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지만 왠지 친근한 얼굴들
낯설지만 왠지 친근한 얼굴들
  • 김은영 기자
  • 승인 2013.12.03
  • 호수 139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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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한글 야학 김승력 선생님

혹 러시아에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에 관해 알고 있는가. 일제강점기 외압을 피해 연해주에 살다 스탈린의 정책으로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이주당해 황무지에 삶의 씨를 뿌리던 한국 사람들. 그들은 현재 ‘고려인’이란 이름으로 이곳저곳을 떠돌고 있다. 이 사람들을 위해 김승력 선생님은 고려인 최대 밀집 지역인 안산에 시민단체 ‘너머’를 세우고 한글 교육, 상담 등 다양한 활동 중이다. 인터뷰 동안 끊임없이 상담소를 들락 나락 거리는 고려인을 맞이하느라 기자와는 한국말로, 고려인들과는 러시아어로 답하는 선생님이 마치 두 사람처럼 느껴졌다. 피곤함에 지친 몸도 모른 채, 마음은 항상 분주한 김승력 선생님을 잠시 불러 세웠다.

“삶의 고민 끝에 도착한 러시아 땅”

한대신문(이하 한): 러시아에 가게 된 이유는?

김승력 선생님(이하 김): 제가 러시아에 갔던 시기는 딱 서른이 되던 해였어요. 대학 졸업 후 회사 생활을 했는데 문득 어떻게 살아야 올바르게 사는 걸까란 고민이 되더라고요. 지금은 돈 벌 때가 아니라 이 고민의 뿌리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부터 사회주의 국가인 러시아에 관한 환상이 있었는데 그곳엔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방법을 찾던 중, 우연히 연해주 한 사범대학에 한국어과가 생긴 거예요. 강사를 모집한다고 해서 한국어 강사로 들어갔어요. 그곳에서 생활 하다 고려인 사회를 만났어요.

어느 날 고려인 현황을 알아봐야 할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고려인들은 러시아 군인들이 철수한 빈 막사에 몇백 가구가 들어와 살았어요. 추운 연해주에서 겨울은 나게 하자고 월동 지원 활동을 시작 했죠. 그 일을 시작한 게 계기가 돼서 여기까지 온 거예요.

한: 뜻밖의 일로 고려인과 만난 거네요.

김: 그렇지. 처음에는 이분들 상황이 다급해서 돕게 됐는데 점점 궁금해져 고려인에 관해 공부하게 된 거죠. 그동안 내 고민이 사치였다고 느껴졌어요. 당장 이렇게 어려운 분들이 있는데 뭐가 옳게 사는 거고, 사회주의는 왜 실패했는지에 관한 고민이 사치란 생각이 들었죠.

한: 고려인들을 위해 무슨 일을 했나요?

김: 처음에는 고려인들이 연해주에 정착하는 걸 도왔어요. 겨울을 나는 데 필요한 난방용품, 쌀, 이불, 전기세 등을 지원하는 일을 했죠. 그리고 당시 연해주에 고려인들의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해 줄 센터가 없었어요. 또 이 분들 스스로 운영하는 청년단체가 필요해서 ‘후대’라는 고려인 청년회를 만들었어요.

한: 고려인들은 선생님과 아무 상관도 없었던 곳이잖아요. 그런데도 이곳에 뛰어들어야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든 거예요?

김: 처음엔 당연히 모두 걸겠다는 생각은 안했지. 러시아에서 대학원에 다니려는 계획이 있었어요. 근데 고려인들의 월동중비를 도와주며 간단한 문제로 해결 될 일이 아니더라고. 거기에 얽힌 여러 가지 국적, 정착문제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졌어요. 누군가는 이 일을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당시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연해주에서는 나 밖에 없었으니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

한: 연해주에서 다시 한국으로 건너간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 연해주에 이분들을 위한 거점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이룬 이후 어떤 걸 더 해야 할지 고민했어요. 그러던 중 러시아에서 비자 기간이 다 돼 비자를 갱신하러 잠시 한국에 나간사이 러시아에 입국금지가 되는 바람에 다시 못 들어가게 됐죠.

한: 왜 못 들어 가게 됐죠?

김: 연해주에 고려인 센터를 만들고, 고려인 정착마을을 만드는 일을 했잖아요. 러시아 정부기관 KGB에서 보기에 앞으로 당국에 분쟁이나 위기 상황이 왔을 때, 반동 집단을 움직일 수 있는 위험 분자로 생각한 거죠. 그 때문에 비자 갱신하러 한국 갔을 때 막아 버렸죠.

 

“세상은 생각보다 따뜻하다”

한: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다면

김: 아무래도 안구 암을 치료했던 일이 기억에 남아요. 작년 봄에 한 고려인 엄마가 애기를 안고 찾아 왔어요. 애기가 안구 암에 걸렸는데 수술 받지 않으면 뇌로 그 암이 번져서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어요. 우주베키스탄에 치료비를 갖고 왔는데 턱없이 모자랐지. 방법이 없어 일단 되는 만큼 저희가 노력해서 돌려드리겠다고 보냈어요. 그래서 500만원을 목표로 다음 아고라에 사연을 올렸는데 순식간에 거의 2-3000 만원을 모았어요. 덕분에 애기가 무사히 수술 받고 돌아갔어요. 그 때 세상에 좋은 분들이 참 많다는 걸 느꼈죠.

