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만든 사람
사랑이 만든 사람
  • 김은영 기자
  • 승인 2014.01.06
  • 호수 139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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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클럽'의 영원한 삼촌, 유길영 씨

우리학교의 건학정신인 ‘사랑의 실천’. 다른 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가란 뜻이다. 비록 우리학교 학생은 아니지만, 한양을 통해 또 다른 ‘사랑의 실천’을 배운 사람도 있다. 그 주인공은 ERICA 캠퍼스 앞에서 한 중국집을 운영하고 계시는 유길영 씨다. 예전 거칠었던 과거를 청산하고, 2년 전부터 우리학교 학생들과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된 유 씨는 그들을 통해 새로운 사랑을 만났다. 항상 페이스북을 통해 학생과 소통하고, 또 학생의 눈에 맞춘 가격으로 짜장면을 파는 유 씨의 가게는 교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자신을 ‘아저씨’ 가 아닌 ‘삼촌’으로 불러달라고 하시는 유 씨를 만나 보았다.


“밑바닥 인생에서 지금에 오기까지”
한 대신문(이하 한): 지금 짜장면 가게를 차리기 전에는 무슨 일을 했나요?
유길영 씨(이하 유): 고등학생 때 불량서클에 들어가게 되면서 안 좋은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어.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안산에 와서 비슷한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러다 건달생활을 하게 된 거야. 그러면서 사채, 일수, 단란주점, 다방 같은 데를 돌며 일했어. 무력으로 못 받은 돈 받아주는 그런 일 말이야…? 돈 안 주면 집 안에 드러눕고, 그런 일을 했지.

한: 지금은 그런 생활을 청산한 건가요?
유: 길게는 못할 일이라 생각했지. 그렇게 생각한 계기가 내가 마음이 약하단 걸 알게 돼서야. 돈 받으러 갔다가도 사람이 너무 힘들어서 울고 있으면 밥값을 주고 왔으니까. 이후에 군대 갔다 와서 형이 차려준 포장마차에서 술장사를 했어.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나한테는 아직 폭력적인 성향이 남아 있었지.

한: 다음에는 어떻게 됐나요?
유: 아들 낳고 나서 술장사를 그만뒀지. 당시에 부양해야 하는 가족이 많았거든. 사동에 있는 한 신문사에서 신문 배달 일을 했어. 새벽 한 시 반에 나가서 오토바이를 타고 여섯 시까지 신문 배달을 했지. 그 일 하기 전에는 껄렁하게 다녔는데, 막상 제대로 된 일을 하려다 보니 신문사에서 인상이 안 좋다고 일을 안 시켜주려 하더라고. 그래서 이후에 정신 차리고 말쑥하게 다니게 됐지.

한: 짜장면 집에서 일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유: 처음에는 무작정 짜장면 가게에 찾아가서 일하게 해달라며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했어. 그 정도로 힘든 시기였거든. 당연히 주인집 아저씨가 이상하게 봤지. 그래도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이니까 믿음이 생기셨는지 500만 원을 빌려 줬어. 그 돈으로 반 지하 방도 얻어서 좀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거야. 짜장면 만드는 방법도 그때 배웠지.

한: 짜장클럽은 어떻게 열게 된 거예요?
유: 짜장클럽에서 개업일원으로 시작해 3년 동안 음식을 했어. 그런데 어느 날 사장이 다단계에 빠져 가게가 완전히 망하게 됐어. 이후에 좋은 기회가 생겨 내가 이 가게를 운영하게 돼서 재작년 1월 14일에 짜장클럽 가게를 개업했지.

한: 아내분과 21년을 함께 하다가 결혼식을 작년에 치르셨는데요. 식을 늦게 치른 이유가 무엇인가요?
유: 삼촌이 건달일 하면서 아내 걱정도 시키고, 돈을 안 벌었잖아. 그러다 보니 결혼식 치를 여유가 없어 식을 자꾸 미루게 됐어. 옛날에 방바닥이 시커멀 정도로 바퀴벌레가 득실한 곳에서 집사람과 아이가 산적도 있었지. 압류가 붙고 가진 게 없을 때, 돈 벌기 위해 서로 흩어져 산적도 있었어. 심지어 아내를 때리기도 했어. 남자가 여자를 때린다는 건 수치야. 정말 미안한 일을 많이 겪게 해서 진짜 집사람만을 위한 결혼식은 최고로 해주고 싶었어. 옆에서 내가 변화하길 지켜봐 준 집사람에게 너무 감사해. 나이 먹으면서 더 사랑하는 것 같아. 아직도 집사람 보면 심장이 뛰어. 집사람이 없는 삶은 생각해 본 적이 없어.

한: 아내분께서 많이 기다려 준가요?
유: 그렇지, 그런 걸 이해하고 기다리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하지만 아내는 내가 정말 밑바닥까지 내려갔을 때도 지켜봐 준 사람이야. 짜장면 가게를 하는 사람 중엔 밑바닥까지 가 본 사람이 많거든. 지금 다시 내려간다 해도 두렵진 않아.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가는 건 견디기 어렵지만, 이미 낮은 곳을 경험한 사람에게는 그게 힘들지 않거든. 아내 또한 그렇게 생각해준 게 고맙지.

