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자세
대화의 자세
  • 한대신문
  • 승인 2014.01.03
  • 호수 1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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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The Negotiator’는 인질범과 협상을 전문으로 하는 특수경찰(케빈 스페이시 분)이 기지를 발휘해서 진범을 밝히고 인질범의 누명을 벗기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겉으로 드러난 유일한 사실은 범인이 무고한 사람들을 인질로 삼고 있다는 것이었고, 법을 집행하여 범인의 체포하거나 사살하는 일만이 남아있었다. 그런데, 협상전문가가 투입되면서 상황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대화를 통해 범인의 동기와 상황을 이해하게 되면서 얽힌 실타래를 풀어갈 방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어떤 대화도 없이 경찰의 진압이 이루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대화를 시도했더라도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영화는 다행스럽게도 진실이 드러나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풀리고 관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철도노조의 파업으로 세상이 어수선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의견의 대립과 충돌은 공기와도 같은 것이다. 충돌과 갈등이 없는 사회를 꿈꾸는 것은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획일적 사회를 꿈꾸는 것과 같다. 갈등과 대립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다만, 갈등이 도처에 편재하는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대화’해야만 한다. 말하는 행위를 떠올릴지 모르지만 사실 대화는 듣는 것에서 시작한다. 듣는 행위를 통해 상대와 내가 처한 입장의 간극를 좁혀나가는 것이 대화의 출발점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실종된 것을 단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대화하고자 하는 자세’라고 말하고 싶다. 국회에서나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서나 인터넷에서나 자기 얘기만을 쏟아내는 사람들만 넘쳐난다. 타인의 얘기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학교 후배라는 이유로,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우리는 종종 타인의 말을 끊고 입을 막는다. 그러면서, 자라나는 세대들이 어른들의 조언을 듣지 않는다고 답답해한다. 타인의 얘기에 귀 기울이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으면서 듣지 않는다고 나무라기만 한다.

우리 학생들은 듣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하기 바란다. 비난과 비판에 앞서서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를 훈련했으면 좋겠다. 특히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되면 좋겠다. 도서관에 앉아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도 사실 저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과 같다. 사람들과 대화하고 때론 치열하게 토론하며 진실을 찾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캠퍼스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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