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가 작아질수록 추억은 커진다
규모가 작아질수록 추억은 커진다
  • 금혜지 기자
  • 승인 2013.09.07
  • 호수 138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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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에 대한 편견을 깬 소규모 영화제들

‘영화제’의 정의는 ‘영화를 일정한 기준에 의해 수집하고 상영하는 행사’다. 흔히 ‘영화제’라고 하면 떠올리는 화려한 시상식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행사는 모두 영화제라는 것이다. 대형 영화관 밖에서, 화려한 레드카펫은 없지만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하는 영화제들이 있다.

올해 열린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한 한주현<경영대 경영학과 10> 양은 “새로운 공간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영화를 볼 수 있는게 좋다”라며“하지만 영화제의 가장 큰 매력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영화제의 규모가 작아지면 이런 장점은 극대화된다. 낯선 공간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같은 취미를 가진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 유대할 수 있는 만남의 장이 되기 때문이다. 더불어 소자본·독립 영화에게도 상영 기회를 제공하며 유통 창구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소규모 영화제는 영화의 흥행 여부에 상관 없이 제작자와 관객들이 확실히 소통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영화제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에서 벗어난 ‘라면 영화제’, ‘장롱 영화제’, ‘랩톱 영화제’를 소개한다.

영화 보면서 라면 먹고 갈래?

라면 영화제는 영등포 하자센터에 있는 카페 「하하허허」에서 처음 시작됐고 지금은 은평구 서울시 청년 일자리 허브에서 진행 중인 월례 영화제다. 입장료는 라면이고, 드레스코드는 트레이닝복이다. 영화를 깊게 감상하고 평론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외로운 사람들이 만나 편안한 분위기에서 만나기 위해 기획됐다.

참가 인원은 보통 10명 내외다. 대부분 개최 측의 지인이거나 포스터를 보고 찾아온 사람들이다. 김찬기<라면 영화제> 기획자는 “모르는 사람들이 섞여 있으면 처음에는 어색한데 같이 라면을 끓이고 놀다 보면 어색함이 가시더라”라며 “처음엔 서로 눈치를 보던 사람들이 다함께 재미있게 놀 때나, 단골손님이 생겼을 때 보람을 느낀다”라고 전했다.

행사는 영화를 보며 라면을 먹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재능 나눔 워크샵’이라는 제목의 활동도 매번 진행한다. 제목만큼 거창한 일이라기보다는 그 달의 기획자가 종이접기나 에어로빅처럼 하고 싶은 놀이나 이야깃거리를 준비해 나누는 활동이다. 이런 활동을 통해 어색함을 털어내고 편한 분위기의 영화제를 즐길 수 있게 된다.

장롱 속의 작품을 꺼내주세요

장롱 영화제는 마포구 서교동 영화다방 ‘와’에서 매월 진행된다. 공개 상영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작품을 ‘장롱 속’에 넣어둔 감독들의 출품작을 상영한다. 무명 감독인 최수안<영화다방 와> 운영자는 “어떤 사람에게는 ‘자신의 모든 것’일 수도 있는 영화가 장롱 속에 처박혀 있어야 한다는 현실이 안타까웠다”라며 “비록 빛을 보지 못한 영화들이지만 그 영화를 보고 감동할 수 있는 관객은 존재한다고 믿는다”라고 영화제를 직접 기획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처음에는 인정받지 못한 작품을 모았다는 생각에서인지 영화제 참여를 꺼리는 감독들도 있었다. 그러나 점점 독립 영화인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이곳을 찾는 장편 영화 감독이나 관객도 조금씩 늘고 있다. 30대 남성의 주말 퇴근길 일화를 통해 일상의 권태를 표현한 작품도 있었고, 꿈을 전당포에 저당 잡히는 상상을 주제로 한 단편도 라인업을 채워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 냈다.

최 씨는 “홍대 소규모 인디 공연장에서는 수많은 뮤지션들이 일상적으로 노래를 부른다.  이것처럼 사람들이 일상에서 영화를 만들며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장롱 영화제를 기점으로 시작됐으면 좋겠다”라고 앞으로의 바람을 전했다.

모두를 위해 노트북을 열다

랩톱영화제는 화려한 레드카펫과 대형 스크린 뒤에 있는 영화계의 현실에 대안을 제시하고자 기획됐다. 2012년 전국영화산업노조 통계에 따르면, 영화인 중 60%는 법정 최저 인건비인 월 95만 원 이하의 소득 수준으로 살아간다. 공정영화협동조합인 ‘모두를위한극장’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결성됐고,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공정영화’의 장으로써 랩톱영화제를 기획했다.
▲ 지난 7월 개최된 랩톱영화제의 포스터다.

랩톱영화제는 이틀 동안 진행된다. 6~8명 정도의 감독은 직접 가져온 노트북을 각각의 테이블에 놓고 영화를 상영한다. 관객들은 무선 송수신기를 사용하여 각자 이어폰을 꽂고 원하는 영화에 집중할 수 있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혹은 상영 후에 관객들은 감독의 테이블 사이를 이동하며 여러 영화를 자유롭게 볼 수 있다. 영화 상영 후에는 감독님 데스크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고 모든 행사가 끝나면 관객, 감독, 스텝이 모두 뒤풀이를 한다.

김 씨는 “영화 상영이 모두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 감독, 평소 만나기 어려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던 시간이 인상 깊었다”라며 “상영 후에 감독님과 함께 음주 GV(Guest Visit,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기도 했고, 부산에서는 여름 밤공기를 쐬며 GV를 진행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라고 전했다.

랩톱영화제는 ‘공정영화’의 가치와 ‘모두를위한극장’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프로모션 행사였다. 차기 랩톱영화제의 진행 여부는 내부에서 논의 중에 있다. 김 씨는 “현재 비극장 상영 유통망을 통해 ‘공정영화’의 가치를 도모하고자 또 다른 행보를 준비하고 있다”라며 “극장과 같은 쾌적한 조건 이외에도 영화를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라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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