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의 길은 나의 천직
지도자의 길은 나의 천직
  • 성명수 기자
  • 승인 2006.04.30
  • 호수 12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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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감독 “선수들 믿고 맡긴 것이 우승 원동력”

늘 한결같은 열정으로 춘계대학축구연맹전에서 우리학교를 우승으로 이끈 한문배 감독. 인터뷰 내내 열변을 토하는 그의 모습에서 1985년 한국프로축구 MVP를 수상했던 당시의 패기를 느낄 수 있었다. 2004년에 이어 또 한 번의 우승을 일궈낸 한 감독과의 인터뷰는 지난달 18일, 체육부실에서 이뤄졌다.
- 편집자주 -


춘계대학축구연맹전에서 우승했는데 소감을 말해 달라


선수들이 정말 잘해줬고, 학교와 체육부실에서 많이 도와줘서 우승할 수 있었다. 감독인 내가 한 것은 솔직히 없다. 학교, 선수, 그리고 감독이 삼위일체가 돼서 더 큰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다.

우승할 자신은 있었는가

겨울 훈련을 마치고 났을 때까지는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대회 개막 2주 전부터 선수들의 컨디션이 급격히 저하해 큰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학교 축구부에서만 20년을 있었는데 고등학교 축구부와의 연습경기에서 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막상 경기를 시작해보니 선수들이 회복세를 보이더니 상승분위기를 탔고 결국 우승까지 할 수 있었다. 8강에서 강팀인 연세대를 이겼고 4강에서는 고려대까지 제압했다. 8강에서 승리한 이후 선수들의 눈빛에서 자신감을 읽을 수 있었다.

우승하는데 수훈 선수는 누구인가

모두가 잘해줬다. 그 중에서도 심신영 선수는 대학 무대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공격수다. 지난 2004년도 우승주역인데 슈팅, 헤딩, 스피드 등 공격수가 가져야 할 모든 것을 갖춘 선수다. 김동현(현 벤피카), 김진용 선수(현 경남 FC)가 우리학교에 있을 때 가려져서 빛을 못 보던 선수인데 발군의 기량을 발휘하고 있다.

2004년에 대한축구협회로부터 올해의 지도자상을 받았는데 스스로 평가하는 본인의 장점은 무엇인가

솔직히 나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학생들이 잘해줬기 때문이다. 사실상 감독은 경기의 결과를 책임지는 사람이고 선수들이 잘 뛸 수 있도록 지원하고 뼈대를 다지는 역할을 해줄 뿐이다. 나는 선수들에게 항상 ‘네가 더 많이 알 수도 있고, 네가 더 잘할 수도 있다’라는 말을 강조한다. 편하게 대하지만 경기장에서만큼은 엄하게 대한다. 운동을 잘하는 것은 중요치 않다. 술, 담배를 금한다거나 숙소 출입시간을 지키라는 등의 경기 외적인 부분을 더 중시한다.

지금의 한 감독이 있기까지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인가

1992년까지 우리학교 감독이었던 고 배기면 감독이다. 내가 처음 코치로 왔을 때 해준 말이 ‘처음 들어왔을 때는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에 많이 지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감독일 때는 지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감독이 총책임을 지는 것이고 코치는 그 보좌역이라며 지도자 수업을 해줬다.

한 감독은 선수로서도 1985년에 프로축구 MVP를 수상했었는데 그 때 상황은 어땠는가

당시 나와 경쟁했던 선수들이 지금 프로축구 감독을 하고 있는 허정무(현 전남 드래곤스), 이장수(현 FC 서울) 등이었다. 나는 럭키금성의 주장을 맡고 있었는데 수비수이면서도 득점이 많았다.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득점도 많았기 때문에 팀 공헌도 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MVP를 수상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학교에는 어떻게 오게 됐는가

1986년에 학교로부터 코치직 제의가 왔다. 수많은 동문들이 있는 가운데 나를 코치로 선택해준 것에 대해 너무 고마웠고 항상 한양대를 마음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흔쾌히 승낙했다. 당시 33살이었는데 주저 없이 은퇴를 했다. 애초 프로생활을 3년 정도 하고 은퇴를 하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선수들을 키워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서 코치직을 수락했다. 그 때 수락하지 않았다면 한양대에 갈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지도자의 길을 걷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할 때는 언제인가

항상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특히 우리 선수들이 조금씩 커나가는 모습을 볼 때면 천직이라는 생각이 든다. 축구계에 있지 않는 친구들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기 때문에  부럽다는 말을 한다. 지방 경기가 있으면 여행도 다니고 좋을 것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시합에서 전술 운용을 어떻게 하고 선수는 어떻게 선발할지를 고민할 때면 정말 머리가 아프다. 감독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정말 모른다.

