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을 쫓아 꿈을 찾다
공을 쫓아 꿈을 찾다
  • 이윤수 기자
  • 승인 2014.04.01
  • 호수 14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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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아티스트 JK전권

축구공 하나로 세계 풋볼 마니아들을 열광시킨 동양의 한 청년이 있다. 프리스타일 사커 세계랭킹 2위에 빛나는 전권씨의 이야기이다. 프리스타일 사커란 일반축구와는 달리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예술로서의 축구를 말한다. 지금의 JK전권이 되기까지 무작정 공 하나 들고 꿈을 찾아 달려간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자.

공은 내 운명
그의 어린 시절은 항상 축구공과 함께 했다. 5살 때부터 동네 초등학생 형들과 공을 찼을 정도로 이른 나이에 축구를 접했다.  매번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를 했던 그는 형들과의 축구경기에서도 거의 진 적이 없었다.

“한번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동네 형, 친구들이랑 아마추어 축구대회에 참여를 했었어요. 얼떨결에 대회 4강까지 올랐죠. 참가한 학생들에 비해 제 나이가 어렸는데 운이 좋게 한 골을 넣었어요. 그 일을 계기로 축구 스카우트제의가 와서 정식으로 축구를 배울 수 있게 됐어요.”

하지만 어린 나이에 매일같이 짜여진 스케줄에 맞춰 축구를 한다는 것이 큰 부담이 됐었던 걸까? 공 하나만 있으면 하루종일 뛰놀던 과거와 달리 스카우트 이후 축구가 낯설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축구는 11명이 뛰는 경기에요. 11명 안에 들기 위해선 선후배간의 경쟁이 불가피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고된 훈련이 도움은 됐지만, 어느새 경쟁에 지친 저를 발견했어요. 과거 웃으면서 볼을 차던 때가 그리웠어요.”

정말 축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목 끝까지 차오른 적도 많았다. 그때마다 부모님과 주변의 걱정 때문에 쉽게 마음의 정리가 되지 않았다. 결국 중학교 1학년 때 축구부를 나왔다. 후련하기도 했지만 매일같이 정형화된 운동을 하다가 일반 학생이 되니까 어떤 꿈을 가져야 하나 고민도 들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접한 광고영상 하나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N사의 스포츠브랜드 영상이었어요. 세계적인 축구스타 호나우지뉴와 유명 안무가인 스틱맨이 나와서 프리스타일 사커를 하는 광고였는데, 어린 나이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죠. 어떻게 공 하나로 저런 자세와 컨트롤이 가능한 건지 궁금했어요.”

그 날 이후 그는 달랑 공 하나를 들고 홀로 연습을 시작했다. 개인연습을 시작하고 나서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광고로만 보던 기술을 스스로 해낸다는 사실에 뿌듯했다.

한편 그의 집 근처에는 프로 축구팀 ‘울산현대호랑이’의 클럽하우스가 있었다. 클럽하우스가 등산로로 이어져 있어서 가끔 홀로 공을 들고 그곳을 찾곤 했다.

“어린마음에 자랑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클럽하우스 구석진 곳에서 혼자 개인기도 하고, 기술도 몇 개 했었는데 근처를 지나가던 프로 선수가 ‘너 진짜 잘하는구나’라고 한마디를 해줬어요. 딱 그 한마디가 저한텐 하나의 기폭제가 됐었던 것 같아요. 아마 그때부터 프리스타일 사커라는 분야에 제가 더 깊이 다가갈 수 있었던 계기가 됐어요.”

묵묵히 도전하다
일반계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됐지만, 그는 항상 펜보단 공을 잡는 게 일상이었다. 특히 부모님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당시 프리스타일 사커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분야였기 때문이다. 방황하던 그에게 아버지의 한마디가 큰 힘이 됐다.

“아버지께서 제게 이 분야에서 1등이 될 거면 하고, 아니면 하지 마라’라고 말씀하셨어요. 이후에 프리스타일 사커 대회에 참여하기 위해서 정말 죽기 살기로 연습을 했어요. 일반 학생들이 공부하는 시간을 저는 개인 훈련시간으로 활용했죠. 매일 새벽 3시, 4시까지 연습을 안 하면 불안해서 잠을 못 잘 정도로 강박증에 시달리기도 했어요. 당장 대학진학을 안 하더라도 분명 언젠간 이 노력이 결실로 돌아오리라는 걸 믿고 묵묵히 해 왔어요.”