“페이스북 활용의 좋은 예”
한: 지금은 페이스북에서 학생들에게 인기 많은 사장님으로 유명한데요. 원래 학생들을 좋아했어요?
유: 처음 짜장클럽 직원으로 있었을 때는 학생들을 그냥 손님으로 대했어. 가게 페이스북도 정보 알림 용도로만 사용했지. 그런데 자꾸 학생들의 소식도 알게 되고, 대화할 기회가 자주 생기다 보니 생각이 많이 바뀌었지. 보면 볼수록 정이 많이 생겨. 군대 가는 아이들 밥도 무료로 먹이기도 하고, 연인이 오면 탕수육 하나라도 서비스로 주고 싶어져.

한: 그런데 지금처럼 학생들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유: 작년 10월에 나를 바꿔 준 큰 계기가 있었어. 내 생일이었는데, 몇몇 친분이 있던 아이들이 나를 위해 생일파티를 열어줬어. 아예 파티를 기획해서 풍선도 여러 개 달아놓고, 케이크도 사주고. 작게는 초콜릿 하나 사탕 하나까지 주는 행렬이 밤까지 끊이질 않았어. 그 날 너무 감동 받아서 탕수육도 서비스로 줬는데 하루에 700명이 넘게 왔어. 그때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생일은 좋은 날이구나, 그렇게 사랑받은 게 처음이거든. 근데 빚은 더 늘었어. (웃음)

한: 마치 젊은 학생들처럼 페이스북을 정말 잘 사용하세요, 비결이 있나요?
유: 처음에 언론정보대학 학생이 내게 페이스북 사용법을 알려줬어. 그 애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지. 그다음부터는 그냥 내 하고 싶은 말을 쓰는데. 실수할 때가 있어. 언제는 야한 동영상에 ‘좋아요’를 눌렀어. 잘 몰라서 한 일이었는데, 알려준 학생이 “삼촌 그런 거 누르면 안 돼요.”라고 알려주더라. (웃음)

한: 가게 일을 하며 다양한 학생들을 만났을 텐데 혹시 학생들에게 섭섭한 점은 없었나요?
유: 있지. 왜 없어 장사하는데. 소중한 사람, 그냥 아는 사람, 와도 그만 안 와도 그만인 사람, 진짜 안 왔으면 좋겠는데 오는 사람. 다 평등하게 대하지. 좀 약은 애들이 싫어. 난 진심으로 대했는데 오히려 그런 것을 이용하는 아이들이 있어. 콜라나 탕수육을 서비스로 주는 행사를 해도 너무 그걸 이용하는 아이들. 돈이 없으면 차라리 없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돼. 어떻게든 자기식으로 생각하는 아이들은 좀 아쉬워.

▲ '짜장클럽' 가게 내부 모습. 학생들과 찍은 수많은 사진이 붙어 있다.
“진정한 사랑의 실천”
한: 그래도 너무 서비스를 많이 주면 가게 운영이 힘들지 않나요?
유: 물론 재정문제로 힘들 수 있지. 방학하면 학생도 별로 없잖아. 돈을 벌기 위해 수원에 노래방을 차렸는데, 수입은 여기보다 좋았지. 미안…? (웃음) 그런데 한 달 장사하고 그만뒀어. 노래방 일 하느라 짜장면 집을 한 달 동안 쉬게 됐는데 애들이 페이스북으로 장사 그만두면 안 된다고 계속 메시지를 보내는 거야. 그래서 집사람에게 양해를 구해 바로 학교로 다시 왔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올 때 가슴이 얼마나 벅차올랐는지 몰라. 아, 내가 있어야 할 곳이구나. 이때부터 추억을 남겨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진을 찍기 시작했지.

한: 이 가게가 단순히 장사 이상으로 많은 것을 의미하네요.
유: 응, 나의 많은 걸 변화시켜줬으니까. 옛날에는 욕만 하고 살았는데 아이들과 있으면서 말투도 많이 바뀌게 됐어. 내가 변화되니까 가족도 행복해지더라. 딸이 둘 있는데 아빠 노릇을 위해 학생들과 상담을 해보기도 했어. 딸이 무엇이 필요한지 알게 되고 훨씬 친해지게 됐어. 여기서 뭘 더 바라. 이것 자체가 삼촌은 행복이야.

한: 이곳 말고 다른 곳에서 장사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나요?
유: 여기서 떠날 일은 없어. 내게 더 이상 무언가를 채워 줄 그런 곳도 없고. 이곳에 모든 추억이 담겨 있는데 여길 버리고 가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지. 삼촌이란 자갈을 다 깎아서 빛나게 만들어준 곳이 한양대 같아. 나를 좋은 빛으로 채워주고 사랑을 알게 해주고, 또 울게 해준 곳, 가족이 뭉친 곳이 다 이 학교야.

옛날엔 인상 쓰고 거칠게 살았더니 내 주위에 그런 사람만 모였어. 근데 여기 와서 학생들과 어울리다 보니까 내면이 변화될 수 있었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데 어떻게 다 좋은 부분만 있겠냐. 그러나 그 네모난, 모난 부분을 서로 잘라주면 동그라미가 되지 않을까. 그 사랑을 실천해 준 게 한양대야.

한: 그럼 2014년에도 혹시 새로운 다짐이 있다면?
유: 일단 올해에는 가정에 충실해지기로 했으니까 밀린 빚 다 갚기야. 또 간간이 행사도 하면서 학생들에게 내 마음을 베푸는 것. 지금 상태를 늘 유지하는 게 내 신년 목표야. 이런 마음가짐으로 신년에도 허벌나게 달려볼란다~

사진 이윤수  수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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