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어날 수 없더라도
벗어날 수 없더라도
  • 금혜지 편집국장
  • 승인 2014.04.07
  • 호수 14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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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학교 커리어개발센터에서 모집한 단기 아르바이트에 참여했다. 그 곳에서 나의 업무는 졸업생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돌려 취업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먼저 전화를 걸어서 최대한 공손한 목소리로 “000선배님 맞으시죠? 한양대학교 커리어개발센터입니다. 졸업생 취업 통계조사 때문에 연락드렸는데요, 혹시 지금 취업이나 진학을 하신 상태인가요?”라고 묻는다.

이 때 네 취업(혹은 진학) 했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오면 그 후로는 조금 수월하다. 어느 곳에서 재직 중인지, 어느 대학원에 다니는지에 대한 정보만 더 물어보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니요라는 대답이 돌아오면 조금 난처하다.

가끔 다소 공격적인 말투로 저 백수인데요, 취업 생각 없는데요라고 하거나 이런거 왜 물어보는 거에요?’라고 되묻는 사람도 있었다. 나도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중언부언 설명한 후 애써 밝은 목소리로 답변 감사드립니다라고 외친다. 괜히 더 나가서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는 쓸데없는 말도 한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는 것은 나 스스로도 이미 취업 여부라는 정보로 사람을 판단하고 있었음을 의미했다. 취업을 기준으로 대학 생활의 성패가 나눠지는 것은 아닐텐데, 그 곳에서 기계적으로 전화를 돌릴 때는 정말로 취업이 대학의 최종적인 가치인 것처럼 느껴졌다.

전화를 받는 상대방에 대한 정보는 이름과 학과, 그리고 취업 상태가 정리된 엑셀 표가 전부였다. 아직 졸업 후의 아무런 계획도 없는 내 이름도 저 목록에 들어갈 생각을 하니 착잡했다. 지금이야 나중에 생각하겠다며 여유를 부리고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선택할 수 있는 미래는 취업으로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이런 고민을 바탕으로 기획한 이번 섹션면의 주제는 <우리는 왜 대학에 가는가>이다. 동명의 EBS 다큐멘터리에서 영감을 얻어 대학의 본래 생성 목적과 현재 대학생의 삶을 조명해보고자 했다. 처음 문화부에서 가져왔던 주제는 인문학의 위기에 관한 것이었다. 다른 실용학문과 달리 인간의 근본을 탐구하는 인문학이 대학에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알아보려는 의도였다.

다소 방향성이 확실치 않은 기획안을 놓고 기획 회의에서는 인문학의 위기라는 용어 자체에 관한 논쟁이 펼쳐졌다. 한 기자는 애초에 인문대에 입학할 때 학문적 진리를 탐구하려는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인문학에 대한 열정 없이 인문대에 입학해 취업이 잘 안 된다’, ‘인문학의 위기다라는 불평을 하는 것은 개인의 잘못이다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에 다른 기자는 현재 진정한 학문을 위해서 입학하는 사람은 오히려 소수다, 학과 정체성보다는 대학 브랜드에 초점을 맞추게 된 것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맞는가라며 대응했다. 인문학만 공부하더라도 취업이 보장되는 사회적 환경 조성이 이상적인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었다.

누구도 틀렸다고 할 수 없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대학생이 순수하게 학문의 본질을 추구해야 한다는 말도 맞다. 그러나 취업이라는 현실을 고려해야 하는 학생들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학문에 대한 열정이나 엄청난 재력, 타고나 재능도 없는 대학생에게는 취업이 그나마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대학이 취업 양성소가 되고 있다라는 주장에 공감은 하지만 여기에 분노하기에는 다른 대안이 탐탁치 않다. 현실에 문제의식을 느낀다고 해도 행동을 취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계해야 할 일은 이러한 사회적 흐름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다. 어렵게 들어오게 된 대학에서도 결국 다다를 도착점이 한정돼 있다고 해서 아무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것은 대학생의 특권을 포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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