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 비엔나 속으로의 여행
세기말 비엔나 속으로의 여행
  • 오재원 <의과대학 소아청소년과> 교수
  • 승인 2014.04.28
  • 호수 14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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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만 만났던 사람들을 만난다는 설렘 때문에 며칠 전부터 일이 제대로 손에 잡히질 않았다. 구스타프 말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가 살았던 곳, 비엔나. ‘세기말’은 굳이 비엔나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도 19세기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비엔나의 ‘19세기말’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19세기말 비엔나에서는 600여 년 이상의 구체제가 무너지고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분리주의’가 등장하면서 비엔나에서는 음악, 미술, 건축, 문학 등 많은 부분에서 최고의 문화유산을 남기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분야들이 매우 긴밀하게 교류하면서 상호 시너지효과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첫날 가장 먼저 벨베데레 궁전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클림트의 <키스>를 비롯한 코코슈카, 실레의 작품들이 많이 있는 곳이다. 이 궁전은 원래 오스트리아 영웅 ‘오이겐 공’의 여름 별장이었지만 지금은 국립미술관이 되었다. 오후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슈타트파르크 공원을 찾았다. 먼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황금상을 찾았다. 천사들이 조각된 하얀 대리석 아치 중앙에 바이올린 연주를 하는 모습을 보고, 모퉁이를 돌면 수줍은 듯 슈베르트가 앉아 있다. 그 옆 작곡가 브루크너의 동상이 있고 공원 밖을 걷다보면 베토벤이 근엄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 지하도를 건너면 깊은 생각에 잠긴 브람스도 만나게 된다. 그 옆 부르크 공원에 있는 모차르트 석상을 찾았다. 아기천사로 둘러싸여 붉은 꽃으로 높은음자리가 수놓아져 다시금 빈에 온 걸 실감했다. 어느새 저녁이 되어 ‘뮤지크페라인’으로 갔다. 이곳에는 콘서트를 연주하는 황금홀이라 불리는 ‘그로스잘’과 실내악을 주로 연주하는 ‘브람스잘’, 두 연주회장이 있다. 홀에 들어가는 순간 그 고색창연한 분위기에 압도되었고 연주가 시작되는 순간 그 우아한 음향에 다시 한 번 놀랐다. 근처에서 간단히 저녁식사를 하고 콘세르트헤보우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말러 교향곡 1번을 감상하였다. 말러는 이 교향곡을 27세에 작곡했다. 생명력과 꿈, 좌절과 고뇌, 사랑의 환희와 실연의 아픔 등이 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을 만큼 역동적으로 혼재되었던 매혹적이고도 도발적인 20대의 젊은 날에 이 작품으로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생애의 지표를 제시했던 것이다. 

다음날 아침, 에곤 쉴레의 작품이 가장 많은 레오폴트박물관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그의 작품은 영혼과 죽음을 주제로 한 인간 원형에 접근하고 있다. 오후 빈 분리파의 본거지인 ‘제체시온’으로 향했다. 아버지를 죽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어머니를 죽인 ‘엘렉트라의 번민’, 즉 부모시대를 쳐냈던 시기가 바로 세기말 비엔나의 분리파였다. 새것을 이루기 위해 과거의 것을 과감히 부수어야 했다. 빈 분리파는 클림트를 회장으로 쉴레, 코코슈카, 오토 바그너 등이 모여들었고 올브리히에 의해 ‘제체시온’이 완성되고 전시회가 열렸다. 건물 입구에는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그 예술의 자유를’이라는 글이 적혀있다. 이는 분리파의 모토이자 상징이다. 세기말의 비엔나에서 그 많은 예술가들과의 짧고도 짜릿한 만남의 감동은 귀국한 후 한동안 나의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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