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말하는 청춘은 네가 아니다
그들이 말하는 청춘은 네가 아니다
  • 금혜지 기자
  • 승인 2014.03.04
  • 호수 139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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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서 사고를 당한 대학생들의 소식을 듣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몇 년간 몰두했던 입시가 끝나고 대학 생활도 시작되기 전.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만큼 해방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 유일한 시기에, 새로운 시작의 기대감이 다 부풀기도 전에 무너져버리다니.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애도해야 할 비극이다.

사고 이후 불안해진 학부모들은 항의전화를 했고, 학생회 주관의 행사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러나 행사 자체를 막는다는 것은 교통사고가 났다고 자동차들을 다 없애버려야 한다는 말처럼 느껴진다. 학교가 앞서서 사고를 방지할 대책을 세우는 것이 먼저다. 어떻게든 대학생활은 시작되고 시작하는 이들이 모이는 장소는 생길 테니.

어제 새로 방에 들어온 룸메이트도 새로운 시작을 앞둔 14학번 새내기였다. 다음날 새터를 간다며 어떻게 해야 선배들에게 미움을 받지 않을지 고민하는 모습이 새삼 낯설게 느껴졌다. 불과 2년 전의 내 모습처럼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에 들떠있었다. 룸메이트의 기대감을 망치고 싶지는 않지만, 이번 칼럼에서는 조금 찬물을 끼얹는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2년 전 새내기 시절 가졌던 환상과 2년이 지난 지금 가지고 있는 기억은 거의 별개의 것이다. 유연석, 송중기 같은 훈남 선배들과의 분홍빛 캠퍼스 생활은 입학 직후에 단념했고, 영화 <건축학개론>의 풋풋한 첫사랑도 없었다. 하늘같이 여겼던 선배들도 결국에는 나와 고민의 범위가 비슷한 대학생일 뿐이었다.

나름대로 정해 놓은 ‘멋진 선배’의 기준에 맞는 이들은 이미 취업전선에서 승리해 자리를 잡았거나 대외활동, 어학연수에 바빠 학교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놀면서 멋진 선배가 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고, 나는 어떤 사람이 돼야 하는지 크고 작은 결정을 하기가 어려웠다.

생각했던 대학 생활의 모습과 실제로 겪게 된 모습이 달랐던 것은 당황스럽긴 했지만 무난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들이 흔들렸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대입을 준비하던 수년 동안 나는 광고기획자가 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막연한 장래희망이 아니라, 관련 서적과 방송은 물론 실무자를 만나기도 하며 키워 온 꿈이었다.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뛰는 강렬한 꿈이었고, 대학생이 돼서 다른 진로를 고민한다는 것은 상상도 해보지 않았다.

그러나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이유만으로 항상 생각의 꼭대기에 있던 목표는 너무도 빠르게 제거되어 버렸다. 그 때 느꼈던 무력감은 모든 대학 생활이 부질없게 느껴질 정도였다. 신문사 가 아니었다면 여전히 이리저리 흔들리며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을 거다.

환상은 깨지기 마련이고, 그렇게 확고하다 믿었던 것들도 아무런 정당한 이유 없이 무너진다. 자신이 심사숙고 끝에 세운 목표라 해도, 반평생 존경해 온 롤모델이라고 해도 그들이 어떤 형태로든 변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어차피 변할 거니까 아무것도 정해놓지 말라는 허무주의가 아니다. 기대에 부푼 새내기들에게는 잔인한 말이지만, 붕괴의 가능성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당신의 시작은 훌륭하다.

그리고 어느 날 방황하게 되더라도 자괴나 비관에 빠지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다. 방황하는 자신이 모습이 한심하다고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한심한 것은 나쁜 게 아니다. 남을 한심하다고 재단하는 말과 그 시선에 분노하는 나 자신이 나쁘다.

“미래는 그냥 미래지. 왜 미래가 찬란해야 돼.” 어제 본 다큐멘터리에서 유난히 필자와 닮았다고 느낀 한 학생의 말이다. 청춘이 아플 필요도, 미래가 찬란할 필요도 없다. 이제 자신의 삶에 스스로가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쳐야 할 나이다. 시작된 청춘이 온전히 당신 것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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