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다른 이름, 감정
행복의 다른 이름, 감정
  • 김상환 <경영대 행정팀>
  • 승인 2014.05.26
  • 호수 1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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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다는 것은 그저 숨만 쉬는 것이 아니라 활동하는 것이다. 가장 잘 산 사람은 가장 오래 산 사람이 아니라 가장 잘 느낀 사람이다.’ 장 자크 루소의 <에밀>에 나오는 말이다. 기억을 더듬어보자. 한 달 전에 학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해보자. 보통 기억이 잘 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1년 전에 애인과 보냈던 벚꽃구경의 기억과 비교해보면 어떨까?

시간으로 따지면 1년 전 기억이 훨씬 오래된 기억임에도 우리는 또렷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1년 전, 그날 일을 기억한다. 이 사실을 곱씹어보면 루소가 말한 ‘가장 잘 느낀 사람’은 감정이 살아 있는 상태를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감정의 생동은 행복, 설렘, 떨림과 같은 감정이며, 불안, 초조, 두려움과 같은 감정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행복과 설렘은 1년 전 애인과의 벚꽃구경과 같은 추억의 모태가 될 것이다.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감정이 이성에 비해 평가 절하되는 사회이다. 인간이라면 동물과는 다르게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해야 된다고 배운다. 그리고 실제 생활에서 감정에 휘둘리지 않도록 노력한다. ‘좀 더 이성적으로 생각해봐. 이성적인 사람이 되어야지. 감정적으로 행동해서 되겠어?’라는 말들이 난무한다. 여기서 우리는 생각해보아야한다. 감정은 정말 이성보다 가치가 떨어질까? 오히려 인생에서 감정이 이성보다 훨씬 중요하지 않을까?

사랑이라는 감정을 생각해보자. 사랑을 할 때 혹시 상대방이 ‘나는 사랑을 이성적으로 하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한다면 그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인간의 감정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랑에는 이성의 자리가 없다. 상대방의 사랑이 이성적이라고 느끼는 순간부터 우리는 그것이 이미 사랑이 아님을 알고 있다. 이렇듯 삶에서 우리의 기억을 가득 채운 순간, 순간에는 이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만이 존재한다. 그러나 언제나 사랑타령, 감정타령은 홀대받는다.

과거의 편린에서 이성적으로 행동했을 때, 혹은 생각했을 때, 그 시절 그때를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경우가 있는지 고민해보자. 반대로 이성적인 선택 때문에 인생의 다시없을 추억을 날려버린 경우가 있는지 고민해보자. 답은 분명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세상은 원래 내 감정대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세상을 마음대로 하라는 것이 아니라, 나의 소중한 삶을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감정이 주는 행복에 대해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사랑이 주는 행복, 여행이 주는 설렘, 새로운 일에 대한 떨림은 내가 살아있다는,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가장 행복한 순간은 일년 후, 십년 후에 오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지 않다면, 미래는 인생의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을 것이다. 삶은 다시 없을 단 한 번뿐인 여행이다. 삶이라는 즐거운 여행, 감정이 이끄는 대로 젊음의 파도를 타고 넘실거린다면 행복이 바로 나의 곁에 있다고 느껴질 것이다. 루소가 말한 삶을 잘 산 사람인 ‘인생을 가장 잘 느낀 사람’이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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