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말하고 그림으로 듣다
그림으로 말하고 그림으로 듣다
  • 한민선 기자
  • 승인 2014.09.20
  • 호수 14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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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현 미술치료교수에게 진심을 배우다

김선현<차의과학대학교 미술치료대학원>미술치료교수는 미술을 통해 아픔을 듣는다. 위안부 할머니들 곁에서 미술치료를 시작한 김선현 미술치료교수는 연평도 포격 사건, 구제역 살처분 그리고 최근에 일어난 세월호 사건까지 한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아픔을 겪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다.


재능 기부, 그 불편한 단어
김 교수는 여러 임상 경험을 하면서 미술 치료를 공부하는 중이었다. 그러던 2005년 말, 김  교수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미술 치료하면서 그들을 재조명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 아는 것은 일제 강점기에 끌려가 인권을 침해당하고 아무런 진심 어린 사과도 받지 못했다는 것뿐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관심이 너무 한정적이라고 생각했다. 평소 여성과 가족에 대한 관심이 많아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을 여성의 입장에서 들어주고 싶었다.”

위안부 할머니들에서부터 시작된 김 교수의 미술치료는 세월호 사건까지 이어졌다. 국가적 재난이 있을 때마다 미술치료를 해왔기 때문에 김 교수는 세월호 사건 이후에 미술치료 요청을 직감했다 곧 김 교수는 단원고 학생들을 위한 미술 치료를 부탁 받았고, 이들의 치유에도 앞장서게 되었다.


“세월호 사건은 많은 교훈을 주었다. 어떠한 사건이 생기고 치료를 하게 되면 그 사람은 성장을 하는데 이것을 외상 후 성장이라 한다. 한국 사회 또한 이번 세월호 사건을 통해서 슬픔과 애도의 단계에 머무르지 않고 치료의 단계를 넘어 ‘외상 후 성장’단계까지 간다면 굉장히 성숙하고 남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사회에서 큰 아픔을 겪은 사람들을 위한 김 교수의 활동은 뉴스에 알려져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언론에 노출될 때마다 ‘재능 기부’라는 단어가 김 교수 옆에 수식어처럼 붙었다. 이에 김 교수는 의외의 생각을 전했다. “재능기부라는 단어를 안 썼으면 좋겠다. 한 인터뷰 기사에서 정부 기관에서 받은 돈을 모두 기부했다고 쓰여 있는데, 처음부터 재능기부로 무료로 치료하는 것이 아니다. 정당한 보수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후에 만약 자신이 생각하기에 마음이 동하면 기부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김 교수는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서 위안부 할머니 미술치료를 할 때 봉사자들의 차비를 제외한 치료지원금을 모두 기부했다. 또한 구제역 살처분에 동원된 군인과 공무원, 세월호 사건의 단원고 학생들을 치료한 비용도 마찬가지였다.

“마음이 동했기 때문에 기부를 했다. ‘사비를 턴다.’라는 인터뷰 기사가 나간 뒤 곳곳에서 미술치료사에 ‘재능기부’를 요청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전문 과정을 마친 미술치료자들도 보수를 받아야 하고, 미술치료사를 직업으로 인정해 생계 보장을 해줘야 한다.”

말 하지 않아도 괜찮아
위안부 할머니부터 단원고 학생들까지. 미술치료는 그들에게 심리적인 안정을 주었다. 미술치료는 심리적인 안정은 물론 신체적인 호전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특히 미술치료는 사회에서 큰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효과적이다.

“기존의 치료가 신체적인 것에만 국한되었다면 미술치료는 정신적인 부분도 치료가 가능하다. 언어의 문제가 있으면 기존의 치료가 힘들지만 그림은 말을 하지 않아도 미술을 통해서 환자가 겪고 있는 스트레스와 문제를 알아낸다.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다양한 사회적 상황에서 많은 효과를 보고 있다.”

신체적인 치료를 넘어 정신적인 치료를 중요시하는 현대 사회에서 미술치료뿐만 아니라 음악 치료, 무용 치료, 연극 치료 등 많은 예술 치료들이 존재한다. 이에 김 교수는 “미술 치료는 언어가 필요 없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또한 그림 등 자료가 남기 때문에 사전 사후 평가가 가능하다는 점 또한 다른 예술치료와 차별된다.”라며 미술치료만의 장점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러한 미술치료는 반드시 전문가에게 받아야 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서 정확한 질환을 이해하고 의료 시스템 안에서 미술치료를 할 필요가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정서적이고 심리적인 질환들이 점점 많이 드러나고 있다. 이 때 미술치료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 치료를 위한 미술도구가 진열된 책상에서 김선현 교수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미술재료의 도구가 생각보다 우리 주위에서 보기 쉬운 것이었다.
아무도 가지 않던 길을 걷는다는 것
김 교수도 처음부터 미술치료를 전공한 것은 아니었다. 김 교수는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해 도예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처음 미술 치료를 공부하게 된 계기를 말했다.

“미술 전공을 하며 우연히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아이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았다. 예를 들어 정서가 불안했던 아이가 그림을 그리며 얌전해지거나 특수한 자폐 아동들이 미술을 통해서 증세가 호전되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을 보면서 미술을 통한 치료도 가능하다는 확신을가졌고 미술 치료를 공부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미술 치료를 전문으로 가르치는 대학도, 학과도 없었다고 한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갔던 김 교수를 말리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김 교수는 모두를 설득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김 교수는 “남들이 안한 것을 초기에 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스스로 판단을 잘해서 방향을 잘 잡으면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것도 해볼 만하다. 먼저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조언 했다. 또한 전공에 대해 고민하는 대학생들에게도 “고민을 할 시기에 고민도 필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미 정한 것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도예과를 다니다가 아이들을 가르칠 기회가 생겨 미술치료를 결심하게 된 것처럼 주어진 위치에서 열심히 하면 자연스럽게 방향이 틀어진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면 무한한 가능성의 길들이 열릴 것이다”라며 격려했다.

마지막으로 ‘당신이 20살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겠습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김 교수는 잠시 고민했다.

“내 시절에는 외국에 나갈 기회가 없었다. 다시 돌아간다면 조금 더 넓은 세계에서 풍부한 경험을 할 것 같다. 그리고 조금 더 경험하고 조금 더 도전할 것. 그것이 중요하다.”

인터뷰를 마칠 때 쯤 또 다른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미술치료를 위해 김 교수를 찾는 전화벨이 울렸다.

사진 이윤수 기자 dldbstn12000@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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