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냉정함, 멋지지 않아요
당신의 냉정함, 멋지지 않아요
  • 금혜지 편집국장
  • 승인 2014.09.27
  • 호수 14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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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감정의 온도가 끓어올라야 할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사랑이건 분노건, 솔직해져도 좋을 상황에서 ‘쿨한 척’하는 사람에게는 왠지 다가가기 어렵다. 연애 상담이 주를 이루는 한 예능 프로그램에는 ‘쿨몽둥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적이 있다. 연인에게 집착해도 괜찮은 상황에서 ‘쿨한 척’ 하는 사람들이 이 몽둥이로 맞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최근 특정 사안을 둘러싼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이 이야기를 연애에 한정된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사회적인 맥락으로 확대해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의 감정에 동조하는 것을 미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타인의 고통에서 한 발 물러나 냉철한 비판을 하는 사람들에게 ‘쿨몽둥이’를 들고 싶다.

수잔 손탁이 저서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말했던 것처럼, 텍스트 혹은 타인의 고통을 보편적인 개념으로 규정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다. ‘해석은 지식인이 세계에 가하는 복수다’라는 말처럼, 제 아무리 지식인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에게도 ‘해석’은 때로 아주 위험하다. 자신의 이론이나 신념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특정한 이론 체계를 잣대로 텍스트를 난도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손탁이 가진 예술론의 핵심은 그녀의 다음 저서 <타인의 고통>에 잘 드러나듯, 텍스트 안에 담겨 있는 감성을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다. 우리는 거리를 두고 냉정하게 비평하거나 현상을 마음대로 해석하기 전에 적극적으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감각을 키워야 한다.

이 주장에서 텍스트를 예술이 아닌 현실 상황이라고 생각해 보자. 지난 몇 달간, 세월호 사건을 두고 너무나도 많은 해석이 쏟아져 나왔다. 각종 언론이나 권위자들의 발언에 의해 세월호라는 텍스트는 선장의 무책임이 되기도, 국가를 전복하려는 자들의 이용 수단이 되기도, 심지어는 교통사고나 모 그룹 총수의 잘못이 되기도 했다.

세월호 ‘사고’가 ‘사건’이 되어 정치적 논쟁거리로 전락한 이후로, 사람들은 ‘감정적 피로’라는 단어로 희생자들의 아픔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이를 내세워 유족들의 아픔을 정치 프레임으로 이용하거나 그들을 조롱하는 비인간적 행위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각자의 해석으로 인해 사건의 본질은 이미 여러 번 난도질을 당했다.

그리고 처음 사건이 발생했을 때 온 마음으로 애통해하던 사람들은 이제는 한 발짝 떨어져서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물론 가족들을 잃은 슬픔에 무조건 공감하고 매일 울음과 분노를 표출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감정에서 지나치게 멀어져 냉정함을 유지하는 태도는 쉽게 긍정하기 어렵다.

신형철<씨네21> 평론가는 “타인의 불행을 놓고 이론과 개념으로 왈가왈부 하는 일이 드물게 용서받을 수 있는 길 중 하나는 그 불행이 유일무이한 것으로 남을 수 있도록, 그래서 쉽게 분류되어 잊히지 않도록 지켜주는 일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말처럼 우리가 이 비극을 대하는 가장 ‘인간적인’ 자세는 유가족들의 아픔을 유일한 사건으로 가슴 깊이 인식하는 것일 거다.

물론 대부분의 가장 잔혹한 일들은 인간에 의해 행해지기 때문에 인간적인 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인간다움의 본질이 타인에게 공감하는 능력에 일부분 있다면 가족을 잃은 슬픔을 ‘정치’나 ‘벼슬’같은 단어로 쉽게 매도해선 안 되지 않을까.

어디까지나 ‘타인’의 고통이기 때문에 이 사건을 무미건조하고 손쉽게 규정짓거나, 혹은 피해자들의 아픔에서 먼 발치 떨어져 냉정한 태도만을 유지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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