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진학이 또 다른 도피처?
대학원 진학이 또 다른 도피처?
  • 이희진 기자
  • 승인 2013.11.25
  • 호수 139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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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를 하던 도중 학과 선배를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나눈 뒤, 취업준비는 잘 되냐 물었고, 그 선배는 답했다.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이야.” 인턴 경험, 자격증, 토익 성적, 학점, 어느 것 하나도 떨어지지 않는 학과의 엘리트 선배였다. 이유를 물으니 “그 정도 스펙은 명함도 못 내밀겠더라”라며 선배는 씁쓸한 조소를 지었다.

과거의 대학에 대한 인식은 두 가지로 나뉘었다. ‘공부를 엄청 잘하는 수재들이 모인 곳’과 ‘돈이 많은 부자들이 모인 곳.’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 세대만 해도 고등학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치는 교육 기관이었지만, 대학은 달랐다. 개천에서 용 났다고 할 정도로 대학 진학의 기회를 얻기도, 잡기도 어려운 것이 그 시대였다.

하지만 현재의 ‘대학’은 그 의미가 다르다. 대학이 과거의 고등학교와 다를 바 없어진 것이다. 즉, 의무교육 기관이라고 명시는 돼 있지 않지만 사회적 분위기로 봤을 때는 꼭 거쳐야 하는 교육기관이 대학이 돼버렸다. 중학생인 동생이 다니는 학원도 특목고 반, 일반고 반으로 구분 된 것을 넘어 ‘서울대반’, ‘연세대반’ 등 그 이름에도 대학이 붙는다. 이는 중학생 또한 대학진학을 당연시 여기는 풍경의 일부일 뿐이다.

대학을 나오지 않은 것은 단순히 ‘고졸자’ 그 이상을 의미한다. 대졸자라는 타이틀은 흔하디 흔한 아르바이트에서 조차 대졸자 우대라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사회에서는 그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월급 체계와 진급 체계도 고졸자이냐 대졸자냐에 따라 그 금액과 시기가 갈린다. ‘고졸자 우대 정책’이 나온 것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대졸자를 우대하느냐를 반증하는 예다.

교육기관, 즉 학업 인플레이션은 대학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 영향력이 ‘대학원’도 뻗어가고 있다. 한 아르바이트 포털사이트에서 대학생 645명을 대상으로 대학생 진학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응답자 중 20%가 대학원 진학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고, 그 이유로는 ‘원하는 직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해서’가 35.3%로 1위를 차지했으며. 2위와 3위 역시 취업과 관련한 것이었다. ‘취업이 더 원활할 것 같아서(21.1%)’가 2위, ‘취업 부담감에 대한 도피처(7.3%)’는 3위였다.

응답자들은 석사학위가 취업 혹은 직장생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대답했다. △취업의 기회가 늘어나서(32.1%) △연봉 협상이나 승진 속도에 긍정적일 것이라서(31.3%) △보다 큰 기업에 취업할 수 있을 것 같아서(15.8%) △취업준비를 위한 시간을 벌 수 있어서(12.9%). 대학원 진학과 차후에 따라올 부상은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함이 목적이 아니라 오로지 ‘취업’, 바로 그것이었다.

지성의 상아탑이었던 대학은 그 가치가 빛바랜지 오래다. 논문을 쓰지 않아도 졸업을 할 수 있고, 취업을 위해 어차피 있어야 하는 토익 점수로 졸업장을 바꿔치기 하는 행태도 이제는 당연하다. 대학이 과연 ‘교육’의 기관인지도 의심스럽다. 학문 탐구의 순수함도, 대학생의 목소리로 정책을 바꿔보겠다는 패기도 신문 기사 한 줄로 설명되는 과거의 영광일 뿐이다.

대학은 이래서는 안 된다는 말도 지겹다. 사실 아무리 외쳐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공허한 메아리임을 알기에 대학생들은 더욱 슬프다. 슬프니까 공부하고 좋은 곳에 취업해서 내 자식은 이렇게 안 살았으면…하는 소박한 바람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 쳇바퀴 돌 듯 되풀이하는 시대의 흐름에서 마지막 보루였던 ‘대학원’마저 그 영역을 침범 당하고 있다. 이제 취업양성소라는 대학의 꼬리표는 대학원의 또 다른 별명이 되지 않을까 우려스러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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