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열차」에 나왔던 그 노래, ‘골드베르크 변주곡’
「설국열차」에 나왔던 그 노래, ‘골드베르크 변주곡’
  • 전예목 기자
  • 승인 2013.09.14
  • 호수 139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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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멜로디와 완벽한 형식의 앙상블

최근 개봉한 영화 「설국열차」를 보면 꼬리 칸에 있던 하층계급의 사람들이 전진에 전진을 거듭해 머리 칸과 경계 부분에 있는 식물 칸에 도착하는 장면이 있다. 아수라장인 꼬리 칸과는 대조적으로 식물 칸은 매우 평온하고 아늑하다. 이때 평온한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멜로디가 바로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주제인 ‘아리아(Aria)’이다.

백작의 자장가였던 ‘골드베르크 변주곡’

골드베르크 작곡가인 ‘바흐’의 평전에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탄생에 대한 일화가 적혀있다. 18세기 중반 독일 드레스덴에 머물고 있던 러시아 대사 카이저링크 백작은 극심한 불면증 때문에 괴로운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백작은 자신의 불면증을 해소하기 위해 클라비어(피아노의 전신) 연주자인 ‘골드베르크’를 고용해 자신이 잠들 때까지 클라비어 연주를 시킨다.
그러나 불면증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백작은 평소 알고 지내던 ‘바흐’에게 불면증을 해소할 수 있는 클라비어 곡 하나를 작곡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바흐는 30개나 되는 변주로 구성된 클라비어 곡을 정성스레 만들어 백작에게 주었다. 백작은 이 변주곡을 항상 ‘나의 변주곡’이라 부를 정도로 마음에 들어 했다.
백작이 말한 ‘나의 변주곡’이 바로 골드베르크 변주곡(Goldberg Variations, BWV 988)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백작의 클라비어 연주가 이름인 ‘골드베르크’에서 유래된 것이다. 사실 원래 제목은 「여러 가지 변주를 가진 아리아」였으나 백작의 이야기가 유명해져서 이 곡은 통상적으로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라고 불린다.
바흐가 노년에 작곡한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일평생 쌓아온 바흐의 음악적 역량이 모두 녹아 있다. 노태현<음악 칼럼니스트>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완벽한 형식과 아름다운 선율을 지니고 있다”라며 “서양 음악사의 그 어떤 변주곡과도 구별되는 경이로운 독창성과 개성을 가진 곡이다”라고 말했다.

형식적 완전성을 지닌 ‘골드베르크 변주곡’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변주’를 이용함으로써 형식적으로 짜임새 있는 구조를 갖출 수 있었다. ‘변주’는 짧은 멜로디인 ‘주제’를 바탕으로 음악적 요소를 변형한 것이고 여러 ‘변주’를 모은 것이 ‘변주곡’이다. 최은규<음악평론가>는 “변주곡은 하나의 ‘주제’를 기반으로 통일성을 추구하는 것”이라며 “그 ‘주제’를 바탕으로 조성, 박자 등 여러 음악적 요소를 달리 하는 ‘변주’를 통해 변화를 주는 곡이다”라고 설명했다. 즉 일관성과 변칙성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곡이 변주곡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주제와 변주를 통해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음악에서 중요한 긴장(변화)과 이완(통일)을 잘 표현한다.
변주곡의 순서를 보자면 변주의 대상이 되는 곡인 ‘주제’가 먼저 연주된다. ‘주제’가 먼저 연주된 이후에 여러 ‘변주’들이 등장한다. 이런 주제와 변주들은 대개 16마디 이내의 짧은 곡으로 구성된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주제’를 수미상관 형식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주제인 ‘아리아(Aria)’가 맨 처음 연주되는 것은 다른 변주곡과 같은 점이지만, 주제가 곡 마지막에서 한 번 더 연주된다는 것은 다른 점이다. 이렇게 변주곡이 주제를 2번 사용해 전체 32개의 곡으로 구성돼 있음에도 30개의 변주만 존재한다.
얼개를 보면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수학적으로 치밀하게 계산된 구조를 지녔다. 이 점은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16번 변주를 기준으로 전반부와 후반부가 대칭적으로 나뉘는 것에서 알 수 있다.
곡 진행 과정에도 수학적 원리가 숨겨져 있다. 논문 「피아노 연습곡과 변주곡을 중심으로」에서는 “첫째 원리는 3의 배수 번째에 해당하는 변주가 돌림 노래 형식의 ‘카논 형식’이 되는 것”이라며 “둘째 원리는 카논 형식 변주가 완전 1도의 음정에서 시작해 3배수마다 1도씩 증가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 원리를 따르면 27번째 변주는 카논 형식의 변주이고 음정은 9도가 된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바흐는 30번째 변주에서 ‘카논 형식’을 사용하지 않고 음정을 높이지도 않는다. 이렇게 지금까지 지켜왔던 엄숙한 형식을 무너뜨려 해방감을 줄 뿐만 아니라 이전 변주에서 쓰지 않았던 발랄한 느낌의 독일 민요를 사용함으로써 딱딱한 분위기를 일거에 해소한다. 이렇게 민요를 섞어 쓰는 형식을 쿼드리벳(Quodlibet)이라 한다. 쿼드리벳은 라틴어로 ‘좋을 대로’를 의미하는데 형식의 이름만큼이나 마지막 변주는 바흐의 유머러스한 면모를 보여준다.

