, 관심과 배려, 돌봄의 사회에서 공포는 줄어들 수 있다. 공적인 차원에서 상호 부조해 줄 수 있는 인프라와 문화가 조성된다면 일상을 잠식하고 있는 공포의 수준은 현저히 낮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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