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 지도 위 도식화된 존재의 해체
군사 지도 위 도식화된 존재의 해체
  • 전예목 기자
  • 승인 2013.09.28
  • 호수 139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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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태엽 감는 새」라는 메스를 가지고
전쟁에 대해 서술한 대다수 글은 전투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을 ‘OO명 사망, OO명 부상’과 같이 무명의 존재로 기록함으로써 그들의 실존적 존재를 무너뜨린다. 이와 달리 소수의 지도자들은 중요한 사건을 근간으로 기술된다. 병사들을 개별적이고 특수하게 대우받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 그리고 그들의 삶은 영웅주의적이고 사건중심적인 서술 방식으로 인해 잊혀지고 만다.

하지만 숫자의 폭력성에 희생된 그들의 삶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태엽 감는 새」를 통해 회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하루키는 이 소설에서 주위에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람을 통해 영웅주의적 서술 방식에서 기록될 수 없었던 일반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특히 하루키는 이 소설에서 ‘노몬한 전투’를 체험한 사람을 등장시키는데 그때의 체험은 주로 혼다, 마미야 중위 그리고 하마노 중사에 의해 전달된다. 이 셋의 삶은 거역할 수 없는 권력에 의해 개인의 삶과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박탈됐다는 사실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먼저 하사관으로 종군했던 점쟁이 ‘혼다’가 등장한다. 혼다는 소련군과 싸우던 중 포격에 의해 고막이 찢어져 귀가 먼 노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인물이다. 혼다는 “노몬한 전투가 일본 제국이 소련군에게 처절하게 패배한 전투였기 때문에 지도부는 은폐하길 원했다”라며 “전투에 살아남은 병사들을 가장 격렬한 전장에 보내어 죽게 했다”라고 한다. 혼다의 회고를 통해 소련군과 격렬히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상부 권력에 의해 사지로 내몰아져 자신의 생사여탈권이 박탈된 병사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마미야 중위’는 혼다와 함께 특수작전에 참여한 전쟁 동료다. 마미야 중위는 혼다를 포함한 3명의 군인과 함께 외몽고 지역에 들어가 임무를 수행하려 했지만 실패해 마미야 중위와 다른 군인 한 명이 포로로 잡힌다. 마미야 중위는 그 전우가 살아 있는 채로 가죽이 벗기는 모습을 목도하기도 하고 사막 한 가운데에 있는 우물에 며칠 동안 갇히는 경험까지 한다.

혼다에게 전쟁에서 죽지 않을 것이라는 예언을 마미야 중위가 받았을 때 처음에는 기뻐했지만 일련의 전쟁 경험을 한 뒤에 오히려 살아있는 것이 기쁜 일이 아니라고 술회한다. 전쟁 이후 자신의 삶은 ‘빈 껍질의 마음과 빈 껍질의 육체가 만들어낸 빈 껍질의 인생’에 불과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마노 중사’는 자신이 참여한 전쟁이 무의미한 약탈과 살육이 자행된 잘못된 전쟁이었음을 고백한다. 전선이 전진하는 속도에 보급이 따라가지 못해 약탈을 한다거나 포로를 수용할 장소와 식량이 없어 죽일 수밖에 없는 일본군의 모습이 그 예이다. 하지만 이런 행동의 죄책감은 명령을 지시한 상부로 가기보다는 병사들에게 감으로써 그들 인생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노몬한 전투는 평범한 인간들이 타인과 전쟁에 의해 자신의 삶의 선택권을 잃어버린 전투였다. 그들은 어느 특별한 시대에 태어나 남들보다 뛰어난 사명감을 가지고 전투에 임한 것이 아니다. 단순히 국가의 강제 징집에 의해 동원된 것일 뿐.  그리고 이 전투는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환경에 노출돼 외부 감각에 무감각해진 인간을 생산한 안타까운 역사로 기록했다.

참고: 도서 「태엽감는 새」
논문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태엽감는새’론」, 김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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