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에 가려진 대학원생의 삶
그늘에 가려진 대학원생의 삶
  • 배정은 기자
  • 승인 2014.05.24
  • 호수 1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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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흡한 장학제도와 연구 환경…사회적 담론 필요해

열 달쯤 전, 서울대 박사과정생 한 명이 갑자기 죽었다. 오랜 기간 공들여 쓴 석사논문이 통과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았다. (중략) 부유하지 않았기에 돈이 필요했고 수많은 프로젝트를 맡았다. 건강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신호는 있었지만 병원비가 부담스러웠고 일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랐다. 생전에 술조차 별로 마시지 않았던 그는 갑자기 쓰러졌고 치료받기도 전에 숨졌다. (중략) 서른을 살짝 넘긴 나이였다.

지난 18일 서울대 학보사 「대학신문」에 실린 「한 대학원생의 죽음」이라는 칼럼의 일부다. 필자는 우리나라 대학원생의 생활과 교육 환경이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장학제도나 연구 환경 등의 분야에서 소외돼 왔다고 주장한다. 

2014학년도 기준 우리나라 사립대학 일반대학원의 평균 등록금은 5백 20만원에 달한다. 우리 학교의 경우 5백 60만원을 웃돌고 있는데, 특히 올해 초에 열렸던 등록금심의위원회(이하 등심위)에서 학교와 학생 측은 대학원 수업료의 2.5%를 인상할 것에 합의했다. 대학원 진학률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는 동시에 학비 또한 높아져 가는 지금, 대학원생들이 당면한 환경은 어떠할까.

음지에 놓인 대학원생의 경제
지난달 15일 전국대학원총학생회협의회(이하 전원협)는 국가인권위원회를 대상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성명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대학원생이 학부생들보다 더 비싼 입학금을 내면서도 국가장학금(한국장학재단)이 지원되지 않는 점 등을 문제로 들었다.

현재 대학원생들은 학부생들과 달리 장학금 분야에서 충분한 지원을 받고 있지 못하다. 학부생의 경우 △국가장학금 △외부 장학금 △교내 장학금 등을 지원받지만, 대학원생을 위한 한국장학재단 차원의 장학금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10년, 한국장학재단에서 이공계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가장학금은 제도 개편 등의 이유로 폐지되기도 했다.

이에 대부분의 대학원생은 부모님의 지원이나 아르바이트 등을 통해 학비를 충당하고 있다. 2012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일반대학원을 졸업한 박사 졸업생 6천6백80명을 대상으로 학비 조달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교내 장학금으로 등록금을 마련하는 경우는 27.8%에 그쳤다. 이와 반대로 67.3%가 가족의 지원을 받거나 대출 등을 통해 학비를 부담한다고 밝혔다. 우리 학교 대학원 공학계에 재학 중인 한 대학원생은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다”며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하는 것이 벅찰 때도 있지만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는 없다”고 전했다.

그러나 교내 장학 또한 충분한 대안이 되고 있지 않다. 교내 장학의 대부분이 근로 장학금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대학원 총학생회장 이진영<학과간협동과정 아동심리치료학과 13> 양은 “조교 장학금은 받았던 사람이 계속 받는 형식”이라며 “대학원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장학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학생 측은 논문 우수 장학금이나 성적 우수 장학금 제도를 확보할 것을 요구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히고 있다. 논문 우수 장학금의 경우 학술지나 학회지의 등급이 나뉘어 뚜렷한 기준을 제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적 우수 장학금 제도 또한 변별력의 문제가 발생했다. 장학복지팀 관계자는 “대학원 성적은 충분한 변별력을 지닌다고 보기 어려워 성적 우수 학생을 선발하는 데 현실적인 제약이 있다”고 말했다. 

근로 장학금의 경우에도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하기는 마찬가지다. 개인에게 지급된 장학금을 다시 반납하는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작년 9월 사이언스온에서 보도된 「실험실 대학원생 “우리는 반학생-반직장인, 합당한 처우를”」의 기사에 따르면 실험실을 꾸려나가는 살림살이의 방편인 ‘실험실 통장의 일괄 관리 관행’이 행해지기도 했다.

실험실 통장이란 대학원생들이 연구와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개별 통장에 입금되는 ‘연구원 인건비’를 말한다. 이를 실험실 전체 차원에서 모아 다시 각 대학원생에게 배분하는데, 이때 통장은 지도 교수가 직접 관리하거나 특정 대학원생에게 맡겨진다. 문제는 대학원생 개개인이 자신의 인건비에 대한 기본적 정보조차도 알지 못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개인이 받는 돈이 정당한 것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외에 개인이 받은 장학금을 다시 교수에게 반납해 조교들에게 나눠주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개선되고 있는 교육환경,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대학원 문제 개선에 전혀 진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 학교는 올해 등심위에서 대학원의 △석·박사 통합과정으로 인한 혼란 △시간강사비율 등에 대한 문제를 다룬 바 있다. 학교와 대학원 총학은 지난 4월부터 간담회를 열어 논의를 진행했고 이는 점차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석·박사 통합과정의 경우 학교와 학생 측의 논의 끝에 각 학과에 권고 조치를 취했다. 우리 학교 대학원의 모집과정은 △석사학위과정 △박사학위과정 △석·박사학위 통합과정으로 나뉜다. 그러나 석사 혹은 박사 전용의 수업이 따로 개설돼있지 않은 강의들도 있어 석사와 박사 과정생이 함께 듣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통합 수업으로 인해 석사와 박사 과정생 간의 수업에 대한 이해도의 차이가 발생해 문제가 됐다.

이 양은 “석사보다 박사 과정생들에게 대부분 높은 학점이 부여돼 석사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것”이라며 “박사 과정생 입장에서 또한 심화된 내용을 들을 수 없는 경우도 발생해 만족스럽지 못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에 대학원 총학 측은 석사 혹은 박사 전용 강좌를 따로 개설해 줄 것을 요구했다. 논의 끝에 학교와 대학원 총학은 각 학과에 분리가 필요한 수업일 경우 따로 개설해 주는 것을 권고하는 것에 합의했다. 이 양은 “석·박사 통합 과정이 오히려 도움되는 과목이나 학과도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무조건 폐지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결국 각 학과에 가능한 석·박사 전용 수업을 개설하거나, 석·박사 통합으로 진행되더라도 성적 처리 시 석·박사를 구분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반면 시간강사 비율의 경우에 대해서는 학생들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리기도 했다. 우리 학교의 비전임교원비율은 △시간강사 13.6% △겸임교원 7.9% △기타 비전임교원 4.8% △초빙교원 3.2% 순으로 구성된다. 이 때문에 총학은 비전임교원의 비율을 줄이고 전임교원을 늘릴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몇몇 학생들은 이 때문에 오히려 수업의 다양성이 상실됐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 양은 “전임교원의 수업으로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아질 것으로 생각했다”라며 “하지만 학생들의 예상치 못한 의견에 안타까웠던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덧붙여 이 양은 “시간강사 비율의 경우 학교 측과의 조율이 이뤄지고 있어 최종 결과는 추후 공개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몇몇 분야들이 개선돼가는 시점에도 대학원생들은 그들의 문제가 사회적 담론으로 형성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전원협은 기자회견 당시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대학원생의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높은 등록금으로 대학원생이 짊어지는 부담에 대한 사회적 담론은 형성되지 않고 있다”며 “대학원생들의 문제를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교육 공공성 담론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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