프로축구 드래프트제도에 대해 비판한바 있는데 어떤 점에서 잘못된 것인가

우선 학생들에게 직업선택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기 때문에 잘못됐다. 또한 축구계의 잘못된 구조를 고착화하기도 한다. 축구 선진국인 잉글랜드의 경우 첼시·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의 돈 많은 기업들만이 우승을 노린다. 중하위권 팀들은 좋은 선수들을 육성해 부자구단에 팔아서 수익을 낸다. 여러 팀들이 서로 다른 목표를 가지고 리그에 참가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전 구단이 우승을 노린다. 성적이 좋지 않아도 드래프트를 통해 좋은 선수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유소년 선수 육성에도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그 외에 축구계가 가진 문제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가

올 시즌 많은 프로팀들이 성적 지상주의 때문에 수비 축구를 하고 있어 프로축구 관중수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지난 숭실대와의 결승전 당시 해설을 맡았던 이용수 위원이 경기 끝나고 나에게 ‘프로축구보다 더 재미있다’고 하더라. 승패를 떠나 관중들에게 즐거운 경기를 선사하고 후회 없는 경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아마추어 토너먼트제도 문제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학축구팀이 70개 정도 되는데 이를 적절히 나눠서 승강제를 도입해야 한다. 최근 수년간의 성적대로 1부에서 3부 정도로 나눠 권역별로 리그제를 도입해야 한다. 리그를 하려면 좋은 경기장들을 만드는 작업도 해야 한다.

아들인 한종원 선수는 어떤 선수인가

지난해 드래프트를 통해 후배 정해성 감독이 있는 부천 SK(현 제주 유나이티드)에 입단했다. 대학에 들어올 때는 내가 일부러 선발에서 탈락시키기도 했다. 여러 명의 선수가 있었는데 종원이는 언제든지 입단시킬 수 있고 부모 입장에서 생각하면 다른 선수들도 모두 소중한 자식들이기 때문에 먼저 기회를 준 것이다. 물론 부인에게는 많이 혼났다(웃음). 아들이기 때문에 지도하는데 특별한 건 없었다. 다른 선수들과 똑같이 기회를 주되 거친 플레이를 펼치거나 하면 더 야단을 쳤다. 내 아들을 본보기로 야단을 치니까 전체적인 팀 분위기도 좋아졌다.

축구인으로서 아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선수로서 최선을 다하고 가능성이 없다면 군대를 다녀온 이후에 영어 공부를 했으면 한다. 축구지도자는 영어를 잘 할 줄 알아야 한다. 예전에 첼시의 무링요 감독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5개 국어를 하더라. 무링요 감독은 축구 선수 출신이 아니라 영어교사 출신이다. 그러다 통역관을 했고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해 세계적인 명장 반열에 오른 사람이다. 최근의 지도자들은 외국 선수들과도 자유롭게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감독으로서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말해 달라

현재 나는 정말 뛰어난 코치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선수들과 감독이 직접 커뮤니케이션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는데 중간 다리 역할을 너무 잘해주고 있다. 또 코치들이 훈련 스케줄을 작성하고 운영하는 등 나와 너무 잘 맞는다. 그래서 3,4년 정도 후에 지금의 코치들이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감독 자리를 물려주고 싶다. 사실 나는 축구인으로서 해보고 싶은 모든 것을 이뤘다고 생각한다.

한문배 감독 주요 경력

△ 1985년 한국프로축구 MVP 수상(럭키 금성)
△ 1986년 선수 은퇴
△ 1987년 우리학교 축구부 코치 선임
△ 1992년 우리학교 축구부 감독 선임
△ 2000년 대학축구연맹전 준우승(대 경희대 3:4 패)
△ 2003년 대학축구선수권 우승(대 상지대 3:1 승)
△ 2004년 대한축구협회 선정 최우수지도자상
△ 2004년 대학축구연맹전 우승(대 대구대 2:1 승)
△ 2006년 대학축구연맹전 우승(대 숭실대 2:1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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