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라기에는 좀 애매한
왕따라기에는 좀 애매한
  • 김은영 기자
  • 승인 2014.04.06
  • 호수 14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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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아웃사이더 김양의 하루

현재 사회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김소희 양(가명, 이하 김양)은 대학교에서 어떤 친분도 맺지 않는 이른바 ‘자발적 아웃사이더’다. 그에게 대학이란 그저 수업을 들으러 오는 곳일 뿐, 그 이상의 의미를 주진 못했다. 과 생활을 하거나 동아리에 가입해 다른 학생들과 교류하는 일도 없다.

이 사실을 입증해 주는 듯 김양이 강의실에 들어가 자리에 앉을 때까지 그에게 인사를 건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다른 학생들은 스마트 폰을 보고 있었고, 수업 시간이 다가올 수록 강의실에는 학생들로 꽉 찼지만 김양은 언제까지나 혼자였다. 다소 삭막하지만, 김양에게는 익숙한 아침이다.

아침에 있는 수업은 다행히 이론식 수업이었다. 김양은 이 같은 수업 방식을 선호했다. 일부러 시간표를 짤 때 ‘팀프로젝트’나 ‘실습’이 들어간 것은 피했다. 팀원과 의견을 조율해야 하는 복잡한 과정보다 홀로 공부해서 성적을 얻는 방식이 더 편했기 때문이다. 이미 저번 학기 팀프로젝트 수업에서 B+를 받았던 김양은 학점을 잘 받기 위해서라도 이론식 수업을 택했다.

“… 이런 면에서 막스베버는 현대 사회학의 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수님이 막스베버에 대해 온갖 미사여구를 넣어 설명했다. 그러나 김양은 프레젠테이션 화면에 있는 글자를 노트에 적는 데 집중할 뿐, 사회학자의 지혜를 깨우치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교수님의 열정적인 강의가 김양의 필사 소리에 잘게 흩어졌다. 그의 노트에 옮겨진 막스베버는 공부해야 할 시험 범위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고 찾아온 점심시간,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학생식당에 갔지만 김양은 카페로 향했다. 이 시간 식당에는 이미 학생들이 많아 혼자 밥 먹기엔 시선이 불편했고, 학교 근처에는 혼자 앉을 식탁이 따로 마련된 장소도 없었다. 차라리 혼자 자리에 앉아 먹어도 눈치가 보이지 않는 카페가 편했다. 다만 카페에서 파는 음식들이 밥만큼 허기를 채울 수 있는 게 아닌데다 비싸기만 하다는 점이 아쉬웠다.

“어? 소희야 여기서 뭐해?”

오늘 처음으로 듣는 타인의 목소리였다. 고개를 올려 본 곳엔 같은 과 동기인 유진이 서 있었다.  유진과 그렇게 친한 건 아닌 터라 김양은 이런 갑작스런 만남이 그리 유쾌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미 유진은 살갑게 인사하며 김양의 앞자리에 앉은 후였다.

“얼굴 안 본지 한참 됐다. 왜 이렇게 얼굴이 안보여? 전과라도 한 거야??”

유진의 물음에 김양은 팀프로젝트가 많아 전공 수업을 잘 듣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말하진 못했다. 이어서 유진은 오늘 개강총회가 있다며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김양은 한치의 고민도 없이 이미 생각해놨다는 듯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3학년이 무슨… 그리고 나 고시반에서 공부 중이야. 매일 출석체크해서 저녁에는 딴 데 못 가….”

고시공부를 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유진은 도리어 미안해했다. 그리고 공부하느라 바쁘겠다며 김양을 위로했다. 걱정할 정도로 힘든 생활은 아니었지만, 차라리 그런 반응이 나았다. 아무것도 안하는 잉여로 보이진 않으니까. 혼자 다니는 애라는 시선은 상관없지만 잉여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적당한 대화가 끝나고 유진이 먼저 나중에 연락하라며 자리를 떴다.

방과 후에도 김양은 홀로 시간을 보냈다. 동기들과 후배들이 한창 술을 마시며 밤을 불태울 시간, 김양은 조용한 독서실에서 토익 문제를 풀었다. 고등학교 시절과 다름없는 생활이지만 오히려 그는 이게 편했다. 고시 반 독서실, 이곳이 나름대로 김양의 소속이었다. 깜깜한 독서실에서 자신의 책상 앞에 앉았을 때가 가장 안락했고 평온했다.

불현듯 좀전의 유진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취직을 위해 무언가를 준비하기 이전에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유진의 말에 공감했다. 그래도 고민만 하며 무턱대고 시간을 쓰는 것보다 확실히 미래를 준비하는 편이 나았다. 같은 학과 동기 중에도 전공을 살리기보다 고시공부에 관심을 두는 친구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래도 자신은 다른 동기들보다 일찍 준비를 시작한 것이 다행이었다.

가끔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엄습하기도 했다. 이 길에 모든 걸 걸었는데 만약에 안 되면 최악인 상황이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학과 행사에 가는 일은 까맣게 잊었다. 더욱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진지하게 공부에 매진하기 위해 다음 학기에는 아예 휴학하고 노량진에 가기로 했다. 대학은 시험에 붙은 후에 다녀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사진 출처: 정종기 씨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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