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제작에는 책임이 따른다
모든 제작에는 책임이 따른다
  • 금혜지 편집국장
  • 승인 2014.03.10
  • 호수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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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예능 프로그램 <짝>의 출연자가 자살한 상태로 발견됐다.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사람이 죽어나간 프로그램을 시청자에게 다시 보여주며 웃고 즐기라고 강요하는 것은 시청자에 대한 폭력”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시청자들의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3년동안 방영된 <짝>은 결국 폐지로 막을 내렸다. 

‘리얼리티’를 내세운 예능 프로그램이 많아진 것은 이미 오래된 얘기다. <무한도전>, <정글의 법칙>처럼 최소한의 각본에 캐릭터의 힘으로 극을 전개하는 방식은 거의 예능의 공식처럼 자리 잡았다. 그중에서도 ‘관찰예능’이라는 방식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진짜사나이>, <나 혼자 산다>처럼 정해진 공간에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주인공의 모습을 모두 카메라에 담는 방식이다.

‘시사교양’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기는 했지만 <짝>이라는 프로그램의 기획 자체는 기존의 관찰예능과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출연자들이 순전히 일반인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방송 출연 경험이 없는 일반인들이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모습에 혼란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데뷔한지 10년이 넘은 방송인 노홍철도 <무한도전>에서의 이미지와 현실의 모습이 달라 우울증을 겪은 적이 있다고 고백했을 정도다. 더욱이 리얼리티를 전면에 내세운 프로그램이라면 혼란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또한 프로그램의 소재가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사적인 문제와 걸쳐 있다. 휴대폰 회사가 신종 기기를 판매하듯 결혼정보회사에서 개인의 스펙을 판매하고 있다지만, 여전히 ‘짝’을 만나는 문제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조심스러워야 할 일이다. 일반인들을 ‘애정촌’에 몰아넣고 카메라 앞에 세우는 일은 시청자의 재미는 보장할지 몰라도 출연자들을 보호해 주지는 못했다.

현재 사건을 둘러싼 의견을 보면 ‘그 정도 마음가짐으로 애정촌에 들어간 것이 잘못이다’라는 비난이 고인에게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출연자 개인에게 책임이 돌아가서는 안 된다. 애초에 <짝>이라는 프로그램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은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만큼 출연자들에게 방송을 위한 연출이었다는 점을 충분히 숙지시키고 최대한의 배려를 쏟았어야 한다.

대중들의 눈은 높아졌고, 시장 논리에서 새로운 콘텐츠는 대중을 만족시켜야 한다. <연애편지>나 <장미의 전쟁>처럼 누가 봐도 각본에 의해 서로를 선택하는 예능을 경험한 시청자의 입맛을 맞추려면 더 리얼하고 더 자극적인 소재가 필요했다. 그러나 위험부담을 안고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면 그 과정에서 좀 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방송을 제작하고 진행했어야 한다.

결국 모든 방송 콘텐츠는 어떤 방향으로든 상업성을 띄고 있다. 아무리 욕을 먹어도 막장드라마가 인기를 얻고, 노출이 심한 걸그룹이 유명세를 타는 상황에서 ‘선정적인 것은 무조건 안 된다’는 말은 비현실적이다. 상업성과 거리가 먼 대학 언론에서 신문을 제작하는 입장에서도 독자들의 취향과 신문의 책무성 사이에서 항상 고민해야 하는데, 시청률로 인해 프로그램의 존폐와 개인의 커리어가 위험해지는 상황에서는 오죽할까.

이전에 이 소식을 접했다면 그저 시청자의 입장에서 안타까워한 후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언가를 책임지고 제작하는 위치에 있게 되니 <짝> 제작진의 무거운 마음이 아주 남의 일 같지는 않다. 어떤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일은 매력적이지만 동시에 책임이 따르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도 어쩌겠나, 그 무거움을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라면 묵묵하게 오늘 할 일을 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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