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속에 숨겨진 낯선 진실
동화 속에 숨겨진 낯선 진실
  • 류가영 기자
  • 승인 2013.08.30
  • 호수 138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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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여성상 분석하기

1937년 월트 디즈니가 첫 장편 애니메이션을 공개한 이후, 오랜 시간 동안 디즈니사는 장편 애니메이션의 선두주자였다. 많은 고전 동화가 디즈니사의 손을 거쳐 코믹한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됐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에게 환상적인 동화를, 어른들에게는 잊어버린 유년시절의 꿈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진부한 스토리와 보수적 성 관념의 고착화, 애니메이션에 숨겨진 인종차별적 코드로 인해 평론가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중,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남녀의 역할을 구분 짓는 보편적 성 이데올로기’이다.

남자만 잘 만나면 평생 행복해? 신데렐라
동화 속 신데렐라는 착하고 예쁘지만, 계모와 두 언니에게 구박을 받으며 힘들게 사는 가녀린 여주인공이다. 하지만 신데렐라는 조력자의 도움과 왕자의 노력으로 결국 결혼에 성공해 왕비가 된다. 이처럼 ‘신데렐라 스토리’는 고유 명사화되어 21세기인 지금도 많은 여성의 꿈을 대변해 준다. 그러나 객관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신데렐라는 할 줄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수동적 여성’이다. 신데렐라가 무도회장을 떠난 뒤 신데렐라를 찾기 위해 노력한 것은 남성인 왕자다. 수동적인 여성과 능동적인 남성, 전통적 사회의 보수적인 성 역할이 애니메이션 내부에서도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반면 신데렐라와 대립되는 악한 캐릭터 계모는 전통적 여성상과 동떨어진 인물이다. 남편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은 채 두 딸의 결혼을 위해 매우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하지만 디즈니는 이와 같은 능동적 여성의 악한 행동을 부각시켜 순종적 여성을 원하는 남성 중심적 사고를 강화시킨다. 

야수를 멋진 왕자님으로, 미녀와 야수
애니메이션 신데렐라가 만들어진 지 거의 50년이 지나고 나온, 미녀와 야수에선 이전과 사뭇 달라진 여성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애니메이션의 여주인공 벨은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야수의 성에 들어간다. 야수의 흉측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벨은 야수를 이해하고 사랑에 빠진다. 결국 둘의 사랑의 결실이 이뤄지는 순간 야수는 준수한 왕자로 변한다. 벨은 야수를 원래 모습으로 되돌려주는 ‘능동적인 여성’이다. 왕자에 대한 벨의 희생과 노력으로 마법이 풀리는 장면은 사랑에 적극적인 현대 여성을 연상케 한다. 또한 벨이 성에 들어오기 전 자신이 싫어하는 남성의 구애를 거절하는 것 역시 달라진 여성상의 모습을 띤다.

그러나 이런 미녀와 야수에도 여전히 보수적 성 관념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 벨이 아버지를 대신해 야수의 성에 들어가는 부분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또한, 벨의 인생 목표가 본인의 성장에 맞춰져 있지 않고 남성과의 결혼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결론은 왕자와 결혼해 신분 상승을 이뤘다는 점에서 신데렐라 스토리의 큰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쟁의 영웅, 뮬란
뮬란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중에서도 많은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아시아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점과 이전까지 사용하지 않았던 전쟁이란 소재를 사용한 점이 그 이유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평범한 소재와 비슷한 스토리 전개에 지친 관객들에게 뮬란은 큰 신선함을 선사했다.

뮬란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어느 날 뮬란의 아버지에게 징집 명령이 내려오고, 그는 아버지를 대신해 남장을 하고 전쟁터에 나간다. 전쟁터에서 뮬란은 훈 족을 물리치는 큰 공을 세워 추앙받지만 여자임이 밝혀져 쫓겨난다. 하지만 후에 뮬란은 뛰어난 기지로 승리하는 데 큰 역할을 해 황제와 백성들의 영웅이 된다.

분명 뮬란에 나오는 여성상은 이전과 큰 차이점을 보인다. 전쟁이란 남성의 영역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며, 이런 여성의 모습은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현대의 여성상’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여주인공 뮬란의 삶의 목적 또한 훌륭한 남성과의 결혼에 맞춰져 있지 않다. 뮬란에게 찾아온 사랑은 그의 성장 과정 중 일부일 뿐, 사랑을 통해 신분을 상승시키려는 욕구는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이렇게 성별의 한계를 극복한 뮬란에게도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윤정원<상명대 애니메이션학과>교수는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표면적인 변화는 있어도 여성상은 변하지 않고 있다”라며 “뮬란 역시 남성을 뛰어넘는 능력을 보여주고도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와 성숙한 여자로 남아 그 한계를 드러낸다”라고 말했다. 또한 윤교수는 “디즈니사가 ‘권선징악', ‘해피엔딩’ 등의 변함 없는 스토리 전략을 바꾸지 않는 이상 근본적인 여성상을 변화시키기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21세기의 디즈니사가 이런 비판을 극복하고 새로운 애니메이션 세상을 구현시킬 수 있을지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도움 : 윤정원<상명대 애니메이션학과>교수
참고 논문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의 변화 요소 연구 :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디즈니 애니메이션)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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