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과 연애(演愛)하다
연극과 연애(演愛)하다
  • 김은영 기자
  • 승인 2013.09.02
  • 호수 138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 연출가 박소영 씨

“한가지 목표에의 확실함. 오직 그것 하나만큼은 결코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내 걸음에 나침반이 되어, 나를 지켜주어 왔지.” 힙합 래퍼 Kebee의 노래 ‘고3 후기’의 가사다. 이 노랫말의 가사처럼 박소영 씨는 오랫동안 하나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다. 그것은 바로 연극. 연극에 대한 쉼 없는 열망은 그의 청춘을 온통 같은 색으로 물들였다.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계셔(이하 여보셔)’는 기존 연출가의 작품을 재창작한 ‘캣츠’와 같은 라이센스 극과 달리, 처음부터 그가 직접 연출한 창작극이다. 여보셔는 창작극 불황 시대에 올해의 뮤지컬 상 수상, 일본 진출 등 창작극이 갖기 힘든 신화를 만들어냈다. 동시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무인도 같던 그의 인생에 한 줄기 희망이 되어 준 여신님이다.

“모든 작품은 하나의 앙상블”
한대신문 (이하 한): 뮤지컬 ‘여보셔’가 대학로에서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습니다. 창작극이 여러 상도 받고, 일본 진출까지 하게 된 경우는 드문데요. ‘여보셔’만의 성공 비결이 있다면.
박소영 연출가(이하 박):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오랫동안 이 작품을 만들어왔는데, 매 단계를 거칠 때마다 작곡가와 작가랑 대화도 많이 하고 또 다른 이들의 의견을 들어왔어요. 그래서 좀 더 좋은 방향으로 작품을 발전시킬 수 있었죠. 그리고 잊을 만하면 자꾸 얼굴을 디밀어서 사람들에게 회자될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 너무나 좋은 배우들을 만난 덕도 크죠.

한: 아까부터 배우님들 칭찬이 자자하신데 배우님들을 많이 좋아하나 봐요. 연출가는 대게 배우 사랑이 지극하나요.
박: 배우님들 제가 너무 애정하죠. 배우 사랑은 연출가마다 다양해요. 그런데 저는 특히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비평도 잘되는 성향이거든요. 그래서 더 그 사람의 장점을 보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있어요. 그러다 보면 정말로 좋아지고, 또 제 이런 성향을 못 받아들이는 배우도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런 것들에 대해서 포기하지 않고 함께 가려 노력해요.

한: 연출하면서 때로는 의견이 부딪힐 때도 있을 텐데, 매번 대화하는 방식이 이상적이라는 생각은 안 해 보셨나요.
박: 정말로 언젠가 포기할 수도 있겠죠. 사실, 제가 어떤 것에 있어서 단정 짓지 말자는 버릇이 생겼어요. 저에 대해서도, ‘난 변하지 않을 거야’라고 단정 짓지 말자고 생각해요. 그보다는 변하지 않도록 노력해야죠.

어쨌든 작품은 하나의 앙상블과 같거든요. 연출과 배우, 스태프 간의 앙상블이 잘 맞아야 좋은 작품이 된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연극과 뮤지컬은 사람 간의 공동 작업이지 개인 작업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이 분야는 사람간의 관계가 중요해요. 연출가는 조율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들의 능력을 끌어 올리기 위해 그 사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죠.

“연극 외에 다른 길을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박소영 연출가는 처음부터 연출가가 되겠다는 꿈을 꾼 건 아니었다. 대신 고등학생 시절, 영화나 연극 등 이야기가 있는 장르가 자신이 유일하게 좋아하는 분야라는 걸 깨닫고, 막연히 이 분야에 발을 담그겠다는 결심으로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대학 생활을 마친 후, 그의 결심은 더욱 확고해졌다. 하지만 모든 과정에는 위기가 있는 법이다. 연극판은 특히 그랬다.

한: 처음 연극영화과에 지원했을 때, 연기하려 지원한 건가요?
박: 아뇨, 연출이요. 근데 연출을 할 때 연기를 배우는 것도 필요해요. 확실히 도움이 많이 돼요. 연기를 배우면 배역의 감정선을 어떻게 잡아가는지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어요. 그러면 배우들의 연기를 지도할 때, 좀 더 구체적으로 해설해 줄 수 있는 거죠.

한: 연기와 연출 중에 굳이 연출을 택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박: 연기와 연출은 서로 매력이 달라 처음엔 제가 둘 다 병행했어요. 연출은 복합적인 성취감이 있고, 연기할 땐 바로 얻는 성취감이 있어요. 근데 제가 욕심이 많다 보니 직접 작품을 제 색깔로 꾸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연기할 때, 배우가 극의 방향성을 직접 끌고 가진 못하잖아요. 제 개인적인 성취감을 위해 연출을 택했죠. 또 사실 그런 이유뿐만 아니라 연기를 못했던 것도 있어요.