명화에 등장하는 골드베르크 변주곡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음악적으로만 주목받는 것이 아니라 「설국열차」의 예에서도 보듯이 영화에서도 각광받는 작품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명화에도 자주 등장한다. 먼저 사람의 심리를 잘 파고든 공포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을 수 있다. 정신과 의사였지만 살인죄로 수감 중인 인물인 ‘한니발 렉터’(앤소니 홉킨스 분)가 사람의 머리를 깨물어 죽일 때마다 골드베르크 주제인 ‘아리아’ 멜로디가 흐른다. <그림 1>에서 보듯이 긴장이 제일 고도되는 순간 잔잔하고 평화로운 음악이 나와 감상자의 공포를 극대화한다.
다음으로 간호사와 환자의 슬픈 사랑 이야기로 인기를 끈 「잉글리쉬 페이션트」에서도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삽입됐다. 주인공인 ‘한나’(줄리엣 비노쉬 분)는 극 중 ‘잉글리쉬 페이션트’(English Patient)라고 불리는 남자를 헌신적으로 보호하는 간호사다. <그림 2>는 ‘한나’가 폐허가 된 수도원에서 한쪽 다리가 부러져 쓰러져 있는 피아노를 발견하고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 선율은 전쟁의 적막함과 대조되면서 작품의 서정적인 느낌을 강조한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는 우연히 만난 두 남녀 ‘셀린느’(줄리 델피 분)와 ‘제시’(에단 호크 분)가 비엔나 거리를 거니는 모습이 나온다. 이렇게 해가 뜨기 전 단 하루 동안의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이 <그림 3>의 장면이다. 이때 두 남녀는 어느 집에서 흘러나온 쳄발로(피아노의 전신) 선율에 따라 춤을 추고 입 맞추는 낭만적인 순간을 연출하는데, 이 감미로운 쳄발로 멜로디가 바로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다.
또 최근에 개봉한 영화 「빈센트: 이탈리아 바다를 찾아」에 불면증을 가진 빈센트의 친구(그림 <4>의 왼쪽)가 매일 잠들기 전 ‘바흐 음악’을 듣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음악 역시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원래 불면증 해소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빈센트의 친구가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자장가로 삼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처럼 영화 속에 나오는 클래식이 무엇인지 알아가며 감상하는 것도 영화를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다. 실제로 영화에서 클래식은 자주 사용되고 있으며 이는 클래식이 우리와 친숙한 음악임을 방증하는 것이다. 지금 당장 밑에 QR Code를 스캔해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듣자마자 ‘아, 이 노래?’하고 틀림없이 말할 것이다.

도움 이용규<음대 피아노과> 교수
참고:
논문 「피아노 연습곡과 변주곡을 중심으로」
책  「J. S, 바흐의 건반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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