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보며 살기엔 인생이 짧아요”
“눈치 보며 살기엔 인생이 짧아요”
  • 김은영 기자
  • 승인 2014.03.10
  • 호수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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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가 권령은 씨

그동안 숱하게 많은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사람을 만나는 일은 매번 새롭다. 인터뷰를 위해 도착한 곳은 광명시 시민회관. 한가한 낮에 사람들이 돌아다닐 만한 곳은 아니었다. 기자 또한 수업을 들어야 할 시간에 낯선 도시의 한 시민회관에 앉아있으려니 기분이 묘했다. 이런 이질적인 시간 사이로 권령은씨(이하 권 씨)가 걸어들어왔다. 무척 바쁜 걸음이었다.

이날 권 씨는 광명시 시민회관에서 공연을 위해 무대에 서기로 돼 있었다. 춤을 만드는 안무가이자 무용수인 그는 춤에 대한 사랑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열렬한 예술가다. 어릴 적부터 안무가가 꿈이었기에 우리학교 생활무용예술학과,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전문사 창작과 졸업의 교육과정을 밟았다. 최근에는 일본에서 열린 ‘요코하마 댄스 컬렉션 EX’에서 주일 프랑스 대사관 상을 받았다. 참가한 안무가라면 누구나 받고 싶어 했을 상을 거머쥐게 된 기쁨이 가시기도 전에 그를 만나 보았다.

“민머리의 무용과 여대생”
한대신문(이하 한): 우리학교에서 어떤 대학생활을 보내셨나요?

권령은 씨(이하 권): 주로 연습실에만 있던 학생이었어요. 방과 후에도 계속 과 교습이 있었기 때문에 무용 공부만으로도 바빴어요. 때문에 학교 행사에 크게 참여할 수 없었어요. 거의 바쁜 생활의 연속이었죠. 지나보니 캠퍼스 생활을 못 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있어요.

한: 흔히들 말하는 무용과 학생들만의 스타일이 있잖아요. 이를테면 커다란 점퍼를 입고, 머리를 틀어 올리는 거요. 권령은 씨도 그들과 비슷한 스타일의 학생이었나요?

권: 아마 제가 무용과 학생인지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을 걸요. 대학 들어간 후 거의 1학기가 지나고 나서 삭발을 했어요. 그 상태로 3년 동안 학교를 다녔죠. 왜 그랬냐고 물으면 모르겠어요. 하여튼 기존의 무용과 학생들의 표준적인 생활과는 좀 달랐던 것 같아요. 사실 그때는 춤을 추고 싶은 마음이 강했어요.

한: 중학생 시절부터 무용을했다고 들었는데, 언제부터 무용에 관심을 두게 됐나요?

권: 하루는 TV를 보는 데 ‘홍신자’라는 무용가가 나왔어요. TV를 보며 나도 저 사람처럼 살고 싶었고, 30살에는 내 이름으로 된 무용단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당시에는 먼 나이라고 생각했죠. 꼭 지켜야만 하는 목표는 아니었지만, 14살 때 그 꿈이 생기면서 무의식적으로 계속 무용을 하게 되지 않았나 싶어요. 그 생각이 나도 모르게 원동력이 돼서 여태 춤을 추고 있던 것 같아요.

한: 그럼 활동하고 계신 ‘리케이댄스’가 직접 창단한 무용단인가요?

권: 리케이댄스는 한양대 선배이자 대학 시절부터 춤을 가르쳐준 이경은 선생님과 함께 창단한 무용단이에요. 현재 예술감독으로 이경은 선생님이 계시고, 저는 창단회원으로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어요. 그리고 2011년 제가 서른 살이 된 때 친구들과 함께 ‘살롱 드 니나노 (salon de Ninano)란 무용단을 만들었어요.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 춤으로 해결해”
한: 요코하마 댄스 컬렉션 EX에서 수상한 작품인 ‘나를 위한 기술’은 어떻게 창작하게 됐나요?

권: 국내에 ‘한팩 차세대 안무가 클래스’란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거기에 들어가서 공부도 하고 직접 만든 작품으로 쇼케이스(작업 과정 중에 있는 작품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피드백을 얻는 것)를 했어요. 이후에 그 작품을 대회에 신청하게 됐고, 올해 2월에 상을 받게 된 거죠.

한: ‘프랑스 대사관 상’이란 상을 받았는데, 이름만으로는 얼마나 중요한 상인지 느낌이 잘 오지 않아요. 이 상이 어떤 의미인가요?

권: 이 콩쿠르는 순위의 개념이 없어요. 그래서 상의 이름이 숫자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되어있죠. ‘프랑스대사관상’은 6개월간 프랑스 국립 안무센터에서 연수를 받을 수 있는 혜택을 주는 상이에요. 그곳에서 자신의 작품을 발표할 기회도   주기 때문에 대회에 참가하는 참가자들이 욕심내는 상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 이 상이 너무 받고 싶었고요.

