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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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정은 기자, 심건후 기자
  • 승인 2014.05.31
  • 호수 1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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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사건과 관련한 대국민 담화를 통해 해경을 해체하고 공직사회를 개혁하겠다고 밝혔다. 덧붙여 공직사회를 개혁하기 위해 민간 채용 인원을 늘리고, 그동안 우리나라 고위 공직사회의 ‘젖줄’이었던 5급 공개경쟁채용시험(구 행정고등고시)의 선발인원을 축소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5급 공개경쟁채용시험의 선발인원을 축소하고 궁극적으로 폐지하는 데 대한 찬반양론이 일고 있다.
5급 공채시험의 폐지를 찬성하는 측에서는 암기 위주의 시험인 현행 채용 방식이 공직수행능력을 제대로 판별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반대 측에서는 현행 방식을 폐지한다고 해도 ‘관피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5급 공채시험, 폐지해야 할까?

찬) 민간 채용의 확대로 공직 사회 다양성 확보해야
‘개천에서 용 난다’, 그간 우리나라의 고위 공무원을 선발하던 5급 공개경쟁채용시험(이하 행정고시)에 대한 인식이다. 이른바 ‘3대 고시’ 중 하나였던 이 시험을 통해 학력과 경력에 구애받지 않고 많은 인재가 우리나라 핵심 고위 공직자로 성장해왔다. 이것이 고위 공무원을 행정고시로 선발하는 방식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하지만 행정고시 합격자가 대부분 특목고·자사고 및 강남 고교 출신이라는 점이 말해주듯 ‘개천에서 용 난다’는 행정고시의 의의는 이미 퇴색된 지 오래다.

행정고시의 폐해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고시제도의 정착으로 공직 내 고시, 비(非) 고시 출신의 이분법적 분류는 물론, 주류인 고시 출신들이 지적 받아온 폐쇄성의 한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여기에 고시제도의 특성인 엄격한 선·후배 문화가 더해져 실력과 능력 위주로 승진하기보다는 승진할 차례가 되면 승진하는 문화가 만연하게 됐다. 공직을 선후배끼리 ‘나눠 먹는’ 것이다. 나눠 가진 공직에서 은퇴하는 고위 공무원이 관련 부처 공기업의 임원으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일 또한 항상 지적받는 문제 중 하나다.

이러한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민간 채용을 확대해 고위 공직자의 유입 경로를 늘릴 필요가 있다. 또한, 전문지식을 가진 공직자를 확충하기 위해서라도 민간 채용을 확대해야 한다.
사회의 변화 속도가 빠른 현 상황에서, 몇 년간 부서업무와 상관없는 고시공부에 매달린 행정고시 출신 공직자의 전문성은 민간 전문가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반)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고시’라는 개념이 곧 사라질 듯하다. 그동안 우리나라 3대 고시로 불려왔던 사법·외무·행정고시 중 사법과 외무고시는 이미 로스쿨과 국립외교원 과정으로 변경됐다. 그리고 그 마지막 수순으로 행정고시가 폐지될 예정이다.

정부는 이번 결정에서 ‘관피아’ 척결을 위해 고시를 폐지한다고 밝혔다. 행정 관료 사회에서 관피아로 인한 부정부패가 만연하는 이유 중 하나로 고시를 든 것이다. 관피아는 관료와 마피아의 합성어로, 관련 업계와 매우 밀착돼 있는 관료들을 말한다. 그러나 관피아가 5급공무원을 선발하기 위한 과정에 온전히 기인하는 것이라는 말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관피아는 관료가 되고 난 후, 즉 선발 후에 생겨나는 문제이지 고시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민간 경력자 채용의 기준 또한 우려되는 부분 중 하나다. 이미 로스쿨과 국립외교원은 선발 과정에서의 공정성에 대해 공격받아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행정고시를 폐지하고 서류와 면접이 주를 이루는 민간 경력자 채용 기준을 늘린다는 것은 결국 불필요한 제도 개혁을 실시한다는 것 외에 어떤 의미도 지닐 수 없다.

고시는 그동안 개인이 처한 환경과 무관하게 성공의 발판을 제공하는 기회로 여겨졌다. 한국사회에서 유일하게 학벌이 필요하지 않았으며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던 고시가 폐지되는 상황에서 우리 사회가 ‘공정한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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