한: 고려인분들 중에 심각한 병에 걸린 사람이 많나요?

김: 체질상 그런 건 아닌데 치료비가 없어 적절할 때 치료를 못 받는 게 문제인 거죠. 또 말을 못하니 치료 과정이 더 어려운 거고. 일단 의료보험이 안되는 게 문제에요. 한국인들에 비해 200%이상 비싸요. 의료사각지대에 놓인 거죠.

한: 이외에 고려인들이 한국에서 겪는 문제가 있나요?

김: 비자 문제가 가장 심각해요. 동포들이 여기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비자정책에 고려인들의 상황에 실질적으로 안 맞는 부분이 많아요. 한국에 들어오기가 쉽지 않고, 고려인들은 한국 사람들도 외면하는 3D업종에서 일하는 것도 힘들어요. 이런 문제 때문에 고려인 동포들이 모국에 관한 거리감을 느끼는 거고. 한국에 들어와서도 일 할 수 있게 해줘야 해요.

한: 고려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나요?

김: 한분 한분의 이야기가 다 드라마예요. 그 중에 ‘리 안드레이’라는 고려인 친구가 있는데 함께 연해주에서 청년회를 만들었어요. 2010년에 제가 러시아에 못 들어가게 되면서 차라리 시골에 들어가 글을 쓰려 했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찾아온 거예요. 친구와 함께 우연히 안산의 땟골을 알게 됐는데 여기도 상황이 연해주만큼 심각하더라고. 그냥 두고 볼 순 없지 않느냐는 안드레이의 제의에 따라 시작한 게 지금의 ‘너머’가 된 거지. 그 친구가 가장 고려인 중에서는 내게 소중한 친구예요. 현재 너머의 공동대표이기도 해요.

한: 우즈베키스탄에 사시는 고려인들이 연해주로 오는 이유는

김: 소련이 와해되면서 중앙아시아에 있던 파자키스탄, 키르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의 나라들이 다 독립했어요. 독립하면서 민족 정체성을 회복한다고 고려인들을 배척한 거죠. 하루아침에 갑자기 러시아어 대신 우주벡어를 공용어로 쓰고, 농장에 주인으로 있던 고려인들은 다 쫓겨났어요. 다시 떠돌이가 됐지. 그중에 일부는 옛날에 살던 연해주로 온 거죠.

“한국인을 한국인이라 부르지 못하고”

한: 고려인들을 위한 활동을 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는 것에 대한 걱정은 없나요?

김: 무슨 일이든 상대적이에요. 가족이 있으면 많은 부분을 가족을 위해서 살아야 하니 꿈이나 자유를 잃게 되잖아요. 뭔가 선택함으로써 잃는 걸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는 있어야 해요.

한: 혼자 살면 외롭지 않나요?

김: 사는 것 자체가 외로운 것 같아요. 결혼 했다고 안 외롭나요, 조금 덜 외롭겠죠. 다만 새롭게 든 걱정은 있어요. 최근 TV에서 ‘고독사’에 관한 내용이 나왔는데, 그걸 보며 혼자 살면 언젠가 아무도 모르는 상태에서 죽을 수는 있겠구나 싶었어요.

한: 너머처럼 시민단체 활동하시는 분들은 어떻게 먹고살죠?김: 규모가 꽤 돼는 시민단체는 작은 월급이라도 나와요. 하지만 아예 그런 월급조차 안 나오는 데가 많아요. 저희 단체는 정부운영지원비도 안 받아서 다 사비로 운영했죠. 지금은 후원금 늘어나면서 최소한의 활동비 정도는 있어요. 그래도 그걸로 생활이 되진 않았죠. 시민단체 활동하려면 돈보다 자기 일에 대한 가치를 갖고 사는 거예요.

한: 고려인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을 어떤가요?김: 엊그저께 술 마시다 한 고려인에 제게 이렇게 말했어요. 우즈베키스탄 사람과 얼굴이 비슷해 말 배워서 살 수 있어요. 근데 한 번도 자기는 우즈베키스탄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고 한국인으로 사는 게 자랑스러웠는데 한국에 들어오니 아니더라는 거죠. 현재 한국인과 모습이 다른 건 이분들의 잘못이 아니에요. 한국 또한 엄청나게 서구화됐어요. 서로 많이 변했죠. 근데 우리가 올바른 것 인양하는 착각을 하고 있어요.

한: 앞으로 미래에 대한 계획이 있나요?

김: 딱히 미래에 대해 계획을 세우지 않아요. 그 미래를 잘 준비하는 일이 현재를 열심히 사는 거로 생각해요. 미래를 고민하느라 막상 현재를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많아요. 물론 그것도 한 방법의 하나지만, 전 현재를 충실히 사는 데 더 가치를 두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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