한: 작품의 주요 주제가 ‘자아 성찰’인데 작품을 만들며 본인과 연관된 부분이 많았을 것 같아요.

권: 네, ‘나는 누군가’란 질문에서부터 작품이 시작된 거예요. 이전부터 이 질문에 관한 작품을 쭉 만들고 있었어요. 제가 만든 작품들은 밖이든 안이든 사용하는 소재가 모두 저 안의 무언가를 건드렸기 때문에 나오는 거예요.

한: 나와 연관된 주제 외에도 본인 작품만의 특징이 있나요?

권: 저도 몰랐던 점인데 주위에서 오브제를 자주 사용 하는 편이란 말을 들었어요. 작품 안에서 다양한 오브제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한 오브제를 여러 방면으로 활용하는 걸 즐겨요. 평소에도 오브제를 볼 때 어떤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 탐구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한: 작품을 창작할 때 사용하는 본인만의 방식이 있다면

권: 평소에도 질문이 많은 편이지만, 특히 작품을 창작할 때 ‘질문’이 꽤 도움이 된다고 봐요. 기술적인 단순한 질문에서부터 주제에 대한 진지한 물음까지 일단 생각나는 걸 ‘질문 노트’에 막 적어요. 그러다 보면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이 궁금할 때가 있어요. 그때 작품이 시작되는 거예요.

한: 그렇다면 창작과정에서 가장 힘든 일은 무엇이에요?

권: 저랑 싸우는 일, 그게 가장 힘든 것 같아요. 누가 규제하거나 알려주는 일이 아니잖아요. 내가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직접 공부하고, 방법을 찾아야 하죠. 또 중간에 힘들어지면 쉴 수도 있고, 귀찮아 지면 금방 싫증 날 수도 있어요. 자신을 직접 규제해야 하는 일이 힘들죠.

“무용과 오랫동안 함께하고 싶어요”
한: 무용가님처럼 예술과 관련된 직업들은 현실적으로 먹고살기 힘들다고 생각해요. 이에 대해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권: 무용은 참 재밌는데 종종 이 일을 오래 하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하기는 해요. 재능을 가져도 현실적인 여건이 안돼서 중도에 길을 바꿀 수밖에 없는 분들도 계시죠. 저 역시도 부유한 사람은 아니에요. 하지만 삶의 가치는 금전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 부분인 것 같아요. 내 삶을 돈으로 매긴다면 마이너스일지 몰라도, 지금 하는 일이 제 마음에는 꼭 드는 삶이라 생각해요. 또 모든 일이 오래 하기 힘들지 않아요?

한: 춤 추는 것을 하길 잘했다고 생각 될 때는 언제인지

권: 일단 무대에 설 때가 제일 좋아요. 관객들이 날 바라볼 때 느껴지는 긴장감도 매우 좋고, 커튼콜 할 때도 좋아요. 그때마다 내가 이 일을 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내 예술로 인해 누군가의 삶이 바뀔 수도 있다는 것, 그게 예술의 큰 힘인 것 같아요. 저 역시 다른 이들을 통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 것처럼 요. 저도 그런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어 매우 기쁘고, 내 공연을 본 누군가에게도 그런 변화를 줄 수 있으면 참 좋겠어요.

한: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하기 위해서 본인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능력이 있다면

권: 제가 계속하고 싶다는 뜻은 쉬지 않겠다는 말이에요. 살다 보면 언젠가는 이 일을 쉬어야 할 때가 생길 거예요. 그런 상황이 와도 결국 언젠가는 다시 이 세계로 돌아오고 싶어요.
옛날에는 일주일만 춤을 안 춰도 몸이 굳은 것 같고, 뒤처지는 것 같아서 조바심을 많이 냈어요. 지금은 1년간 여행만 다니기도 하고, 잠시 연습실을 나와 바깥도 돌아봐요. 조급해하지 않고 다시 춤으로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한: 쭉 해왔던 일을 관두는 게 두렵진 않은지

권: 올해로 19년째 춤을 추고 있어요. 억지로 노력해서 이 시간을 춤춰온 게 아니고 하고 싶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하게 된 거예요. 제가 좋아서 보낸 시간들이니 관두는 데 있어 두려움은 없어요.
그리고 새롭게 시작한 일은 다시 0부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때까지 춤을 춰왔던 시간이 새로운 일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봐요. 크게 보면 그것은 삶 안에서의 변화일 뿐이니까요.

한: 보통 사람들은 미래를 걱정하며 사는데 본인은 많이 다르게 사는 것 같은데

권: 남들 눈치를 보면서 살기에는요. 시간이 너무 빨리 가요. 그 시간을 인식하면 사회적인 시선을 고려할 시간이 없어요. 그래서 그냥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야 해요. 누가 뭐라 하던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선택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남을 의식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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