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계장에서 벗어나자
양계장에서 벗어나자
  • 민경욱
  • 승인 2013.05.28
  • 호수 138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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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학교 앞에서 500원에 산 병아리가 자라서 중닭이 됐던 적이 있다. 그 귀여웠던 녀석이 예상외로 점점 자라더니 집안에 골칫거리가 되었다. 아침이고 낮이고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통에 시골로 보내버리자는 부모님과 절대 그럴 수 없다며 버티던 나는 항상 대립하였다. 하지만 결국, 이웃집 항의에 어쩔 수 없이 그 녀석과 이별을 하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양계장에서 자란 닭들은 24시간 인공적인 조명과 모이 공급으로 태생적으로 시간을 가늠할 수 없게 된다고 한다. 그저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시도 때도 없이 알을 낳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양계장에서 태어난 그 녀석도 그런 현상을 보였나 보다.

양계장에서 나오는 항생제 달걀을 먹고 사는 우리도 그 닭들처럼 낮과 밤을 모른다. 24시간 대형마트와 편의점, 형형색색의 간판과 네온사인이 불을 밝히기 때문에 낮과 밤이 특별히 구분되지 않는다. 아침형 인간이나 새벽별을 봐야 한다는 이야기는 우리의 머릿속에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혀 있을 뿐 실천되고 있지 못하다. 일찍 잘 수 없으니 일찍 일어나도 아침형 인간이라고 할 수 없다. 오늘도 고정관념에 사로 잡혀버린 이들로 버스와 지하철이 가득 찼다. 교복의 학생들, 서양식 복장의 직장인, 고쟁이 바지의 할머니 다들 다양한 외적 모습과 삶을 지니고 있지만 표정만은 동일하다. 하나같이 피곤해 보이고, 졸린 모습이다. 움직이는 차안에선 하루 일과에 대한 즐거움과 기대감 따위는 찾아 볼 수 없다.

이른 새벽에 길에 나와 보면 낯익은 풍경들을 마주하게 된다. 간밤에 취기에 비틀거리는 사람, 그런 새벽을 쓸어내는 환경미화원, 24시간 사람들을 맞이하려 이글거리는 가게의 간판들 그 사이를 종종 걸음으로 지나가는 사람들. 인공조명에 몸을 맡기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인공조명으로 인해 시도 때도 없이 알을 낳는 양계장의 닭들과 다를 것이 없다.

사람들은 새벽의 첫차를 타는 사람들에게서 노동의 신성함을 읽는다지만, 나는 새삼 노동의 고단함을 본다. 아침형 인간의 채찍에 내몰려 새벽같이 불을 밝혀보지만 이들도 저녁에 쉴 수 없기는 늦게 출발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다. 이들의 고단함은 자기발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과한 노동에 따른 피로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말과 함께 새벽시간을 활용하는 것이 진정한 자기 발전인 것처럼 설파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피로함에 시달리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피로함만 탓하며 살 수는 없다. 이 피로함을 저버릴 수 없다면 이를 극복하고 이겨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 현 사회의 피로함은 누구나 같은 길을 걸으려 할 때 생기는 것처럼 보인다. 누군가를 따라가려 하지 말고 누군가가 따라 갈 수 있는 사람이 되려 노력해보자. 그렇다면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피로함을 토로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개발을 위한 피로함은 나를 발전시킬 것이다. 다른 사람이 나의 미래가 되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고 내 기준에 나를 맞춰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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