그는 직접 인터넷 카페를 만들고 본인이 프리스타일이 나오는 광고를 따라 하거나, 연습한 기술들을 영상으로 찍어서 올려 공유하기도 했다. 어느덧 카페가 큰 인기를 누리게 됐고, 여러 행사, 공연 섭외가 빗발쳤다. 지금도 많은 행사를 다니지만 아직도 첫 공연 때를 잊을 수가 없다.

“K리그 울산 홈경기 개막전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대단한 기술을 선보인 것도 아닌데, 울산문
수구장의 그 수많은 팬이 제 공연에 큰 응원과 환호를 보내주는 거예요. 정말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짜릿하고, 뭉클했어요. 속된 말로 삘이 꽂혔다고 하죠. 아직도 잊지 못할 공연이에요.”

틈틈이 공연을 통해 얻은 행사비로 수입을 올려 거기에 안주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실력도 늘었고, 참여하는 대회에서 상을 받는 경우도 많아졌다. 거침이 없었던 고등학생 3학년 때 그냥 문득 외국에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작정 30만 원을 들고 축구의 고장 영국으로 떠났다. 그 당시 박지성 선수가 영국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었기 때문에 그 역시 공연하면 인기 스타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나도 높았다. 

공연 중간에 쫓겨나기 일쑤였고, 심지어 돈이 다 떨어져서 민박집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영국에 간 지 일주일째 되는 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트래펄가 스퀘어에서 공연을 시작했다.

“공연을 시작한 지 얼마 안돼서 아니나 다를까, 경찰이 다가왔어요. 하지만 신이 도우셨는지 그 경찰이 본인에게 기술을 알려주면 공연을 허락해주겠다고 하는 거에요. 덕분에 공연을 무사히 할 수 있었죠.”

점점 많은 사람이 그를 보러오기 시작했고, 공연을 통해 방을 빌릴 정도의 돈 까지 벌 수 있었다. 어느 덧 트래펄가 광장은 한국관광객들의 필수 여행코스가 되었다. 그를 눈여겨본 에이전트와 계약을 맺은 후, Sky Sports 프로모션 광고에 참여하게 되었다. 공 하나 들고 찾아간 영국에서 마침내 그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내가 좋으면 그만
행복했던 시기도 잠시 오랜 외국 생활 동안 차츰 그는 회의적으로 변해갔다. 본인이 행복하기 위해 시작한 운동인데 어느 순간부터 일만 하는 기계가 돼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을 하러 갔는데 갑자기 공허한 느낌이 왔어요. 내가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떤 목적을 갖고 하고 있는 건가? 내가 행복하려고 시작한 운동인데 그저 돈을 벌러 해외로 건너온 외국인 노동자처럼 운동을 일로만 생각하게 된 건가?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을 때, 그의 관심을 끈 것이 있었다. 한국과는 다른 축구교육 시스템이었다. 체력과 전술을 중요시하는 한국과는 달리, 영국의 축구교육은 기본적인 볼 컨트롤과 기술들을 강조했고, 학생들은 굉장히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했다. 한국에도 이런 방법을 도입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지금의 전권
아트사커 아카데미를 만들었다.

“지금은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축구에 필요한 기술을 알려주고 있어요. 수강생들이 그 기술을 실전에서 사용하고, 대회에서 상을 받아 돌아오면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예전에는 제 퍼포먼스에 사람들이 환호를 해주면 그걸로 만족했지만, 이제는 제게 배운 학생들이 상을  받아오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현재 그는 꿈을 쫓느라 잠시 잊었던 학업을 위해 뒤늦게 대학에 입학해 공부중이다. 그는 요즘 대학생들을 보면서 가끔은 안타까운 생각이 들때도 있다고 한다.

“요즘 학생들은 너무 안정적인 것에만 열광하는 것 같아요. 남들과 발맞춰 나가려는 것보다는 본인이 좋아하는 걸 찾아서 도전하고 경험하려는 모습이 많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제가 오래 살진 않았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게 한 가지 있어요. TV 강연 프로그램 같은 걸 보면, ‘도전하라’ ‘경험하라’고 뻔한 얘기를 하잖아요. 근데 그게 다 사실이라는 거예요. 두려워하지 말고 끝까지 도전하고 경험했으면 좋겠어요!”

사진 김은영 기자 young5412@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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