한: 그럼 졸업 이후엔 어떤 활동을 했나요, 도중에 다른 길은 생각한 적 없나요.
박: 네, 한 번도 없어요. 이 일이 너무 즐거웠기 때문에요. 대신 한번 연출을 맡으면, 한번은 연기를 하고, 다른 한번은 스텝을 하기도 했어요. 각 역할마다 얻는 성취감이 다르니까요. 그래서 졸업 이후 연극과 관련된 다양한 일을 해봤어요. 그중 ‘A-ptory’라는 창작 집단에서 연출을 맡았어요. 그때 올린 작품은 상업연극이 아니라서 사람들이 잘 몰랐는데, 당시 제가 조연출·연출·무대 감독 등 다 혼자 맡았어요. 오퍼·영상 촬영도 제가 하고요.

한: 많은 일을 혼자 맡느라 힘드셨겠어요. 그렇게 혼자서 여러 일을 맡은 데에는 사람을 구하기 힘들었기 때문인가요.
박: 그렇죠. 그 사람들에게 수당을 줄 만한 환경이 안됐어요. 열악한 거죠 사실. 저희 극단은 돈이 많지 않아 힘든 환경에서 극을 제작했어요. 그래서 이 길이 맞나 고민하기도 하던 시기에 만난 작품이 ‘여보셔’예요. 이 작품이 제게 연출을 해보란 믿음을 준 거죠.

“좋은 작품이 안 나오는 이유는 환경적인 문제가 크다.”
연극, 뮤지컬 장르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만, 대부분 보는 것에 그친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무대 뒤에는 배고픔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연극인들을 배고프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연극 분야에서 일하는 직업이 불안정하다는 시선이 많은데 실제로 그런가요.
박: 맞아요. 안정적인 삶을 생각하면 하기 힘든 직업이에요. 일반 직장인들처럼 정기적으로 월급이 나오는 게 아니고, 어떤 작품과 계약 했을 때만 돈을 받는 체제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열악해요. 그리고 나이가 들어도 계속 연출을 할 수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실제 많은 선배님이 여러 일을 병행하는 경우도 많고, 도중에 포기하기도 하고, 이 일을 하더라도 열악하게 생활하는 분들도 많죠.

한: 그런 힘든 환경에서 제작자 분들이 오직 순수창작으로만 먹고 사는 건 힘들겠네요.
박: 그러기가 어렵죠. 창작으로만 먹고 사는 사람은 소수에요. 정말 유명하거나 배우자가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있는 분이요.

한: 작품을 만들기에 여러 힘든 점이 많아 보이는데, 그 중 가장 열악한 부분이 제작 환경인가요.
박: 그렇죠. 창작 극 흥행 실패의 이유가 ‘좋은 작품이 없어서’라고 하잖아요. 그전에 좋은 작품이 탄탄하게 나올 수 있는 환경이 안돼요. 지원이 별로 없거나 안정적이지 않으면, 제작자 입장에서 초조해져요. 그래서 작품을 오랫동안 발전시키기보다 부담감을 줄이기 위해 빨리 내보내는 경우가 많죠. 그러다 보니까 더 탄탄하게 나올 수 있는 작품도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느껴요.

“꾸준함 하나는 자신 있다.”
한: 앞으로도 연출을 계속하실 건가요.
박: 저는 이 일을 평생 하고 싶어요. 근데 그러려면 꾸준히 관련된 일을 하며 현장감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너무 현장과 동떨어져 지내다 보면 감을 잃기 쉽거든요.

한: 한 일을 평생하고 싶다고 생각하기 힘든데, 선택에 대해 후회는 없나요.
박: 네, 저는 그거 하나는 후회 없어요. 어쨌든 이 길에서 묵묵히, 열악한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에 자부심이 있거든요.

한: 연극을 선택한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빠진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해요.
박: 모르겠어요. 사람이 좋은 데 이유는 없다고 하잖아요. 저도 그냥 이 일이 좋은 거예요. 이야기를 만들면, 관객들이 그 작품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에서 얻는 행복감. 그리고 누군가에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는 것, 이런 부분에서 큰 만족감을 느껴요. 정석 작가(여보셔 극작가)가 말했듯이 이 일은 명예직이거든요, 사실. 이 일 자체에 행복을 느낄 수 없으면 이 분야는 오래 할 수 없어요.

한: 연극이나 뮤지컬 분야를 하고 싶은 학생에게 조언이 있다면.
박: 제가 누군가에게 조언을 할 만한 사람인가 조심스러워요. 내게 정말 이 길밖에 없는지, 또 어떤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야 해요. 왜냐면 수많은 친구들이 이 길을 선택하고 또 후회하는 모습을 많이 봤거든요. 섣불리 좋다고 판단하기 보다는, 내가 이 분야에서 아무것도 없이 10년 이상 버틸 수 있을까 고민해 보세요. 그리고 이런 생각들에 대해 객관적으로 자신을 판단하는 게 중요하답니다. 결심이 서기 전까지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생각해도 좋아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