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함께 자라난다, 서울시 마을공동체
도시는 함께 자라난다, 서울시 마을공동체
  • 금혜지 기자
  • 승인 2013.11.23
  • 호수 139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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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새롭게 피어나는 청년 문화

‘이웃’이라는 말은 어느새 모호한 개념이 돼 버렸다. 아래위로, 양옆으로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선 아파트 단지에서 내 이웃의 범위를 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근처에 위치한 학교에 따라, 집값에 따라 사는 곳은 빠르게 바뀌고 새로운 곳에 적응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서울 목동에 올해로 7년째 살고 있는 전윤주<이화여대 행정학과> 양은 “이웃 혹은 동네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같은 초등학교, 중학교를 졸업한 친구 정도”라며 “워낙 아파트 건물 하나에 입주자들이 많고  아파트 단지들이 동네를 채우다 보니 동네, 마을에 대한 소속감은 거의 없다”라고 전했다.

우리학교 인근 사근동에서 자취중인 정희은<사회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12> 양은 “내가 사는 층에 방이 5개 정도 있는데, 그 중 아무도 얼굴을 모른다”라며 “평소에 이웃의 필요성이나 외로움을 잘 느끼는 편이 아닌데도, 간단한 도구조차도 이웃에게 빌리지 못해 결국 한 번만 쓸 것들을 사서 돌아오는 길에 조금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라는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서울시, 마을공동체를 싹 틔우다
‘마을’과 ‘사업’이라는 단어 사이의 간극만큼 인위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런 도시의 삶에도 변화의 가능성은 있다. 도시에서도 따뜻한 정을 나눌 울타리를 만들어주는 ‘마을공동체 사업’이 그것이다. 올해로 2년째 시행되고 있는 이 사업은 생활 범위에서 공동체의 필요성을 인지한 주민들이 마을을 형성하고, 서로의 필요를 해결해 나가는 모든 과정을 지원한다.

유창복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 센터장은 “마을의 주민들이 동네에서 서로 만나고 서로의 활동을 공유하며 어려움을 해결하면, 마을의 관계망은 그물코 엮이듯 촘촘해질 것”이라며 “다양한 계층의 주민들이 마을에서 활동 거리를 궁리하니 활기가 돈다”라고 마을공동체 사업의 의의를 밝혔다.

마을의 필요성을 느낀 사람이 센터에 문의를 하면, ‘마을 상담원’이 직접 그 장소를 방문해 상담을 진행한다. 5인 이상, 50인 이하의 서울 시민이 모인 곳이면 된다. 마을공동체에 대한 이해와 다양한 사례에 대한 방문 강좌도 신청할 수 있고, 교육 프로그램도 참여할 수 있다. 그리고 모임을 형성하는 ‘씨앗기’, 실행을 지원하는 ‘새싹기’, 마을의 계획을 수립하는 단계의 ‘성장기’를 거쳐 마을을 구성한다.

서울시 서대문구에는 이 사업을 통해 만들어진 ‘청년 베이스캠프’가 있다. 지방에서 올라온 청년들을 위해 게스트 하우스 형식으로 대안적 주거지와 함께 그들을 위한 네트워크까지 마련한 것이다.

베이스캠프를 구상한 오정익씨는 “청년 베이스캠프라는 아이템을 마음속으로만 생각해보고 있었는데 마침 이 사업을 알게 돼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라며 “특히 이 사업에서는 활동 공간 마련에 도움을 받았다”라고 전했다.

거리를 꽃피우는 청년 문화의 힘
서울시가 지원한 마을 중 단순 골목 주택가에서 예술가의 거리로 탈바꿈한 장소가 있다. 주로 40, 50대가 마을의 주체가 되는 다른 사업들과 달리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이뤄진 거리의 이름은 ‘예찬길’이다. ‘예찬길’이란 예술을 찬양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문화의 메카였던 홍대가 춤과 유흥의 중심지로 변하면서 홍대를 떠난 예술가들이 이곳에 하나둘 둥지를 틀었다. 그 길에 자리잡은 음악 연습실과 공방, 옷가게들은 처음에는 따로따로 떨어져 각자의 일에 충실했다. 그러다 김광민<예찬길 마을공동체> 대표가 서강동 주민센터와 연계해 기타 교실을 열었다. 김씨는 거리의 다른 예술가들에게 교실 운영에 동참할 것을 권유했고 몇몇 점포의 사람들이 함께했다. 그것이 발전해 하나의 조직적인 마을 학교가 됐다.

예찬길은 카페 ‘숲으로간’, ‘소야공방’, 화실 ‘이모랩’ 등을 비롯해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운영하는 공간들로 이뤄져 있다. 매년 공연, 전시, 마을 체험 등을 즐길 수 있는 ‘예찬길 마을 축제’도 진행 중이다. 화실의 사람들이 참가자들에게 체험 미술의 기회를 제공하고, 음식점들은 먹거리를 만드는 행사를 주관하고 공방에서는 이니셜을 새긴 목걸이를 만들어 준다. 예찬길에 모여 있는 재능들을 거리로 꺼내 축제를 여는 것이다.

청춘의 삶에 기댈 곳이 필요하다
사실 학교라는 확실한 소속 집단이 있는 대학생들에게 마을의 필요성이란 흐릿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남들이 모두 그렇게 하니까’ 당연하게 대학 진학을 선택하고 싶지는 않았다는 김동혁<청춘행성 209호> 청년 대표에게는 마을이 그를 키우고 다른 사람과 교감하게 해주는 매개체다. 그는 최근 서울시의 지원 사업을 통해 청춘들이 모여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흔히 생각하는 거주지역의 마을이 아닌 북카페 형식의 <청춘행성 209호>다.

<청춘행성 209호>는 청소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대학 외에는 마땅히 갈 곳이 없다는 데서 출발했다. 김 대표는 “남들 가듯이 대학을 가자니 딱히 길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안 가자니 할 것도 없다”라며 “이럴 때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나누는 데서 대안이 나올 수 있을 텐데, 이 공간이 좋은 매개가 될 수 있다”라며 북카페 <청춘행성 209호>를 소개했다. 카페의 이름은 20살부터 29살까지 누구나 모이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그의 바람은 이곳을 20대들의 마을이자 아지트로 만드는 것이다. 김씨는 “20대들이 함께 모여 놀기도 하고, 공부도 하고, 영화를 보는 등 예술적인 활동도 하는 아지트가 됐으면 좋겠다”라며 이곳에서 마을과 청년을 위한 다양한 시도와 실험을 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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