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 받고 싶습니다, 부끄럽지 않게.
축하 받고 싶습니다, 부끄럽지 않게.
  • 금혜지 편집국장
  • 승인 2014.05.12
  • 호수 1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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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년 전통의 학내언론, 이 호칭 앞에 2014년의 한대신문은 당당할 수 있을까요.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2014년의 한대신문 편집국장은 시선을 회피하며 말끝을 흐릴 것 같습니다.

창간특집호를 기획하며 이번에도 어김없이 학내 구성원 분들과 타 학보사 편집장들에게 축사를 요청했습니다. 어쩌면 기념호마다 관성처럼 증면하는 축사 면은 독자의 입장보다는 신문사 구성원들의 편의와 자축을 위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쓴 소리 없는 멋진 글들을 지면에 싣는 것은 기자들의 고통스런 취재 과정 없이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 한대신문 창간 55년 축사를 요청하면서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사실 흔쾌히 축사를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기에 앞서 미안한 마음이 앞섭니다. 축하를 부탁하면서도 무엇을 축하받아야 할지 저조차 답을 내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없어지진 않았으니까? 어쨌든 신문은 만들어 내고 있으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축하 받을만한 명목을 쉽사리 찾지 못하겠습니다.

지지부진한 포부를 밝히기 전에 몇 가지 어려운 점을 토로하고자 합니다. 우선 ‘학생기자’라는 직책의 특수성입니다. 학생기자들은 신문을 만드는 전문적인 일을 하지만 결국에는 학생이자 아마추어입니다. 우리의 본래 신분은 학생이지만, 이 본분에 아주 충실하기 어렵습니다. 기자의 책임은 무겁고,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아낌없이 시간을 할애해야 합니다.

현재 한양대학교 학생으로서 기자라는 호칭을 얻을 수 있는 길은 다음의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채널H, 뉴스포털H, 인터넷한양 등 홍보팀 산하의 언론기구 △경금신문, 경영신문 등 단과대 신문사 △사자후, 하이제닉 등 특성화된 잡지 △한대방송국, 한양저널, 교지 등 학생 자치 언론기구 △그 외 대외활동의 기자단 등입니다.

이렇게 많은 선택지 중에서도 한대신문 기자를 택했다면 그야말로 ‘극한 직업’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아이템 선정부터 기획, 취재, 기사작성, 데스킹, 편집, 디자인, 사진촬영, 평가, 운영, 홍보까지 모든 과정을 학생들 스스로 진행해야 합니다. 신문사라는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일입니다.

신문사 외부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이런 생활은 대단히 ‘비합리적인’ 일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투자한 시간만큼 가시적인 성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대학생 공통의 아젠다가 희미해진 지금 학보사에서 공론화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입니다. 대학생들이 민주화 운동의 중심이었던 과거만큼 기자로서 사명감을 느낄만한 일 또한 한정적입니다. 자연스레 독자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일도 거의 없습니다.

빠른 속도와 높은 능력치를 요구하는 사회에서 학보사가 학생들을 끌어들일만한 매력적인 요소는 적습니다. 인력이 부족해지고 신문의 질이 떨어지는 악순환은 반복됩니다.

핑계입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독자들이 받아보는 건 우리가 만든 신문이지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정리해 놓은 표가 아닙니다. 한대신문의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결과물을 만들자는 바람은 힘들어하는 기자들에게 너무 잔인한 요구일까요.

기자들이 기사 하나에 들이는 노력과 시간에 비하면 매번 줄어드는 원고료와 장학금은 ‘합리적인’ 보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배 기자님들과 우리가 만든 55년의 연속성을 잊지 않겠습니다. 금전적인, 단기적인 보상만이 기자 생활의 대가가 아님을 기억하겠습니다.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부끄러울지언정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앞으로의 한대신문은 그저 발행에만 의의를 두는 신문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창간 56년 축사를 받을 즈음의 편집국장은 제가 느꼈던 자괴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합니다. 더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 더 의미 있는 축하를 받는 한대신문을 만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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