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울 줄도 알고, 베풀 줄도 아는 RICH(비교역사문화연구소)
배울 줄도 알고, 베풀 줄도 아는 RICH(비교역사문화연구소)
  • 전예목 객원기자
  • 승인 2014.09.20
  • 호수 14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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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내셔널 인문학의 요람 역할을 담당해

비교역사문화연구소(이하 RICH, Research Institute of Comparative History and Culture)는 2004년에 개소했다. RICH의 탄생은 대중독재와 깊은 관련이 있다. 임지현 <인문대 사학과> 교수는 처음으로 ‘대중독재’ 프로젝트를 한국연구재단의 후원을 받고 진행했다. 이후 6년간 프로젝트를 진행한 뒤 임 교수가 연구소의 필요성을 느껴 창설했다고 한다. 임 교수는 “RICH는 학교의 지원을 일절 받지 않고 내가 스스로 얻어오는 연구비로 운영하는 연구소다”라고 설명했다.

RICH, ‘트랜스내셔널 인문학’하다
RICH에서 주로 다루는 내용 중 하나로 트랜스내셔널(transnational) 인문학이 있다. 보통 트랜스내셔널이라고 하면 민족주의를 넘어서 지구화를 지향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RICH에서 지향하는 트랜스내셔널 인문학은 조금 다르다. 이소영<비교역사문화연구소> 교수에 의하면 “RICH는 민족과 국가라는 분석 단위를 본질화하는 민족주의 담론을 비판하는 것뿐만 아니라 지구화의 현장을 선험적으로 전제하고 절대화하는 지구화 담론 역시 지양하고 있다”고 말해 트랜스내셔널이 곧 지구화를 뜻하지 않음을 밝혔다.


여기에 더하여 트랜스내셔널 인문학은 분과 학문을 넘어서는 것을 지향한다. 그 이유는 근대 학문 분과 체계가 특정 역사 맥락에서 정치적으로 구획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국사학·국문학·국학과 같이 민족국가 형성과 유지를 위해 공헌한 것도 있고 인류학·고고학·언어학 같은 경우는 제국주의와 연관하여 발달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트랜스내셔널 인문학은 근대 학문 분과의 역사성이나 위치성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에서 출발해 현재 학문 체계의 인식론적 한계성과 영역주의를 극복하는 탈학제적인 연구 방법론을 지향한다”라고 했다.

RICH가 일궈낸 트랜스내셔널 인문학의 구체적인 연구 내용으로는 ‘법을 통한 과거 청산과 트랜스내셔널한 기억’이 있다. 예를 들어 비록 직접 홀로코스트를 겪지는 않았지만 독일 공동체 안에 들어온 이민자들의 홀로코스트 기억에 대한 문제나 유럽에서의 홀로코스트 부정을 규제하는 법제가 동아시아 과거청산에서 이야기되는 것이 다.

RICH의 사회화 확산 사업
RICH는 연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한 내용과 사유를 사회에 확산시키는 작업에도 힘쓰고 있다. 대표적인 사업 두 개가 바로 ‘국경을 넘는 어린이·청소년 역사책’과 ‘여름 인문학교’다.
먼저 ‘국경을 넘는 어린이·청소년 역사책’이라는 사업은 아이들에게 국사의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나중에 나이를 먹게 되면 사고가 굳어지게 되니 어릴 때 인식의 프레임을 바꾸자는 것이다. 그런데 RICH에서 직접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책을 쓰는 것보다는 전문적인 어린이 작가나 편집자들이 쓴 책을 시상하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보아 이렇게 시상식을 제정한 것이다.

어린이 부문에서는 대상 『우리역사에 뿌리내린 외국인들』과 장려상 『제술관을 따라 하루하루 펼쳐보는 조선통신사 여행길』이 수상했고, 그 외에 3권은 권장도서로 선정됐다. 청소년 부문에서는 『십대를 위한 동아시아사 교과서』가 유일하게 장려상을 받았다. 임 교수는 심사 소감으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책이 별로 나오지 않는다”며 “우리나라 대입 위주의 교육이 청소년의 독서를 얼마나 망가뜨리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고 평했다.

다음으로 ‘여름 인문학교’는 트랜스내셔널 인문학이 자칫 가질 수 있는 학문적인 딱딱함을 풀어보자는 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사업은 학부생을 위한 사회화 확산 사업으로 작년을 시작으로 올해로 2회째를 맞았고 같이 숙박하고 강연을 듣고 답사를 가고 토론을 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올해 여름 인문학교의 주제는 “서울: 기억과 대항기억 사이에서”였다. 서울이 어떻게 국가적으로 기억되는 장소로 형성되는지 혹은 다른 기억 장소로 바뀌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에 기인한 주제였다. 이 교수는 “대도시 서울에 감춰진 작은 이야기를 찾아내서 트랜스내셔널한 도시 공간을 새롭게 읽어 낼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라고 부연했다.

도움: 이소영<비교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임지현<인문대 사학과> 교수
참고: 논문 「법이 부탁한 ‘부랑인’
기표와 그 효과」, 이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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